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서점 이주의 추천 책]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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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서점 이주의 추천 책]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3.03.30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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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박태원 지음 / 문학과지성사

·2005. 04. 18 발행

[목포시민신문] 1934년 경성.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유학까지 다녀왔지만 정해진 직장도 없고,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스물여섯 살의 구보는, 거의 매일 자신이 귀가하길 기다리다 이불도 없이 맨바닥에서 깜박 잠이 들곤 하는 어머니의 당부를 뒤로하고 길을 나선다.

정오쯤 집을 나선 구보는 딱히 가야 할 곳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서울(경성) 곳곳을 돌아다닌다. 집이 있는 청계천에서 광화문으로, 광화문에서 명동과 서울역으로 중간에 전차를 타기도 하고, 제비다방과 낙랑파라라는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하며, 전차에서 옛사랑의 기억과 마주치기도 한다. 부유하듯 서울을 떠돌던 구보는 다음날 새벽 두 시경 늘 그렇듯 어머니가 먼저 잠이 든 집으로 귀가한다.

6~70페이지 남짓한 소설의 내용은 이것이 전부다. 흔한 소설적 장치도, 복선도, 다른 주요 등장인물이나 그럴듯한 사건, 사랑 이야기조차 없이 끝난다. 마치 , 이것은 소설이니 누구든 여기서 재미를 발견해봐.’라며 도발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이 소설은 읽고, 기억할만한 작품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쫓기는 듯 초조하면서도 조금은 짜증스럽기까지 한 답답함을 느꼈다. 이 초조함과 답답함이 바로 구보라는 인물이고, 그가 마주한 현실이고, 그가 걷고 있는 1934년 경성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물속에서 숨쉬는 듯한 답답한 현실에서 구보는 익숙한 서울을 걷고, 보고, 들으며 살아간다. 구보에게 걷는다는 것은 매일 반복하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자, 자신을 둘러싼 현실을 살아가는 방법이고 몸부림이었을 것이다.

목포에 책과 쉼이 있는 작은 공간을 마련하며, 이름 짓는 일에 무척 어려움을 느꼈다. 그럴 때 불현듯 생각난 게 바로 구보였다. 경성을 직접 두 발로 걷고, 느끼고, 살아간 구보처럼 이 공간을 찾는 사람들은 목포라는 도시를 걷고, 느끼고, 발견하길 바랐다. 목포라는 도시를 처음 마주했을 때 느꼈던 감정을, 이곳에 삶의 공간을 만들고 살아가며 발견한 것들을 목포를 방문하는 다른 이들도 느끼고,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단장을 짚고 경성을 거닐었던 구보씨처럼 목포를 두 발로 걸으며 익숙한 듯 낯선 삶을 마주하는 사람이 많아지길 바라본다.

<구보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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