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사회서비원 공동 봉사 체험수기⑮]치매일지라도 마은은 여전히 사랑 가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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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사회서비원 공동 봉사 체험수기⑮]치매일지라도 마은은 여전히 사랑 가득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3.05.13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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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서부종합재가센터 / 김삼례(돌봄지원사)

목포시민신문은 전라남도사회서비스원과 공동으로 아름다운 전남 봉사의 삶이란 주제로 도내 사회복지시설 봉사자와 수급자의 체험수기를 받아 연재한다. 체험수기는 전라남도사회서비스원이 지난해 봉사자와 수급자를 대상으로 공모전을 실시해 입상작을 중심으로 올 한해동안 본보에 게재된다.<편집자 주>

아름다운 전남 봉사의 삶 체험수기-
차츰 기억을 잃어가는 최 할머니의 그림.

[목포시민신문] 제가 만났던 최모 어르신은 치매가 진행되고 있어 기억하는 것보다 잊혀지는 것들이 많아지고 계신 상태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전처럼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마음껏 하지 못하시고, 물어보는 것에도 대답하지 못하셨습니다.

거리상 자주 찾아뵙지 못하다 보니 매주 토요일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어르신과 함께했습니다. 어르신 댁에 처음 방문하였을 당시 둘째 아드님이 잠시 내려와 계셨고, 그날 어르신의 치매 검사와 장애등급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아드님이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시지만, 치매가 있는 어머니(어르신)가 걱정되어 잠깐 내려오셨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아프신 어머니를 혼자 둘 수 없어 직장을 정리하고 내려오실 계획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드님이 어르신(어머니)의 치매 증상을 알게 된 건 전화를 하면 말씀이 반으로 줄고, 소리도 작아지고 해서 걱정되는 마음에 시골에 내려와 보니 어르신(어머니)가 전보다 기억을 못하시는 것들이 많아지신 것을 눈으로 확인하게 되면서부터 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부친께서도 급성 치매로 집과 병원을 오가시다 돌아가셨는데, 그 과정에서 어머니가 많이 애쓰셨고, 저 역시 아버지를 모시고 이 병원, 저 병원 돌아다니며 4번 정도 옮기기도 했어요. 치매 걸린 아버지는 어머니만 기억하시고, 자녀들은 못 알아보셨어요.”라고 말을 덧붙이셨습니다.

어르신의 집 화장실은 부엌 옆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런데, 어르신께서는 항상 마당에 있는 화장실로 볼일을 보고 오셨습니다. 어르신께서는 집에 사람이 오지 않으면 마을회관에 가셔서 동네 친구분들과 노시다가 점심을 드시고, 집에 돌아오시곤 하셨는데 저희가 방문하는 토요일에는 회관에 나가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점심식사를 차려드리고 마지막으로 설거지를 한 후, 방에 들어와 앉으니 어르신께서는 처음으로 제게 커피를 먹느냐고 물어봐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런 어머니의 질문에 저는 어르신(어머니)께서 커피 타 주실 거에요?”하고 되물었고, 어르신은 고개를 끄덕이시며 함께 활동하는 돌봄지원사 선생님의 몫까지 3잔의 커피를 타서 건내주셨습니다. 어르신(어머니)과 함께 차를 마시며 이런 시간이 어르신의 작은 일과이자 유일한 낙이라 생각되었습니다.

두 번째 방문 날, 아침 일찍 어디를 가셨는지 어르신이 보이지 않아 마을회관을 가 보니 회관 옆 정자에 앉아 먼 산을 멍하니 바라보고 계시는 어르신의 모습이 유난히 쓸쓸하고 안쓰러워 보였습니다. “어머니 안녕하세요?, 회관 안에 안 들어가시고 밖에 앉아 계세요?”라고 여쭤보니 그냥, 그냥... 이제 손님이 왔으니 집에 가야지라고만 대답하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런 어르신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와 어르신이 누워 계시는 동안 뒷방의 옷을 정리하였습니다.

활동 중간중간 어르신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는 어르신께 딸은 몇 명인지, 어디에 사는지, 어떤 딸이 보고 싶은지 여쭤보았습니다. 어르신은 저의 질문에 소리가 입안에서 맴도는 듯 작은 소리로 대답을 하셨고, 핸드폰을 찾아 어머니 핸드폰에서 따님 번호를 찾아서 영상통화 해드릴게요. 하고 싶은 말씀도 하시고, 따님 얼굴도 보시고 하세요영상통화를 걸어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통화 덕분에 어머니가 평소 좋아하시는 음식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 번째 방문 날, 지난번 따님과의 통화에서 어머니는 삼계탕, 감자탕, 오리탕과 같은 음식을 잘 드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설레는 마음으로 삼계탕용 닭을 사서 점심으로 대접해드리니 한 대접을 맛있게 드셔 주셨습니다.

식사를 한 후에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말을 건내었습니다. “어머니, 저희 친정엄마는 18세에 시집을 와 33녀를 낳으셨어요. 그리고 저는 29세에 결혼해서 딸 하나를 낳았어요. 어머니는 몇 살에 시집오셨어요?” 어르신은 저의 물음에 나는 23세에 시집왔지. 딸 셋에 아들 둘이여

어머니 둘째 아들이 어머니께 잘하시던데, 아버님을 닮으신 거예요?”

둘째 아들이 잘 하지

아버님은 살아계실 때, 어머니 집안일을 잘 도와주셨어요?”

, 나한테 잘했지. 잘 도와줬지

, 그러셨어요!, 둘째 아들은 자녀가 몇 명이에요?”

결혼을 못 했어. 외국 여자하고 결혼했다가 잠깐 살고 헤어졌어. 그래서 애기가 없어 결혼해서 잘 살아야 하는데, 언제나 갈 수 있을까 걱정이여

, 그런 일이 있어서 어머니 마음이 더 힘드셨겠네요.”

그렇게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 어르신은 낮잠을 주무셨고, 그 사이 안방, 작은 방, 부엌, 화장실을 청소하고 있었는데, 어르신께서 잠에서 깨셨는지 화장실 타일을 닦고 있는 제게 더운데 화장실까지 청소 안 해도 되야, 그만해.”라고 하시며 방안으로 다시 들어가셨습니다.

화장실 청소를 하고 방 안에 들어가니 어르신께서 여기 누워, 한숨 자고 쉬어라며 베개를 주셨습니다.

저녁 식사로 닭고기를 찢어 죽에 넣어드리니 잘 드셨습니다. 어르신께 식사도 한 그릇씩 잘 드시고, 약도 잘 드시면 치매도 곧잘 이겨낼 수 있으실 거라고 말씀드리니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그렇게 6시가 되어 어머니 저 이제 가야 해요. 내일 둘째 아드님이 내려온다고 하니 오늘 저녁에도 잘 주무시고, 내일도 식사 잘하세요!”라고 인사드리니 고개를 끄덕이시며 차가 없을텐데, 어떻게 집에 가?”라고 먼 길을 가야 하는 저를 걱정해주셨습니다.

어르신 댁을 나와 차에 짐을 싣고 출발하려고 하니 길옆까지 나오셔서 손을 흔들며 조심히 가라고 하시던 어르신의 모습이 보여 , 어머니 다음 주 토요일에 또 올게요.”하고 돌아서는데 차를 타고 오는 내내 그 모습이 머릿속에 맴돌며 저의 친정엄마 그리고 친정아버지의 생각이 나기 시작하였습니다.

목포에 돌아와 어르신의 둘째 아드님에게 오늘 어르신과 나눈 이야기를 공유하며, 어르신이 드신 음식이며 부모가 치매로 아픔을 겪고 있을 때 자녀들은 우리 부모님은 빨리 돌아가시지 않으실거야라는 생각을 은연중에 하게 되는데 그것이 우리 자녀들의 마음처럼 되지 않는 것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어르신의 모습을 떠올리고 있노라면 저의 친정아버지를 다시 보는 것 같아 하염없이 눈물이 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시간이 지나 어르신의 장기요양등급 판정으로 서비스가 종결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후 둘째 아드님과의 통화해서 어르신이 등급을 받으신 이후, 하루 2시간씩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오셔서 식사를 챙겨 주고 계신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그리고 아드님 또한 일이 없을 때에는 시골에 내려와 어르신과 시간을 함께하고 계신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지난 활동들을 되새겨 보면서 기억을 잃어가는 어르신들에게는 본인이 살아왔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꺼내실 수 있도록 옆에서 말벗이 되어주는 누군가가 있는 것이 중요하고,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지난날의 힘듦보다 오히려 덤덤히 혹은 생생한 모습으로 옛 기억을 떠올리는 어르신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어르신들이 긴긴 세월 동안 몸과 마음과 영혼으로 일하시고, 자녀들을 키우시고 가족의 인생 앞에 어떠한 어려움도 감당하셨던 그 노고에 감히 박수를 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마음 깊이 감사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끝으로 치매에 걸려 기억을 점차 잃어가고, 자녀의 얼굴조차 알아보지 못할지라도 부모님은 자신에게 무엇을 먹이고, 어떤 모습으로 대하는지 알고 계신다는 것을 위 사례의 어르신과의 만남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비록 최 어르신은 치매에 걸리셨지만, 부디 남은 시간 동안 자녀들의 따뜻한 사랑을 듬뿍 받으시고 평안하시길 바래봅니다.

<자료제공=전남사회서비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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