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단상-김경애 시인]세월호는 9년 전, 그대로 멈춰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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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김경애 시인]세월호는 9년 전, 그대로 멈춰 있구나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3.05.01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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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는 9년 전, 그대로 멈춰 있구나

 

김경애 시인

[목포시민신문] 우리는 잊지 않겠다고

기억하겠다고 말해놓고 자주 잊어버렸고

매일 보고 싶을 것이라고 말해놓고

웃지 못할 것 같은 시간에도

너희들의 고통은 잊어버리고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고 살았다

4월만 되면 또 기억하겠다고

물거품 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있구나

 

며칠 전 팽목항에 와서 신발을 보았단다

누구의 신발일까?

축구화를 신고 수학여행을 가지는 않았을텐데..

아직도 주인을 찾아가지 못한 신발들..

스치듯 무심히 신발을 지나쳐 왔단다

 

그날 밤 꿈속에서 내 신발을 잃어버렸지

그날 밤 나를 위해 차려진 밥상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는 꿈을 꾸었단다

 

사람들은 금방 신발을 찾아줄 듯

금방 다시 밥상을 차려줄 듯 다정하게 말했지

나는 불이 꺼져버린 식당 앞에서 주저앉았단다

그 다정한 얼굴들은 까만 얼굴로 변하고

아무도 그 일을 해결해 주지 못하고 사라져 버렸어

 

꿈을 꾸고 난 후에야 나는 마음이 아팠단다

추모한다고 하면서 기억한다고 하면서

나는 빈손으로 와서 빈 마음만 이곳에 두고 왔다는 걸

집에 가서야 알았단다

 

미안하다 정말로 미안하다

너희들이 날마다 보고 싶어 할 가족들

친구들, 세상의 소리를 무심히 지나쳤구나

9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어도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는

어제 같은 바다, 지난 세월이 무심하구나

지금도 금방 집으로 돌아올 것 같은 사람들

한없이 기약 없는 약속을 붙잡고 살아가는

세월호, 이태원 유가족들의 마음을

내 일이 아니라고 잊고 살았구나

 

꿈속에서 신발을 잃어버려도 이렇게 아픈데

너희들을 잃어버린 사람들 앞에서

아픈 척, 기억하는 척, 해결해 줄 것처럼

, , , 척만 해서 부끄럽구나

아무런 죄가 없는 너희들을

저렇게 차갑고 깊은 바닷속에 몰아놓고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어서 미안하다

 

이미 물방울이 되어버렸다 해도

이미 이곳을 스쳐 가는 바람 자락이 되었다 해도

너희들의 숨결을 느낄 사람들이 있다는 건 알고 있지?

이제, 너희들의 희생이 물거품이 아니었다는 걸

꼭 기억할게

세월만 보내지 말고 조금이라도 세상이 달라질 수 있도록 노력할게

보고 싶다.. 보고 싶다..

단 한 번만이라도 다시 너희들을 만져보고

안아보고 싶을 가족들을 생각할게

 

* 2023년 세월호 참사 9주기를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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