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단상-조기호 시인]엘리베이터 안에서 문득 ’우리‘를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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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조기호 시인]엘리베이터 안에서 문득 ’우리‘를 생각하다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3.03.10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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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시민신문] 안녕하세요?”

아침 산책을 나가려고 엘리베이터에 오르는데 작은 꼬마 아이가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것이었다. 아이의 손을 잡고 있던 엄마도 멋쩍게 눈인사를 건넸다.

후하, 고마워라! 근데 왜 내게 인사를 했어요?” 하도 고맙고 기특해서 칭찬 겸 한마디를 건넸더니 순간, 망설임도 없이 내게 대답을 하는 것이었다 우리 아파트에 사시잖아요.”

우리?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본 말이라서 왠지 생소하게 느껴졌다. 그랬었다. 한 아파트에 이웃하며 살면서도 우리는 날마다 그저 낯선 사람으로 엘리베이터를 오르내릴 뿐이었다. 짧은 한마디의 인사도 나누지 못하는 우리들은 그렇게 서로에게 무심한 타인(?)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오늘 저 꼬마 아이가 나를 그의 이웃으로 반겨주었고 그동안의 내 행동들을 부끄럽게 일깨워주는 것이었.

솔직히 엘리베이터 안의 공간만큼 무겁고 딱딱하고 서먹서먹한 곳이 세상에 또 어디 있을까 싶. 그래서 나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사람들을 만나면 그런 어색함을 덜어보고자 넌지시 말을 붙여보려고 눈치를 살피곤 했었다. 그럴 때마다 나의 행동에 대해 아내는 그냥 조용히 있지 뭐하러 상대방이 불편하게 오지랖을 떠냐고 나의 경솔함(?)을 질책하곤 했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라는 공동의 삶을 이루어야 하는데 그러한 세상은 내가 를 인정하고 네가 를 이해하는 데서부터 비롯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문화가 발전하고 세상이 바뀌었다 하더라도 그저 물질만으로 삶을 영위할 수는 없을 터, 그러므로 혼자 살아가는 일이란 얼마나 외롭고 쓸쓸한 일이겠으며 끝내 그것이 가능한 일이 되겠는가. 형제와 친척, 친구를 비롯한 모든 이웃들 없이 존재하는 가 있을 수 없고, 내가 없이 있을 수 있는 그들 또한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더구나 서로를 인정하고 함께하지 못하는 너와 나라면 도대체 어떤 세상에서 사람들이 우리를 만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를 만나기 위해서 힘써야 할 일은 무엇보다도 상대방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배려의 마음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나만의 생각과 판단과 주장만을 앞세우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특별하고 굳센(?) 삶을 나무랄 까닭은 없다. 그러나 그런 삶을 누리는 방식이 또 다른 삶을 살아가는 이웃들에게 피해를 주게 되는 경우라면 당연히 그 생활방식이 조정되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아무리 자기 방식의 삶을 누릴 자유가 허용된다 하여도 무조건 자기만의 삶(생각과 판단과 행동)을 고집하는 것은 독선이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건대, 상대방을 고려하고 이해하지 못한 나만의 행동이 급기야 살인사건으로까지 비화된 층간 소음의 문제를 비롯한 세상 곳곳에서 발생하는 시비와 분쟁과 다툼, 그리고 모든 사건 사고들의 배후를 살펴보면 모두가 한결같이 상대방에 대한 배려의 부재가 그 원인이었다. 더구나 여야를 막론한 이 나라의 정치인들까지 나는 옳고(맞고) 너는 그르다(틀리다)’ 라는 내로남불의 행태를 거침없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 또한 우리라는 국민들의 뜻을 바르게 수용하여야 하는 공정과 상식의 이치에도 철저히 어긋나는 행동인 까닭이다.

人間이 신을 질색케 하는 것은 인간의 나약함이 아니라 <人間歪曲된 힘>이라고 하였다. 내 안에서 자라는 오만과 독선과, 편견과 아집을 버리고 이제는 따듯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이다. ‘배려란 역지사지(易地思之)를 통한 너(상대방)에 대한 관심이며, 너에 대한 이해며, 너에 대한 사랑이다. 그리고 그런 를 통한 나의 완성이기도 하다.

진정한 우리가 될 수 있도록 너와 나를 일깨워주는 어느 기도서의 마지막 구절을 가만히 떠올려 본다.

서로의 모습이 다른 것처럼 / 서로가 다른 존재임을 인정하며 / 서로를 보완하여 완성하는 기쁨을 허락하소서 / 언제까지나 소중한 존재로서 / 곁에 머물며 / 늘 변함없는 마음으로 감사하게 하소서너와 나에 대한 믿음으로 서로를 보완하는 일 없이 온전한 우리를 이루는 일이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까닭이다.

너의 생각과 너의 마음을 따듯하게 보듬을 수 있을 때 너와 나는 우리라는 아름다운 친구로 함께 어깨동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에게 베푸는 사랑까지도 때로는 안타까운 결말에 이르는 경우가 있으니 사자와 소의 사랑이 바로 그러한 경우가 아닐까 싶다.

사자와 소가 서로 죽도록 사랑을 하여 결혼을 하고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둘은 서로에게 최선을 다하기로 약속하였습니다소는 최선을 다하여 맛있는 풀을 모아 사자에게 대접을 하였습니다. 사자는 싫었지만 참았습니다. 사자도 최선을 다하여 맛있는 살코기를 소에게 대접하였습니다. 소도 괴로웠지만 참았습니다그러나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 둘은 결국 헤어지게 됩니다헤어지면서 둘은 서로에게 말합니다. “나는 최선을 다했어!”

소는 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았고, 사자는 사자의 눈으로만 세상을 보았던 '소의 세상''사자의 세상'만이 있었을 뿐이었다. 나만의 최선, 남을 보지 못하는 최선.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없는 최선, 그리하여 마침내 우리가 되지 못하는 그런 최선은 최선일수록 최악을 낳을 뿐이라는 참으로 씁쓸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나는 가만히 눈을 감고 엘리베이터 안에서 방긋 웃음으로 인사를 건네주던 꼬마 아이를 떠올리며 나 스스로에게 묻는다. 너의 우리는 안녕하냐고? 그리고 너의 최선은 또 어떠하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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