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단상-이철호 칼럼니스트]전쟁의 흔적과 다크투어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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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이철호 칼럼니스트]전쟁의 흔적과 다크투어리즘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3.01.20 09:47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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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시민신문] 내고향 진도는 한반도의 서남단에 위치하고 있다. 옥주라는 별칭이 말해주듯 비옥한 토지에 풍부한 물산, 그리고 수려한 풍광은 어느 곳에도 뒤지지 않아서 그야말로 보배섬이다. 헌데 이름값을 하는 건지 고대로부터의 역사를 더듬어보면 전쟁의 상흔을 보둠고 살아온 한의 세월이었다. 사실 진도가 겪어온 고난의 시간은 이름에서 연유했다기보다 지리적 위치에서 그 이유를 찾는 것이 옳다고 본다. 육상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았던 고대에는 하천과 바다가 요즘의 광역통신망이자 교통로였다. 바로 그런 점에서 진도는 서남부 해상의 요충지였고 중국과 일본을 잇는 문화의 교차로이자 융합로였다. 이같은 이유로 인해 진도의 곳곳에는 전쟁과 관련된 아픈 상흔이 널려있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의 흔적이 보존되고 있어서 역사, 문화, 인류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공부방이기도 하다.

반도의 끝 해남땅 우수영을 지나면 이순신장군이 정유재란때 승전고를 울렸던 울돌목에 다다른다. 좁은 해협에서는 바다가 토해내는 고래소리가 그칠 줄을 모른다. 육지에 붙여 놓기에는 아까운 듯, 섬으로 떨어져 있기에는 아쉬운 듯 그렇게 지척거리에 진도가 자리하고 있다. 왜군을 수장시켰던 그 자리에는 현대식 사장교 두 개가 손을 맞잡고 있다. 진도대교를 건너자마자 진도타워와 강강술래터가 있는 만금산이 버티고 있다. 강강술래는 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진도대교 아래에는 전쟁의 영웅 판옥선이 관광객을 부른다. 해마다 가을이면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로 돌아간다. 명량해전을 재현하는 축제가 열리기 때문이다. 명량해협의 전략적 가치는 충무공이 알아보기 전에 이미 왕건의 눈에 들었다. 왕건이 후백제의 나주를 공략하기 앞서 이곳부터 선점한 것을 보면 장수들 눈은 다른 듯 같은가 보다. 울돌목을 지나면 조금 넓은 바다가 펼쳐지고 감부도와 벽파정이 보인다. 명량대첩의 대승을 잉태한 무대이다. 충무공은 진도민에게 바다를 배웠고 이를 활용한 승리의 비책을 이곳 벽파진에서 구상하셨다. 벽파진승전비는 마산 출신의 노산 이은상선생이 비문을 짓고 진도가 자랑하는 서예가 소전 손재형선생이 글씨를 썼는데 그 자체가 문화재감이다. 해안선을 더듬어가다 보면 마산리에 이른다. 이 해안에 명량해전에서 죽은 왜군의 시체가 떠밀려오자 진도민은 이를 거두어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니 바로 왜덕산이다. 전쟁의 참혹함과는 별개로 전쟁의 희생자들인 사체에게 덕을 베푼 진도민들의 휴머니즘을 느낄 수 있는 다크투어리즘 현장이다. 왜덕산에서는 매년 9월이면 국제평화학술대회가 열린다.

우리 역사에서 진도와 해남 등 서남해지역이 다시 한번 주목을 받게 되는 시기가 대몽항쟁기이다. 삼별초는 고려시대에 최씨무신정권의 사병이었다. 원종 중심의 문신들에 의해 개경 환도가 결정되자 배중손은 승화후 온을 왕으로 추대하여 반란을 일으킨다. 1000여 척의 배에 나눠타고 강화도를 떠나 당도한 곳이 진도였다. 여몽연합군 김방경과 홍다구에 의해 진도가 점령되고 제주로 밀려나기까지 약 9개월간 진도의 용장성은 엄연한 왕궁이었다. 당시 삼별초의 지휘부였던 김통정, 배중손 등과 관련된 설화와 왕온의 묘, 궁녀둠벙 등 전쟁을 웅변해주는 유적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삼별초가 항몽의 무대로 진도를 주목한 것은 앞서 언급한 이유 외에도 무신정권의 기반이 있었다. 최충헌의 손자이자 최우의 아들 최항이 일찍이 진도의 용장사에 머물며 전횡을 하였다는 기록이 고려사에 전한다. 김통정 일행이 제주의 항파두리성에서 최후를 맞이한 것은 두 섬의 주민이 비슷한 고초를 겪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오랜 세월 크고 작은 전쟁터였던 진도, 그리고 이곳에서 삶을 이어온 민초들은 얼마나 고단하였을까? 심지어 여말에는 왜구들의 침탈로 인해 섬을 비우고 육지로 이주하여 90여 년을 떠돌이 생활을 한 적도 있었다. 유배 등 또 다른 이유로 진도에서 타향살이를 했던 사람들의 삶 역시 순탄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진도민들, 그리고 진도를 찾는 관광객들이 이곳의 과거를 다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를 감안하여 역사적 사실과 설화들을 스토리텔링화 한다면 그 가치는 문화, 경제적으로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폭발적인 힘을 갖게 될 것으로 사료된다. 과거의 어두운 역사를 들추어내서 상처를 덧나게 할까 노심초사했던 시절에는 다크투어의 공간이 존재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현대는 다크투어에 대한 수요와 공급이 증폭되고 관심도 더불어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진정성 있는 자세로 접근하되 관광목적지에 부합하는 스토리텔링을 창안하고 역량을 갖춘 문화해설사들이 활약한다면 차원높은 다크투어 관광지로 진도가 거듭나리라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는 즉흥적이고 임기응변의 땜질정책을 지양하고 지자체의 지속적인 관심과 이에 기반한 장기적인 문화관광정책을 추진해야 함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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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길 2023-01-27 09:49:18
진도는 지리적으로 좋은 산과 비옥하고 넓은 농토 풍부하고 질 좋은 해산물이 많아서 보배섬이라 한건 같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역사속 상처와 한이 있었군요. 그러나 꿋꿋히 이겨내 오늘도 역사의 한페이지를 넘기고 있군요.

박소리 2023-01-20 13:49:45
좋은글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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