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단상-김경애 시인] 구슬나무집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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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김경애 시인] 구슬나무집미술관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2.12.02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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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애 시인

[목포시민신문] 미술관 이름이 구슬나무집미술관이다. 구슬나무를 생각하면 아련하게 떠오른 어린 시절 기억이 있다. 우리 마을에 있던 그 집은 길가에 있는 작은 오두막집이었다. 할머니 혼자 사셨는데, 장독대도 작았고 마당도 작았지만 아주 정갈한 집이었다. 담장 너머 길가에서 구슬나무 한 그루가 그 집을 지켜주고 있었다. 어렴풋한 기억으로 그 집은 작은 점집이었다. 나중에는 친구네가 그 집으로 이사를 했다. 그 골목길을 지나다니며, 노란 열매가 길가에 떨어지면 그걸 주워 먹었던가. 길바닥에 노랗게 떨어진 구슬들은 아련한 과거 속으로 나를 이끈다.

구슬나무집미술관에 처음 발길이 닿은 날은 보랏빛 꽃향기가 아릿한 오월이었다. 미술관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길가에 차를 세워놓고 오솔길을 걸었다. 아카시아꽃, 찔레꽃, 멀구슬나무 꽃향기가 가득한 숲길에 도자공간 빛살’, ‘구슬나무집미술관팻말이 보였다. 빛살과 구슬나무는 아주 오래된 과거로 여행하는 것만 같다. 도심 가까이에 이런 좋은 공간을 마련한 작가님들의 마음이 은은한 꽃향기처럼 전해진다. 오래전부터 두 분의 작품을 유심히 보고 있다. 요란하게 알은척한 적은 없지만, 마음으로 응원하며 관심 있게 바라보고 있다. 조금씩 서서히 스며드는 작품의 결과 인연의 느낌이 믿음감이 간다.

이런 내 마음이 통했을까? “구슬나무집미술관 2주년 기념-구슬나무꽃 피는 날 밤에행사라기보다는 축제에 초대를 받았다. 혼자 가기 쑥스러워 지인들 몇 명과 함께 갔다. 어떤 분위기인 줄 몰라 가는 길에 있는 정자에서 간단한 요기도 하고 술도 한잔 미리 마셨다. 쓸데없는 준비를 먼저한 셈인가, 아니면 그래서 더 좋았던가. 조촐하게 준비한 행사라고 했는데, 그 어떤 행사보다도 축제장이 되었다. 보랏빛 구슬나무꽃 사이로 흐르는 음악과 춤과 미술관 이야기들. 다양한 사람들의 만남. 누가 나에게 쑥스러움이 많은 사람이라고 하겠는가. 그날 끝까지 남아 즐거웠던 사람 중 한 사람이었다. 그때 그곳에서 처음 만나 인연이 된 사람들과 지금도 함께 문화예술을 즐기며 살고 있다. 그러니까 나에게 구슬나무집미술관은 어린 시절 오래전 기억처럼 내 안에 꿈틀거리는 작은 꿈이라던가, 요즘 잠자고 있던 시인으로서 소명 같은 것을 다시 살아나게 한다.

많이 지쳐있을 때 무심히 손 내미어 준 구슬나무집미술관에 오월이 지나고 가을이 되어 몇몇 지인들과 다시 초대를 받았다. 단풍 구경도 못할 만큼 분주했던 가을, 미술관 가는 길이 온통 가을이었다. 감나무 잎사귀는 떨어지고 환한 등불처럼 켜진 노란 감. 텃밭에 가지런히 재배된 배추, 상추, 고추, 푸성귀들. 뒤뜰 컨테이너에 그려진 그림들, 하늘이 환하게 올려다보이는 공간, 타닥타닥 타오르는 모닥불, 어떤 고급 음심점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정성스럽고 맛있는 음식들, 무엇보다도 귀한 사람들, 즉석 케익과 노래와 시낭송, 와인과 처음 마셔본 테킬라, 총명하면서 순한 진돗개 벼루, 힘이 있으면서도 편안한 작가님 작품들, 꽃이 떨어지고 파란 열매가 되어 미술관을 지키고 있는 구슬나무, 곧 눈이 오면 그 열매는 새들의 밥이 되고, 씨앗은 또 다른 새싹을 틔울 것이다.

자연의 순리대로 살아가면서,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박영도 작가님 부부의 삶이 너무도 아름다웠다. 무엇보다 그날, 작가님이 쓴 창문의 글 수어지교水魚之交라는 말이 깊이 와닿았다. 물고기에게 물이 없다면, 물에게 물고기가 없다면 무슨 소용인가? 아무리 많은 재주를 가졌다 하여도 그 재주를 빛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면 또 무슨 소용일까? 홀로도 빛나고 함께도 빛날 수 있는 우리들의 어울림이라면 그 무엇을 바라겠는가. ‘구슬나무집미술관은 나에게 강퍅한 세상살이에도 좀 괜찮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심지를 굳히게 하는 힘이 있다. 좋은 인연을 만난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선물인가. 그래서 고맙고 삶으로 실천하며 서두르지 않고 구슬나무집미술관으로 서서히 가고 있다.

* 구슬나무집미술관 : 전남 무안군 일로읍 죽산리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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