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단상-정성우 대표] 정태춘, 그리고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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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정성우 대표] 정태춘, 그리고 우리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2.07.07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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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시네마MM 대표

[목포시민신문] 우리는 오늘 이 시대를 어떤 몸부림으로 저항하는가? 불안한 시대를 마주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오늘도 수많은 이야기에 귀를 귀울이며, 때로는 아주 가볍게 혹은 절실하게 세상을 묵묵히 살아가고 있다.

누군가는 글을 쓰고, 또 누군가는 그림을 그리며 세상과 마주한다. 환경을 생각하고 노동의 가치와 인간의 권리를 이야기 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이 불안한 시대를 살아오며 노래로 절실하게 저항한 사람도 있다.

그가 바로 정태춘이다. 518아치의 노래 정태춘다큐멘터리 영화가 개봉을 했다.

사실 이 영화가 개봉하기 전 영화관에서 함께 근무하는 친구들에게 정태춘을 아는지 물어 봤다. 영화관에서 근무하는 친구들이 사실 70이 넘어버린 정태춘을 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 역시도 그의 노래를 자주 듣는 세대는 아니기에 최근 들어 그의 노래를 다시 듣기 시작했다. 그냥 들었던 노래가 집중해서 듣다 보니 달랐다. 그의 노래는 그냥 노래가 아니었다. 가사 한줄 한줄에 담겨져 있는 그의 생각은 온 몸으로 마주한 시대가 담겨져 있었다. 다큐멘터리가 무척 궁금해 졌다.

정태춘 그의 삶이 좀더 궁굼해 졌다. 그래서 이리저리 검색을 해보고 찾아보았다.

가장 한국적인 보컬 아티스트로 대한민국의 원로 가수이자 사회운동가, 싱어송라이터이며 시인이기도 하다.

가요계의 거물이며 조용필과 같은 올드 가수들과 더불어 지금도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가수 중 한명이자, 사전심의 폐지운동을 주도하여 승리를 이끌어낸 한국 가요계에서 음악의 사회참여적 측면에서는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중요한 인물이기도 하다.

또한 음악적 측면에서도 예전의 뭇 가수들과는 판이하게 다르게 한국적인 멋이 듬뿍 들어간 노래와 서정적인 가사가 일품인 노래를 통해 사람들과 '공감'할 수 있는 노래를 만들었다. 지금도 정태춘을 '정태춘 선생님’, 정태춘옹이라고 높여 부르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 하나만으로 주변으로부터 얼마나 존경을 받는 인물인지 지레 짐작할 수 있다.정태춘의 배우자 박은옥으로, 가수이자 사회 운동가이기도 하다.(참고-네이버)

정태춘의 스토리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활동이 바로 사전심의 폐지운동이라 할 수 있다. 영화에서도 오늘날 한국의 대중음악이 이렇게 성장 할 수 있었던 배경에 정태춘의 사전심의 철폐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 한다. 1990년 발매된 <, 대한민국>은 심의결과 및 가사 수정지시를 전면적으로 거부하고 제작되어 배포되었던 이 음반은 당대의 법률 체계를 거부한 음반이므로 공식적인 유통 경로를 거쳐 판매되는 것이 아니라 그의 공연장과 대학가를 중심으로 판매되었다. 정태춘은 1991129일 구성된 '음반 및 비디오에 관한 법률 개악 저지를 위한 대책위원회' 의장이 되어 이 사전검열 제도와의 전면전에 돌입하고 결국 사전심의 폐지에 승리를 하게 된다. 오늘날 그가 한국 음악의 역사에서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 다시한번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영화는 정태춘의 삶이 어떻게 노래로 표현되었는지 이야기 한다. 그래서 노래가 그냥 들리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와 이야기로 우리를 마주하며 바라본다. 그런데 이 노래가, 30, 40년 전에 만들어 진 이 노래들이 아직도 공감이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날 왜 다시 정태춘의 노래를 하는 것일까?

낭송) 맞벌이 영세 서민 부부가 방문을 잠그고 일을 나간 사이, 지하셋방에서 불이나 방 안에서 놀던 어린 자녀들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질식해 숨졌다. 불이 났을 때 아버지 권씨는 경기도 부천의 직장으로 어머니 이씨 는 합정동으로 파출부 일을 나가 있었으며, 아이들이 방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방문을 밖에서 자물쇠로 잠그고, 바깥 현관문도 잠 가 둔 상태였다.

연락을 받은 이씨가 달려와 문을 열었을 때, 다섯 살 혜영양은 방 바닥에 엎드린 채, 세살 영철군은 옷더미 속에 코를 붙은 채 숨져 있었다.

두 어린이가 숨진 방은 3평 크기로 바닥 에 흩어진 옷가지와 비키니 옷장 등 가구류가 타다만 성냥과 함께 불에 그을려 있었다.

정태춘의 화두는 자본의 모순이었으며 그것에 분노하였다. 그리고 그에게 놓여진 길은 당연한 길이었으며 언젠가는 마주할 길이었다고 이야기 한다. 개인의 분노가 결코 개인에 머무르지 않았던 그의 노래는 그렇다고 격하지도 않다. 때로는 직설적이지만 그의 가사 하나하나는 우리의 마음을 끄집어 내며 공감을 하게 만든다. 그래서 그의 노래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시대 우리에게 분노할 것이 있는가? 라고 묻는다면 나는 분노 하는 우리 세대가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다. 개개인의 다양한 모습과 방법으로 그 분노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가로막혀 있는 모순들의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지는 여전히 풀기 어려운 숙제이기도 하다.

아마도 나의 숙제는 카메라를 들고 이야기를 담아내야 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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