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단상-조기호 시인] 자연스럽게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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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조기호 시인] 자연스럽게 산다는 것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3.04.20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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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호 컬럼니스트

[목포시민신문] 가끔 집 가까이에 있는 양을산에 오른다. 운동 삼아 오른다고 하지만 사실은 숲이 좋고 자연 속에서 마음껏 자라는 야생의 풀과 나무가 좋기 때문이다. 그 곳에서 나는 울타리와 벽이 없이 수많은 생명들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것을 본다. 온갖 비바람과 눈보라 속에서도 묵묵히 자연의 섭리에 따라 서로 소통하고 순응하는 신비로운 생명력에 그저 감탄할 뿐이다. 어쩌면 한 마디 불평도 없이 저렇게도 잘 살아갈 수 있는 것인가?

나는 문득 잘 산다는 것이란 무엇인지, 아니 어떤 것인지 궁금해진다. 사람은 누구나 잘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 이라는 말에 담긴 의미는 각각 다르다. 어떤 사람은 돈을 많이 벌어서 잘 살고 싶고, 또는 높은 지위나 권력을 누리며 잘 살고 싶을 것이며, 또 다른 누군가는 자기가 바라는 그 무엇(재화:財貨)을 챙겨서 잘 살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그럴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본능적 욕구로써 당연한 일이기도 하는 까닭이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잘 사는 것못 사는 것을 구분한다면 잘 산다는 것은 결국 무엇을 얻었느냐에 따라 결정되게 될 것이다. 돈 있는 사람, 권력을 가진 사람, 그리고 갖기를 소망하는 어떤 무엇을 가진, 소유(?)한 사람들만이 결국 잘 사는 사람이라는 말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돈이 없는 사람, 권력도, 명예도, 그리고 가진 것도 별로 없이 살아가는 세상의 사람들은 잘살지 못한다는 말인가? 물질적 부요와 가난만으로, 아니 그냥 속된 말로 있고, 없음으로 잘 살고 못 사는것에 대한 판단을 한다는 것은 매우 섣부른 생각이라고 여겨지는 까닭이다.

생각건대 잘 산다는 것무엇으로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사느냐의 문제가 아닌가 싶다. 사람이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말은 종교적 해석을 떠나 물리적 욕구를 채우는 것만으로는 세상을 살아갈 수는 없다는 뜻일 것이다., 배부르게 먹고, 가지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다 하면서 지내는 것만이 잘산다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무엇이 있다는 말씀(?)인데 그렇다면 도대체 그것은 무엇일까? 마침내 지금 우리가 잘 산다고 말할 때 사용된 그 이라는 부사가 어쩌면 행복이라는 뜻을 보듬고 있을 거라는 사실에 주목하게 된다. 그런데 잘 산다(재물을 넉넉하게 가지고 살다)’는 말도, ‘행복(생활에서 기쁨과 만족감을 느껴 흐뭇한 상태)’이라는 말도 그 뜻이 모두 모호하고 추상적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 느낌이나 감정의 상태를 타인이 객관화하여 규정할 수 없는 까닭이다. 그럼에도 나는 양을산 숲길에서 만난 풀과 꽃과 나무들이 아무것도 가진 것 없으면서도, 묵묵히 자연에 순응하며 조화롭게 살아가는 그 아름다운 모습을 떠올리며 생각해 본다.

아무래도 잘 산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일일 것 같다. 종종 우리는 자연스럽게라는 말을 무심히 사용하지만 사실 그 뜻을 곰곰이 살펴보면 대자연의 조화처럼 바로 그런 긍정적인 순응과 너그러운 적응, 그리고 조용한 기다림과 욕심 없는 소통이라는 의미가 그 안에 담겨있음을 새롭게 깨닫는다.

잡초처럼 이름 없이 돋아났다 무참하게 베어지는 운명 속에서도 남모르게 씨앗을 퍼뜨리며 자기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풀들의 지극한 생명력이란 잔혹하리만치 경건하고 거룩하다. 나무와 꽃과 숲들 또한 어떠한가. 그들은 각각 제 몫의 땅에 뿌리를 내리고 짊어질 수 있는 만큼의 잎과 줄기를 뻗으며 나눌 수 있을 만큼의 열매를 맺을 뿐 좀처럼 남의 것을 탐하거나 앗으려 하지 않는다. 도리어 오랫동안 땀으로 빚은 자신의 열매를 아낌없이 되돌려주고는 고요하고 겸손한 침묵만을 보여줄 따름이다.

여지껏 나는 그(자연)들이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어떤 무엇을 긁어모으려 아등바등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저 주어지는 햇살과 비와 바람(때로는 천둥 번개까지도)을 일용할 양식으로 여기며 항상 감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본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오직 제각각의 성장에 충실할 뿐 누구를 부러워하거나 이웃에 대해 불만을 갖거나 하지도 않는다. 크든 작든, 화려하든 촌스럽든 그리고 잘생기든 못생기든, 저마다의 모습(잎과 꽃과 열매)으로 자신의 삶을 떳떳하게 그리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을 본다. 더러 거친 넝쿨들이 도둑처럼 쳐들어 와서 조용하고 평온한 일상을 괴롭히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나무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들이 함께 살아가는 공생(共生)의 조화란 감히 놀랍다. 한 줌의 햇살과 한 움큼의 바람을 골고루 나누기 위해 앞 나무와 뒷 나무가 각각의 잎들을 서로 교차하여 적당한 간격과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때면 그렇듯 사소한 일 하나에도 그들이 얼마나 서로를 배려하며 화평을 이루기 위해 애쓰는지 그저 감탄할 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들은 서두르지도 게으름을 피우지도 않는다. 차분히 하늘이 내려주는 계절에 따라 지극정성으로 한 생을 살아가다가 마침내 낙엽을 떨구며 저물어갈 줄도 안다. 그리고는 처연하게 겨울의 눈보라 속에 묻혀 지내면서도 다시금 돌아올 새봄을 평화롭게 기다릴 줄도 아는 것이다.

물욕 없이, 불평불만 없이, 근심 없이, 평안하고 여유로운 일상 속에서 저렇듯 자연의 생명들처럼 넉넉한 마음으로 지낼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잘사는 일이 어디 있을까. 정작 잘 산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산다는 말에 다름아니라는 생각을 가슴에 새기면서 자연의 모든 생명들에게로부터 맑고 가난한, 그리고 더없이 풍성한 삶을 감히 배우는 것이다. 문득 짧은 생애를 다하고 떨어져 흩날리는 벚꽃의 찬란한 낙화가 오늘따라 외경스럽기만 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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