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기원 ? 인간은 왜 스토리텔링에 탐닉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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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기원 ? 인간은 왜 스토리텔링에 탐닉하는가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13.05.30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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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가 인간의 진화를 도와준다고?

 
[목포 시민신문] 인간을 규정하는 수식어는 그 시대가 주목하는 인간의 특별한 능력과 관련이 있다. 예를 들어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표현은 지금은 케케묵은 것이 되었다. 동물들도 사회를 구성한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지만, 사회적이란 표현은 우리시대를 특별하게 ‘덧입히는’ 의미를 이끌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최근 수십 년 동안 인간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의 하나는 “이야기하는 동물로서의 인간”이다. 인간은 왜 이야기에 매료되는가? 왜 이야기를 들려주려하고 그것을 들으려하는가? 이야기의 구조와 기법이 연구되고 그 내부에 깔린 인간의 욕망이 분석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이야기에 대한 관심은 이제 서사학(Narratology)이라는 독립된 학문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뉴질랜드 오클랜드 대학의 교수인 브라이언 보이드의 『이야기의 기원』은 제목만 봐서는 기원에 관한, 즉 인류가 이야기를 언제부터 만들고 즐기게 되었으며, 그것의 원인과 배경은 무엇인지를 다룬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책의 관심은 서사학에서 지금까지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았던, 이야기와 진화의 끈끈한 관계이다. 보이드는 인간이 지적인 동물로 진화하는 데 있어 이야기하는 행위가 깊이 관여했으며 어떤 면에서는 필수적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야기의 기원』이라는 제목을 다윈의 『종의 기원』에서 빌려온 사실은 저자의 의도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하나의 종이 적자생존과 자연선택을 따라 진화했듯이, 침팬지에서 인간으로 진화하고 결국에는 호모사피엔스라는 종으로 진화하는 데에는 이야기가 적극적으로 기여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슬며시 한 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적응을 위해 보다 강력한 종이 자연의 선택을 받고 우월한 유전자가 살아남아 그 종을 유지하고 진화시킨다고 했을 때, 정신도 그 적응의 법칙에 적용되는 것인가? 저자는 거침없이 그렇다고 말한다. 반복되는 적응과정에서 인간이 독특하게 습득한 능력이 “인지적 영역(cognitive niche)”이다. 사회적 동물 중에 유독 인간만이 지능을 통해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려 한다. 
 
사회적 관계에서 인간은 자연스럽게 타인에 대해 관심을 가지며, 그 관심은 정보에 대한 욕구로 이어진다. 그럴 때 인간은 독특하게 유형화된 정보를 원하고, 픽션은 “유형화된 사회적 정보를 가진 놀이의 한 형태”가 된다. 생물진화적 관점에서 픽션은 비생산적으로 보이지만, 인지진화적 관점에서 픽션은 사실적 정보를 뛰어넘는 우월한 생산성을 가지게 된다.

스토리텔러는 허구적으로 재구성한 정보를 들려주며 청자의 관심과 감정에 호소한다. 이야기 소통에 길들여진 청자는 더 창의적인 이야기를 욕망하게 되고, 스토리텔러는 청자를 유혹하기 위해 새로운 유형의 이야기를 제작한다. 그 과정에서 인간은 스토리텔러로서 그리고 청자로서 인지적 영역을 확장한다. 인간이 진화하면 스토리도 함께 진화한다. 따라서 스토리텔링은 종 사이에서 인간을, 또한 인간 사이의 경쟁에서 적자로 생존하는 데 필수적인 행위로 작용하게 된다. 
 
『스토킹 나보코프』,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등의 저자로 알려진 브라이언 보이드는 영문학자이다.

『스토리의 기원』은 영문학자인 그가 스토리에 대한 전통적인 서사학 연구에서 빠져나와 통학문적인(혹은 통섭적인) 접근, 즉 진화론과 서사학을 접목시킨 것이다. 스토리텔링이야말로 인간이 성공적으로 진화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였으며, 현대에도 우리를 우세종으로 이끌어 가는 핵심적인 행위라고 주장한다.

지극히 신선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이 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도한 논증 때문에 핵심을 짚어내기가 쉽지 않다. 저자는 목표지점을 바로 앞두고 가닥을 놓친 것이 아닐까. 어쩌면 그것이 모든 실험적인 책의 운명일 것이다. 보이드의 다음 책을 기대해본다.

서평자/ 전기순(한국외국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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