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읽기-조준 교수] 고난을 대하는 자세 (부제 : 닭을 잘 기르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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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읽기-조준 교수] 고난을 대하는 자세 (부제 : 닭을 잘 기르는 법)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3.03.02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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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신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조준 교수

[목포시민신문] 어떤 왕이 역사가들에게 인류의 역사를 기록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그들이 기록해 온 곳을 보니 그 양이 너무 방대하여 다 읽을 수가 없어서 다시 기록하라고 했다. 대폭 줄여서 몇 권의 책으로 정리했으나 그것도 역시 양이 많아서 더 짧게 기록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역사가들은 글자 하나를 써서 역사가에게 올렸다. 그 글자는 다름 아닌 괴로울 고()자였다고 한다. 누구나 평안한 삶을 원하지만 인류 역사상 그런 삶을 살았던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한평생 행복할 때보다는 낙심되고 좌절할 때가 더 많다. 그래서 그런지 고난은 인간의 역사 내내 우리들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화두였다. 그리고 지혜로운 선조들은 우리가 고난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것을 권유하고 있다.

명심보감에서는 苦者樂之母 고난은 즐거움의 어머니라고 하였고, 우리 속담에는 초년(初年) 고생은 은() 주고 산다는 말이 있다. 영어 속담에도 “No pains, No gains” 고난 없이는 소득이 없다는 말이다. 유대인들의 격언에도 하나님은 사람을 시험해 보지 않고는 높은 자리에 올리지 않으신다는 말이 있다. 여기서의 시험은 고난을 의미한다. 한결같이 고난을 의미 있게 수용하고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실존적 정신요법을 개발한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은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정신 자세는 의미를 지향하는 의지라고 주장한다. 프랭클은 정신과 의사로서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서 배고품과 추위와 그리고 짐승같은 취급 속에서 시간마다 죽음의 공포 속에서 떨면서, 그는 삶의 의미를 상실한 사람들이 힘없이 죽어 가는 모습을 보았다. 그러나 그 혹독한 고난 속에서도 살아야 하는 의미를 가진 자는 모든 고난을 견뎌냈다. 빅터 프랭클은 이와 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실존적 정신요법을 개발하여 세계적으로 선풍을 일으켰다. 한번은 나이 많은 의사가 심한 신경쇠약 때문에 빅터 프랭클을 찾아왔다고 한다. 그는 몹시 사랑하였던 부인을 2년 전에 잃고는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그를 도울 수 있을까 ? 그에게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프랭클은 그에게 아무 말을 하지 않고 그 대신 당신이 먼저 죽고 당신 부인이 살아남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 라고 질문하였다. “그녀에게는 참기 어려운 고통이었을 것입니다라고 그는 대답하였다. 프랭클은 그 말을 듣고 부인은 그런 고통을 받지 않게 되었고, 그 대신 선생이 그 고통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선생이 살아남아 부인을 애도하여 그 댓가를 치러야지요라고 말하였다. 그는 아무 말도 않더니 프랭클의 손을 쥐고는 조용히 프랭클의 사무실을 떠났다고 한다. 고난은 그 의미를 발견하는 순간에 어느 점에서 고난은 고난이 되기를 그친다.

고난속에 있는 아들에게 보낸 현명한 아버지의 편지속에서는 고난을 대하는 바람직한 자세도 엿볼 수 있다. 정약용이 둘째 아들 정학유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 이런 대목이 있다. “네가 닭을 기른다고 들었다. 참으로 좋은 일이다.” 아버지의 정치적 좌절로 인해 과거 시험을 볼 기회마저 단절된 아들의 입장에서는, 옳은 길을 추구해야 할 사대부 신분으로서 생계의 이익을 위해 양계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부끄러웠을 것이다. 그런데 유배지에서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정약용은 아들을 칭찬하면서, 다만 이 일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품위 있는 것과 저속한 것, 맑은 것과 탁한 것의 변별이 있음을 강조했다. 정약용이 우선 제안한 것은 연구와 실험을 통한 개선이다. 관련 서적들을 섭렵, 숙독하여 좋은 기술을 선별적으로 도입하고, 닭을 종류별로 나누어 길러 보기도 하고 시설을 다르게 만들어 보기도 하는 비교 실험을 통해 효율을 높이기 위한 개선 방법을 도출하라는 것이다. 다음으로 정약용은 닭을 제재로 시를 쓰라고 권했다. 닭의 생태를 매일 세세하게 관찰하면서 그것을 어떻게 표현할지 깊이 고민하는 과정은, 이전에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을 새롭게 발견하고 깨닫는 시간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양계에 관한 기존의 지식을 집대성하여 체계적인 저술을 하라고 제언했다. 이렇게 한다면 닭 기르는 일이 단순한 기술을 넘어 고상한 풍취에 이르게 되고, 이익을 추구하는 세속적인 일에서도 옳은 길을 발견하며 맑고 높은 품격을 갖추게 된다고 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힘든 시기라고 이야기한다. 중요한 것은 이 힘든 시기를 대하는 우리의 마음가짐이다. “이것도 다 지나가리라는 말처럼 고통의 시기는 언젠가 지나갈 것이다. 그러나 막연히 기다리기만 하면 좋은 날이 저절로 오는 것은 아니다. 고난의 시기에 그 원인을 분명히 알고 직시하며 현재의 상황에서 해야 할 최선을 찾아야 한다. 정약용이 아들에게 제안했던 닭을 잘 기르라는 말이 가슴에 더 아리게 박히는 시기를 우리는 지금 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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