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읽기-조준 동신대 교수]법정스님이 그리운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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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읽기-조준 동신대 교수]법정스님이 그리운 저녁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2.08.19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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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신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조준

[목포시민신문] 누구나 존경하는 분들을 마음에 두고 살아간다. 그분들은 평탄한 시기에는 인생의 길잡이가 되어주고, 인생의 고난기나 격변기에는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버팀돌이 되어주기도 한다. 슬픈 것은 세월의 흐름이 그분들을 자꾸 우리 곁에서 빼앗아 간다는 점이다. 존경할 만한 어른이 부족한 우리 사회의 현실을 생각하면 가슴 아픈 일이다. 더군다나 요즘처럼 국가와 사회가 방향을 잃어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기만 한때는 더더욱 그 분들의 부재가 아쉽기만 하다. 작금의 우리 사회를 위해 이정표가 되어 줄 수 있는, 아니 그저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라도 해 줄 어른이 간절히 생각나는, 열대야까지 밤잠을 설치게 하는 저녁이다.

법정스님이 우리 곁을 떠나신지 벌써 십여년이 흘렀다. 1932년 전남 해남에서 태어난 법정스님은 목포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셨다. 우리가 살고 있는 목포의 여기저기를 아주 오래전 법정스님도 다니셨을 것이다. 어쩌면 유달산에 올라 고하도를 바라보며 삶과 죽음을 고민하셨을지도 모른다. 법정스님은 서울의 선학원에서 당대 선승인 효봉 스님을 만나 그 자리에서 머리를 깎았고, 이후 해인사 선원과 강원, 통도사를 거쳐 1960년대 말 봉은사에서 동국역경원의 불교 경전 번역작업에 참여했다. 법정스님무소유처럼 종교적이고 피안적인 글만 썼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지만, 실제로는 당시 불교계 인사들 가운데서 적극적으로 사회운동에 나선, 불교 승려로는 그 시절에 몇 안 되는 분이셨다. 생애 주로 암자나 산골에서 산 것은 맞지만, 1971년 민주수호국민협의회를 결성한 것을 시작으로 이후 개신교인이자 사회운동가 고 함석헌선생이 만든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으로도 활동했으며, 고 김수환추기경 등 타종교인들과 종교간 대화에 앞장서며 사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선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다 1974년 인혁당 사건 이후 민주화 운동을 하면서 박해를 받을 때마다 생기는 증오심이 수행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여 자신의 본분에 회의감을 가지게 되었다. 이후 송광사 뒷산에 불일암을 지어 그곳에서 홀로 지내기 시작했고, 산문집 <무소유>(1976)를 저술해 돈과 권력이면 다 된다는 조류와는 다른 삶의 길을 끊임없이 제시했다. 또한 송광사에 선수련회를 만들어 산사의 수행법을 대중들에게 전했는데, 오늘날의 템플 스테이의 원조가 됐다.

법정이 머무는 곳은 그곳이 어디든지 전통과 현대, 불교와 대중의 소통이 있었다. 그는 관계의 단절자가 아닌 가교자였다. 스님은 격랑의 한국 현대사에서 이념과 종파에 관계없이 우리시대의 ''로서, 많은 산문집과 법문을 통해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위로와 깨달음을 전하셨다. 마지막 순간에도 마치 블랙홀처럼 자신의 흔적과 세속의 부질없는 격식 등을 모두 거두어, 흔적 없는 삶의 아름다움을 사람들에게 남기고 가셨다. 평소 법정스님이 애써 전하던 메시지는 "일상의 삶에서 분에 넘치는 욕심 내지 않기, 한때의 삶이라도 각자의 느낌대로 단순하게 최선을 다해 살기, 이웃에 대한 아낌없는 사랑 나누기, 삶의 순간순간이 아름다운 마무리이며 새로운 시작임을 깨닫기, 아울러 삶과 우주가 향기롭고 아름답다는 것을 깊이 인식하기" 등이었다.

그는 평생 불교의 가르침을 지키는 출가수행자로서의 본분을 잃지 않았고, 산문집의 제목처럼 '무소유''버리고 떠나기'를 끊임없이 보여줬다. 스님은 자신이 창건한 길상사의 회주를 한동안 맡았을 뿐, 그 흔한 사찰 주지 한 번 지내지 않았다. 내 것이라고 하는 것이 남아 있다면 모두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활동에 사용해 달라""이제 시간과 공간을 버려야 겠다"라는 그의 유언은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들의 마음에 더 큰 메아리로 다가온다. 친절과 이웃에 대한 따듯한 배려를 설파한 그의 말도 가슴에 남는다. “이 세상에 가장 위대한 종교가 있다면 그것은 친절이다. 이웃에 대한 따뜻한 배려다. 사람끼리는 더 말할 것도 없고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모든 존재에 대해서 보다 따뜻하게 대할 수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은 친절과 따뜻한 보살핌이 진정한 대한민국을 이루고, 믿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여전히 돈과 권력이 최고인 것처럼 여겨지고, 내편 니편으로 나누어 소통은 줄어들고 관계의 단절과 다툼만이 늘어나는 세상, 이웃에 대한 따듯한 배려를 갈수록 찾아보기 어려워지는 세상, 오늘은 법정스님이 유달리 생각나는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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