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읽기-홍선기 교수] 일본 섬 인문지형의 변화 - 오키나와, 가고시마, 히로시마, 야마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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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읽기-홍선기 교수] 일본 섬 인문지형의 변화 - 오키나와, 가고시마, 히로시마, 야마구치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3.03.10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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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선기 목포대학교 교수

[목포시민신문]20231~2월 겨울 방학을 이용하여 다녀온 일본 지역이다. 이 네 지역의 공통점이라면 일본에서도 대표적으로 섬이 많은 지역이다. 오키나와현(沖縄県)는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매우 중요한 관계가 있던 류큐왕국이 있던 곳으로 고려왕조가 무너지면서 끝까지 투쟁하다 류큐로 도피한 삼별초를 비롯하여 제주도(당시 탐라)와의 관계, 전설의 홍길동에 이르기까지 무궁무진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섬 지역이다.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하면서 미국이 오키나와를 점령하다 현재는 일본에 복속되어 있지만, 지금도 독립의 의지를 가지고 있다. 이번 오키나와현 조사에는 2021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야에야마제도(八重山諸島)의 이리오모테(西表島)와 이시가키(石垣島)섬으로 국립공원에 속해있다. 이 두 섬의 약 35%가 국립공원, 8%는 보호구역으로 지정될 정도로 열대와 아열대 생태계 식물이 골고루 분포하고 있고, 이리오모테네코(Prionailurus bengalensis iriomotensis Imaizumi, 1967)라고 하는 고양이과의 고유종인 살쾡이가 서식하고 있는 독특한 자연을 가지고 있다. 특히 동북아에서 가장 북단에 위치하는 맹그로브 숲이 있는 곳으로 모두 6종의 맹그로브 종류를 확인할 수 있다.

이리오모테는 세계유산으로 지정 이후, 생태관광 프로그램의 활성화, 유기농 자연농업의 확대, 관광객의 무분별한 행위 제어를 위한 규칙 제정 등 지역 주민들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리오모테는 이시가키섬에서 쾌속선으로 30~40분 거리에 있다. 중국과 일본 사이의 섬 문제라면 역시 센카쿠열도를 중심으로 한 해역 갈등이다. 센카쿠열도는 이시카기에 포함된 부속섬이다. 따라서 최근 이시가키섬의 공항이 확대되고, 육군 자위대가 대폭 증파하는 등 평화로웠던 이 지역이 중일간의 군사적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가고시마현(鹿児島県)은 과거에 여러 섬을 다녀봤지만, 이번엔 최남단 요론지마(与論島)에 다녀왔다. 앞서 오키나와의 두 섬에 비하면 요론지마는 해발고도가 매우 낮은 평지의 섬(平地島)이고 산호초 해안이 발달했다. 이 섬도 아마미군도(奄美群島)국립공원에 포함되어 있다. 생태관광이 주요 수익인 이리오모테에 비하면 어업이 활발한 섬이다. 대표적인 농업은 사탕수수이다.

이곳 주민들과의 인터뷰에서 산초호에서 조수간만의 차이를 이용한 전통어업도 있다고 하는데 마치 우리나라 서남해에 분포하고 있는 독살(石防簾)의 자연형 방식이 아닐까. 히로시마현(広島県)과 야마구치현(山口県)은 일본의 지중해라고 하는 세토내해(瀬戸内海)를 통해 서로 인접한 지역이다. 세토내해는 약 1,000여개의 유무인도가 있는데, 이 두 지역에 가장 많이 섬이 집중되어 있다. 일본 대도시 중 하나인 히로시마시(広島市)에 부속된 니노시마(似島). 일본의 명산 후지산(富士山)과 모양이 비슷하다 하여 섬 이름이 생겼고, 실제 아키노코후지산(安芸小富士, 278m)이 있다. 세토내해 여느 섬과 마찬가지로 메이지(明治) 개혁이 시작되면서 많은 섬 주민들이 본섬으로 이주, 산업에 투입되었다. 또한 산업 현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많은 폐기물들의 매립장소로 이용되기도 하고, 해역의 모래는 도시건설에 이용되었다. 니노시마는 특히 메이지시대 포로수용소나 집단 방역시설이 설치된 곳으로 중일전쟁이나 2차대전, 히로시마 원폭 때 피폭을 받은 많은 군인들과 시민들이 집단 수용되어 사망한 곳이다.

니노시마는 우리 근대사에서도 기억해야할 곳이다. 고종황제 다섯째 아들 의친왕의 차남인 이우(李鍝, 1912.11.15.~1945.8.7.)가 히로시마 원폭에 피폭, 87일 이 섬에서 요절한 불운의 곳이다. 또한 명성황후를 살해했던 낭인들이 일본 도피 후, 일시적으로 숨어든 곳이 이 섬이라고 한다. 니노시마 섬 전체를 자연친화적인 체험 공간으로 바꾸고 히로시마시내의 어린이들이 역사와 자연을 체험할 수 있도록 시설을 정비 중에 있다. 히로시마현 미야지마(宮島)도 방문하였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쓰쿠시마진자(厳島神社)를 비롯하여 섬 전체가 세토내해 국립공원과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된 곳이다. 일본 고대사와 신화, 그리고 중세사 연구에 중요한 섬이기도 하다. 미야지마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글을 썼기 때문에 여기서는 생략한다.

야마구치현(山口県)에서는 연륙된 스오오시마(周防大島)을 비롯하여 부속섬인 오키카무로(沖家室島)를 방문하였다. 오오시마는 일본 근대 민속학의 아버지인 미야모토 쓰네이치(宮本常一, 1907~1981)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고, 또한 그의 묘지가 있는 곳이다. 이곳에 그의 전시관이 있어서 방문하였다. 미야모토씨는 일본 상민문화연구를 지원했던 시부사와 게이조(渋沢敬三)의 후원으로 일본 각지의 민속, 문화, 관광자원을 조사하고 연구한 학자이고, 일본 최초로 민구학(民具学)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개척한 연구자이다.

특히 일본 섬 연구에도 많은 기여를 하여 일본 섬 지원 개발법인 이도진흥법(離島振興法)’이 생기는데 크게 기여하기도 하였다. 그런 영향을 받아서인지, 이 섬에는 오사카나 도쿄에서 이주해온 젊은 청년들이 다양한 섬 재생 활동을 하는 섬이기도 하다. 인구감소, 고령화, 연륙교에 의한 섬 인구 유출 등 다양한 사회변화를 겪고 있는 일본의 섬이지만, 대도시 생활에 염증을 느낀 젊은 세대가 이 섬에 돌아와 농업, 어업으로 새로운 삶의 가치를 만들어내고 있다. 메이지시대 세토내해 연안이 산업기지로 전환하면서 많은 젊은이들이 주변 대도시로 몰려들었고, 도시 인구가 폭증하면서 일본정부에서는 당시 조선이나 만주로 대거 이주시키려는 정책을 세웠다고 한다. 이곳 오오시마와 오키카무로에서도 섬 주민들이 어업, 상업, 농업개척 등을 목표로 조선(인천, 군산, 원산, 전남 등), 만주, 하와이, 브라질로 이주했다.

오오시마나 오키카무로에는 매년 하와이나 브라질 이민 3, 4대 혈육들이 찾아온다고 한다. 그래서 오오시마를 일본의 하와이라고 부른다고 하니, 현대의 일본 섬 상황과 견줘볼 때, 시대를 초월한 아이러니한 섬 정체성 변화를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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