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양세영 교수]근대역사공간 추진…목포 살았던 일본인 삶 살펴볼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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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양세영 교수]근대역사공간 추진…목포 살았던 일본인 삶 살펴볼 필요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3.04.13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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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세영 세한대 교수(목포-일본 희망포럼 공동대표)
일제강점기 목포에 산 일본인의 삶 고찰

1897년 개항한 근대도시 목포는 아직도 그 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거주했던 만호동과 유달동 등을 중심으로 일본식 근대 건축물이 산재해 있다. 문화재청이 이곳에 근대역사문화공간 조성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면서 식민시대 일본인들이 살았던 가옥과 건축물이 주목을 받으면서 이곳에 살았던 일본인들에 대한 관심도 높아가고 있다. 본지는 지난해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아 일제강점기 상흔왜곡된 삶 조선-일본인주제로 기획 보도를 했다. 일제강점기 총독부 기관지인 경성신문 기자와 하이쿠 시인으로 활동했던 일본인 무라카미 교시를 통해 당시 일본인들의 삶을 엿보았다. 세한대 양세영 교수가 최근 목포문화에 기고한 후 보완한 재목 일본인(在木 日本人)들에 대한 연구(硏究)와 교류재개(交流再開)의 필요성주제의 글을 본지에 3회에 거쳐 보도한다. <편집자주>

식민 지배 재목포 일본인의 조선 착취에 숨겨진 그늘

[목포시민신문] 2023년은 광복 78년이다. 꽤 먼 세월이다. 해방둥이들이 벌써 우리 사회의 70~80대 어르신들이다. 이렇게 시간이 흘러도 지역사(地域史)의 입장에서는 아직도 일제 강점기는 기억조차 할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지속되고 있다.

그 결과 이주 일본인과 그들의 생활은 관심의 영역에서 거의 제외된 상태다. 이 사이 해방전(解放前) 목포에 살았던 일본인(在木浦 日本人)과 그 연고자들은 점점 사거(死去)하고 있으며, 간헐적이나마 목포를 방문해왔던 이들의 발걸음도 이제 끊어진 상황이다.

아울러 우리 주변에서 일제 강점기의 기억을 간직한 지역인들도 대부분 사라져 가고 있으며, 관련 자료도 멸실되고 있다. 개항기와 일제강점기의 목포의 사회상을 제대로 복원하고 해석하려고 하려면 재목포 일본인에 대한 연구가 필수적인데, 연구대상이 되는 그들은 잔인한 시간과 물리법칙 앞에 속절없이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은 소수 뜻있는 연구자들의 마음을 한없이 조급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재목포 일본인에 대해 연구가 필요한 이유는 아픈 과거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이는 목포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우선 일본과 일본인, 그리고 지난 역사 가운데에서 우리와 관계성을 있는 그대로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불행한 과거의 반복을 막아낼 뿐아니라, 나아가 미래 일본과의 진정한 우호와 평화의 시대를 여는데 선결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목포라는 근대 문화도시의 콘텐츠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목포는 개항이후 부터 일본인의 이주가 지속되었으며, 한때 8천 명이 넘는 이주민들이 비록 집단의 거주 공간은 달랐지만 한국인과 함께 생활한 도시로서 아직도 많은 일본인 관련 근대 건물과 유적이 남아 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근대 역사문화공간내에 존재하는 건축물과 유적들이 그 유래는 물론 거주했던 인물이나 단체, 일화 등에 대한 기초지식도 결여된 채 외형만 전시되거나 복원공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넌센스 같은 일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재목포 일본인에 대한 연구를 통해 막혀있는 한일관계를 뚫을 수 있기 떄문이다.

역사 왜곡 문제로 공식적인 외교관계가 파행을 보이고 있는 실정에서 민간차원의 교류마저 힘을 잃어서는 안된다. 오히려 민간외교 활성화를 통해 우리의 정당한 입장을 이해시키고 의견 교환과 신뢰구축을 통해 바람직한 한-일관계를 만들어 나갈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도 연고관계가 큰 재목포 일본인과 그 후손들, 관계 인사들과의 네트워크 형성은 핵심적인 접근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몇 가지 필요성을 검토해 볼 때 만시지탄(晩時之歎)이 있기는 하지만 재목포 일본인들에 대한 기본 연구는 지금이라도 종합적으로 빠르게 추진될 필요가 크다.

재목포 일본인에 대한 연구는 그 시급성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전제조건을 가지고 시작되어야 한다.

1897년 개항후부터 1945년 광복과 일본 귀환 시점까지 목포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재목포 일본인은 모두 기본적으로 일제의 식민통치와 직간접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단순히 목포와의 인연이나 일부 긍정적인 행적만 가지고 판단해서는 안 되고, 심층적인 생애 탐구를 통해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점이 전제되어야 한다.

사실상 많은 재목포 일본인들은 일본 제국주의와 총독부의 식민정책에 직접 복무하거나, 이를 배경으로 사익을 취한 자들이었으며 그들 가족 역시 이러한 성격으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하다. 관련 인물이나 건축물을 설명할 때 이러한 식민적 착취성이 명확히 지적될 필요가 크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해서 재목포 일본인을 바라보는 시각이 지배-피지배의 양분론적으로만 고정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재목포 일본인의 삶과 상황이 그리 간단하지는 않으며, 다양한 배경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한국인과 결혼한 일본인, 그리하여 해방 후 귀국하지 않고 6.25 등 민족사의 고통을 함께 했던 이들도 있고, 일제강점기에 목포에서 태어나거나 어린 시절에 이주하여 청소년 시절을 보낸 2세대 재목포 일본인은 1세대들과는 사뭇 다른 정서와 삶의 양상을 보여주기 떄문이다.

이런 점에서 재목포 일본인에 대한 관점은 19-20C 동북아의 신산했던 역사적 배경을 망원경으로 조망하면서, 목포지역에 실존했던 일본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생애를 현미경적 접근을 통해 홑눈(單眼)이 아닌 겹눈(複眼)으로 볼 때만 실체가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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