[수요단상-이철호 칼럼니스트] 부족주의 집단본능, 그리고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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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이철호 칼럼니스트] 부족주의 집단본능, 그리고 정치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2.06.20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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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시민신문] 트럼프가 힐러리 클린턴을 꺽고 미국 대통령으로 확정되던 날 기억을 떠올려본다. 민주주의 선진국이라는 그간의 내 판단이 과분했다는 생각에 이르자 미국민이 우스워 보였다. 너무나 뻔한 정답을 애써 피해서 그토록 헷갈리는 답을 택했는지 진지하게 성찰해 보지 않았다. 그 선거 전후로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차례 선거가 있었고 진보 성향의 정당이 연승가도를 질주하였다. 정치지형은 일방적으로 기울어져 있었지만 민심은 극한 대립양상을 보여주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사태와 조국사태 와중에서 편가르기는 심지어 나라마저 삼켜 버릴 기세였다. 그 결과는 새로운 권력의 출현이었다.

트럼프가 대선 유세에서 보여준 특이한 언행은 기존 정치문법에 익숙한 분석가들과 학자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그래서인지 선거결과는 각종 여론조사 예측을 조롱하였다. 그는 무차별적인 이슈메이킹으로 백인저소득층을 자극하여 자신이 그들의 강력한 부족장이 되었다. 팬덤화가 목적인 그는 인종과 문화의 도가니 미국에서 언급을 꺼리는 영역을 건드리는 것 정도는 안중에도 없었다. 코미디언같은 트럼프의 기행에 이 부족들은 열광하고 환호하였다. 사실은 그들이 트럼프에게 사기를 당했는데도 말이다. 미국의 노동자 계급에서 형성된 가장 중요하고 강력한 반기득권 정체성이 있다. 에이미 추아가 자신의 저서 정치적 부족주의에서 언급하는 말이다. 그녀에 의하면 부족 본능은 동일 시가 시작이자 끝인데 실은 트럼프의 취향, 감수성, 가치관 면에서 백인 노동자들과 비슷했다는 것이다. 와스프(WASP)로 대표되는 미국 지배엘리트층이 조잡하고 싸구려라고 여겨 몹시 싫어하는 것들이다. 트럼프는 뜻한 바 대로 백인 노동자들을 희롱하였고, 지배엘리트 계층은 농락당하였다. 그러니 양 진영 어느 엘리트들도 선거결과를 정확히 예측하지 못한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미 대선이 끝난 지 한참이 지나고서야 머리를 끄덕이게 된 대목이었다.

지난 대선과 지선 결과는 우리 대한민국도 부족주의로 뭉쳐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모 후보의 정책에 대한 어설픈 이해, 정제되지 않은 언어, 그리고 어퍼컷은 동류의식을 느끼는 집단에게는 진한 정체성으로 다가왔음이 틀림없다. 트럼프의 데자뷰를 보는 듯 했다. 이것은 어쩌면 삐에르 부르디외가 말하는 구별짓기의 또 다른 유형일 수 있다. 부족주의는 집단귀속의식만 아니라 배제의식도 있다. 동종끼리 뭉치고 이종을 배제하는 의식은 공동체에 득일까 독일까? 다시 미국의 상황을 되짚어 보자. 미국 백인저소득층은 트럼프를 자신들을 대변해줄 구세주쯤으로 생각한 것 같다. 수학 공식은 숫자만 대입하면 동일한 구조에 의해 원하는 답이 나온다. 미국 상황을 우리 것에 대입한들 반드시 같은 답은 아니겠지만 전혀 다르지도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 기득권 최상층에 위치했던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이 자신들을 위한 정치를 해줄 것이라고 믿는 걸까? 일단은 믿어보자. 그런데 왜 답답하지? 진보 출신이든 보수 출신이든 상관없다. 다 그들 자신의 이익이 우선이다. 그 간단한 논리를 순순히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태도가 사기꾼들의 온상(?)이 된다. 지나치다고?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하는가? 대한민국 최고 엘리트 기득권 집단들마저도 자신들이 학대받고 차별받았다고 느꼈다. 그것의 대가는 또 다른 부족주의의 표시인 정치보복으로 현실화되곤 했다. 이번이라고 예외일까? 본인들 기득권을 지키고 키우기에도 여념이 없는데 누구를 지켜줄 수 있을런지...

그냥 분해서 우파에게 투표했다는 사람들도 있다. 민주당, 특히 고고하고 도덕적인 채 하는 그 좌파 엘리트들이 꼴보기 싫어 별 생각없이 우파에게 표를 줬다는 사람들의 말이다. 이건 우리만의 얘기가 아니다. 미국도 좌파가 지속적으로 우파 부족주의를 꾸짖고 모욕주고 살맛을 잃게 했다는 지적들이 있었다. 그렇게 지적질하는 인간들이 진절머리나서 레슬링선수 연기를 하는 후보에게 환호하다 정신을 잃고 표를 준 그들이다. 미국의 부족주의에는 인종이 그 핵심이라고 에이미 추아는 말한다. 미국은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 다양한 문화가 혼재된 융복합 사회(이런 표현이 적절한지 모르겠다)를 구성하고 있다. 인종주의를 비롯한 편견 덩어리들이 서로를 물어 뜯으며 상처를 낸다. 그러나 그들이 미국을 유지하는 것은 마틴 루터 킹이 말하는 아메리칸드림이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정치, 경제, 문화적 부족주의가 만연하고 있지만 미국인의 꿈(내 꿈도 실현될 수 있을 거라는)이 그들을 결속시켜주는 한 요인이라고 여겨진다.

그렇다면 도대체 단일민족인 우리나라의 정치적 부족주의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지역주의에 기인한다는 가설을 제시해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역주의의 발호가 정치부족화했다고 많은 이들이 믿고 싶어 한다.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 있는 간편한 방법이니까! 하지만 이것도 지금은 조류에서 밀리는 느낌이다. 성별, 세대별, 그리고 이번 장관급 공직자들 청문회에서 도드라진 계층별 부족주의가 부상하고 있다. 이들 개개의 부족을 하나로 묶어내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다. 우리나라는 단군의 나라이다. 일부 종교인에게 반발을 살지 모르겠으나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또 다른 (종교)부족주의를 낳을 뿐이다. 내가 말하는 단군은 그저 상징적 의미일 뿐 본질은 홍익사상이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할 때 만이 이 나라는 온전히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 한가로운 답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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