雲林山房은 林田의 것이 아니다.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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雲林山房은 林田의 것이 아니다. (30)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13.05.24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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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 후기 소치(小痴) 허련(許練) 선생의 화실이었던 운림산방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200년 동안 4代에 걸쳐 5人의 화가를 배출한 대 화맥의 산실로 1982년 소치(小痴)의 손자 남농(南農)이 이를 복원하여 국가에 헌납함으로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한국제일(韓國第一)의 미술문화유적지이다.

근대에서 현대로 이어지는 한국화(남종화)의 큰 흐름이 지금까지 운림산방을 중심으로 유지 발전되고 있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미술사적인 측면에서 볼 때 그 권위와 위상이 하늘을 찌르고도 남아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은 것은 우리들 모두가 운림산방의 대 화맥(大畵脈)을 과소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1978년 한국미술 5000년 展이 세계의 주요 도시에서 전시되어 우리의 찬란한 문화와 역사를 온 누리에 널리 과시한 바가 있었듯이 일가직계(一家直系)로 200년을 내려오는 운림산방의 화맥도, ‘200년’과 ‘일가직계(一家直系)’라는 두 대목에 그 초점을 맞추어 보면 가히 세계적인 문화상품으로 발돋움 시킬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한데 그러한 운림산방이 1986년 전라남도 지정기념물 제51호로 지정된 이후로 아직까지 상근(常勤)하는 전문적인 관리인 하나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하고 있으니 지금이라도 문화예술에 관심 있는 식자(識者)들의 의미있는 항변과 조언이 있어야 할 것이다.

운림산방이 3대째 만두만 빚어도 난리법석을 떠는 일본에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지금쯤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세계적인 예술성지로 매김하고 있을 것이다.
 
내 그림에는 ‘운림산방4대주인(雲林山房 4代 主人)’이라는 당호(堂號)가 들어가 있다.
그것은 별 볼일 없었던 초년 시절에는 내가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과시하는 표시였으나 중년 이후에는 운림산방의 화맥을 널리 알리는 홍보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雲林山房은 국가의 것이다.
林田 혼자 홍보하고 林田 혼자 관리하는 곳이 아니다. 이제라도 국가적인 차원에서 좀 더 세심한 관심과 배려를 할 시기가 아닌가 싶다.

지금 4대를 이어 5대로 열어가고 있는 허소치의 후손들-
그들은 이 시각에도 가문의 명예와 영광을 위해 끝없이 나래 짓 하고 있다.
운림산방이 세계에 단 하나 밖에 없는 살아있는 미술관(현재진행형)이기 때문에 그들의 나래짓 또한 더욱 현란(懸欄)하게 퍼덕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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