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단상-김수미 부회장] 소비자운동은 인권운동이다
상태바
[수요단상-김수미 부회장] 소비자운동은 인권운동이다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3.03.30 09: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수미 전남·목포소비자연맹 부회장

[목포시민신문] 소비자단체에 들어와서 거의 교통비수준의 40만원의 월급을 받았음에도 나는 내가 배운 학문을 써먹는다는 재미에 빠졌고, 소비자들의 애환이 깃들어 있는 소비자상담이 힘들면서도 보람이 있었다.

임신을 한 상태에서 상담을 받을 때였다. 물건을 구매했는데 사용하고 나서 반품을 하고 싶다는 내용이었지만 이미 청약철회기간이 지나 반품은 어려운 상황이었고 소비자분쟁해결기준과 법령에 의거하여 상담을 하였다. 그런데 그 분은 화가 난 상태에서 왜 안되냐며사무실로 무작정 찾아 오겠다고 하였다. 한걸음에 달려온 소비자는 처리를 요청하며 계속 따졌고,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 대해 설명하였더니, ‘어디 눈을 똑바로 보며 이야기 하냐며소리를 질렀다. 그럼에도 나는 눈을 보고 이야기 해야 거짓이 없지요하며 그분의 눈을 아이콘텍하며 이야기 했고 나중에는 진정하시고 나가셨다. 사실 임신을 한 상태였기 때문에 돌발상황이 있지 않을까 약간의 두려움도 있었지만 차분한 상태로 그분을 이해시켰었다. 나가신 소비자는 한참 후에 다시 오셨는데 손에는 비닐봉지가 들려있었다. 봉지 안에는 박카스 4병이 들어 있었다. 화를 내서 미안하다고 고맙다고 이야기 하시는데 오히려 그때서야 울컥하였다.

그래 오죽 화가 나셔서 그랬을까 그런 소비자들은 감사하기까지 하다.

한번은 교도소에서 막 출소 하신분이 채칼을 사셨는데 채칼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셨다. 가지고 오시면 제품의 하자가 있는지 보겠다고 하였다. 그분은 화가 나셨는지 판매한 사람을 칼로 죽여버리고 싶다는 말까지 하셨다. 오히려 말로 그런 분들은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나를 다독이며 상담을 하였다. 편견보다는 사실에 집중하자 채칼의 하자가 보였고, 사업자와 통화하여 반품을 요청하였다. 사업자는 하자가 아니라고 우겼지만 반품을 해주기로 하였고 극적으로 처리가 되었다. 반품이 되자 그분의 화는 풀렸고 저에게도 감사하다며 웃는 모습으로 나가셨다.

20년간 하루에 20건에서 많게는 40건의 상담을 받았던지라 상담을 받으면서 간혹 본의 아니게 그들의 인생사까지 듣게 되기도 하였다. 10년도 더 된 오래된 상담내용이기에 이제야 이야기 할 수 있지만 한번은 본인이 시켰던 치킨이 다른 집에 배달되어 클레임을 걸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남편이 고객으로 등록된 치킨 집에서 내연녀집으로 배달이 된 웃지 못할 상황도 생겼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정현종 시인의 <사람이 온다는 건>의 시처럼 소비자상담을 하게 되면 사실 그 사람의 삶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기도 하다. 소비자문제는 처리를 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억울한 사연을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떤 때는 억울한 소비자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게 고작 법 테두리 안에서만 가능한 것에 속상한 적도 많았다.

다양한 소비자를 만나고 그들을 이해하고 내가 삶아온 삶과 버무려지면서 한층 더 애틋함이 느껴진다. 지금의 MZ세대는 인터넷으로 접수하여 대면하는 것을 싫어하지만 그럼에도 최종 처리를 통보하면서 전화통화를 해야 한다. 그래서 그들의 목소리만 들어도 템포만 들어도 소비자의 유형이 파악되기도 한다. 혹은 글에서도 그 사람의 성품이 느껴지기도 한다.

삶을 살아온 날이 많아지면서 더 많은 소비를 하는 소비자로 사는 나도 부당한 일을 당하면 화를 내기도 하고, 클레임을 걸기도 하기에 이제는 그들이 더욱 이해가 된다. 소비자를 이해하는 만큼 그만큼 사업자의 고충도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어 진상소비자가 되지 않기 위해 최대한의 예의를 지키려 한다.

최초의 소비자 운동의 대모라 불리우는 한국소비자연맹의 정광모 회장님이 돌아가신지 10주기가 되었다. 정광모 회장님은 소비자운동은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다. 생활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소비자운동이기에 생활운동이다. 그래서 소비자 운동은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나, 사람에 대한 따뜻한 마음 없이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라고 하셨다.

소비자운동은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위한 운동이다. 그래서 소비자 운동은 인권운동의 일부이다. 따뜻한 시선과 마음이 없이는 소비자운동이 어렵다. 그래서 불의에 민감했지만 따뜻한 마음이 부족했던 20대의 나에게도, 현재의 나의 삶이 버거워 따뜻한 시선이 부족한 지금의 나에게도, 소비자운동은 여전히 어렵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