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사회서비원 공동 봉사 체험수기⑰]“백숙 한 그릇에 담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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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사회서비원 공동 봉사 체험수기⑰]“백숙 한 그릇에 담긴 사랑”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3.06.01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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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동부종합재가센터 윤정은(돌봄지원사)

목포시민신문은 전라남도사회서비스원과 공동으로 아름다운 전남 봉사의 삶이란 주제로 도내 사회복지시설 봉사자와 수급자의 체험수기를 받아 연재한다. 체험수기는 전라남도사회서비스원이 지난해 봉사자와 수급자를 대상으로 공모전을 실시해 입상작을 중심으로 올 한해동안 본보에 게재된다.<편집자 주>

아름다운 전남 봉사의 삶 체험수기-

[목포시민신문] 64세 젊으신 여자분이라는 말에 좀 의아해하면서 선뜻 내키지 않았지만, 여느 대상자들과 마찬가지로 또 잘해보자 마음먹고 웃으면서 인사를 드렸습니다. 대상자분은 어머나! 젊으신 분이 오셨네요? 반가워요!” 하면서 맞아주셨습니다. 너무나도 깔끔하게 정리 정돈이 잘되어 있는 집, 행주만큼이나 깨끗하고 뽀얗게 삶아서 널어놓은 걸레를 보면서 이런 집에서 내가 무슨 도움이 필요할까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좀 단호하고 사무적인 말투로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해주시고요 시간 되면 퇴근하시면 된다고 내게 말씀하셨습니다.“~알겠습니다. 앞으로 잘 지내도록 해봐요.” 하고 환한 미소와 함께 돌봄이 시작되었습니다. 내가 이것저것 하는 동안 대상자분은 TV를 보고 계시고 한 번씩 힐끔힐끔 나를 쳐다보시기도 하셨습니다.

3일째 되는 날 조금 편해지셨는지 스스로 속에 담아둔 얘깃거리들을 꺼내어 놓으셨습니다. 일을 너무 많이 해서 이렇게 젊은 나이에 무릎 인공관절 수술과 허리 수술을 하시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암까지 걸리셔서 암 수술도 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프기 전 겁 없이 일하던 것들을 생각하니 지금 아무것도 혼자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절망감에 우울증이 심해지고 삶을 놓아버리고 싶은 마음에 결국 극단적인 선택도 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주민의 신고로 119가 오고, 가족과도 연락이 되지 않아 시청으로 연결되고 행정 입원으로 1년이 넘게 정신과 병원에서 치료하시다가 퇴원 한지 이제 2년 됐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셋째 날 일과가 끝나갈 무렵 대상자분께서 우리 집 현관 키 번호에요. 앞으로는 직접 열고 들어오세요. 그리고 보호사님 우리 호칭을 정합시다. 나는 보호사님이라고 부를게요. 보호사님은 저를 뭐라고 부르실 거예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순간 이런 질문은 처음 받아봐서 당황했지만, “젊으시니까 어르신은 싫으시죠? 이모님이라고 하면 어떨까요?”라고 답변을 했더니 "너무 좋아요" 하셔서 그날부터 이모님이라 호칭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보호사님께서 이모님 저 왔어요~ 하고 활짝 웃으면서 들어오는 모습이 너무 예쁘고 좋아요. 그래서 덩달아 기분도 좋아지고 날마다 삶이 밝아져 가고 있어요. “보호사님 우리 집에 오시고부터는 우울하다거나 안 살고 싶다거나 그런 생각이 안 들어요. 나도 보호사님처럼 건강해져서 좋은 일도 하면서 재미나게 살고 싶어요. 보호사님 우리 집에 참 잘 오셨어요. 정말 고마워요.”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괜히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가슴도 먹먹해졌습니다. 거기서 눈물을 보일 수는 없으니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하하! 그래요? 이모님이 저를 그렇게 좋게 봐주시니 좋네요. 사실 제 별명이 산소랍니다. 잘 웃고 항상 밝아 보여서 공기정화기 같다고 교회 권사님이 붙여주신 별명이에요. 그래서 산소처럼 살려고 약간 부족한 듯 푼수도 떨고 그런답니다 하하하.”

그렇게 1차 신청 돌봄 기간이 다 끝나고 연장을 신청하고 계속 진행 중이던 한여름 어느 날, 일을 끝내고 방금 인사드리고 나왔는데 이모님께 전화가 왔습니다. “보호사님 내일 점심에 나랑 같이 집에서 밥 좀 먹어주세요. 부탁이에요.”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알겠다고 하니, “저 점심 일찍 먹으니까 12시까지 꼭 와주세요.”라고 덧붙이고 전화를 끊으셨습니다.

다음날 말씀하신 대로 출근 시간보다 한 시간 반 일찍 12시에 맞춰 이모님 댁에 도착했습니다. 다리도 편치 않으셔서 오래 서 있지도 못하시는 분이 온 얼굴에 땀범벅이 되어서 환하게 웃으시면서 보호사님 어서 오세요. 시간 딱 맞춰서 와주셨네요하시면서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 방바닥에 1인용 상 위에 배추겉절이, 풋고추, 된장, 2인용 수저 이렇게 놓아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내 성하지도 않은 다리를 절면서 냄비를 들고 오셨습니다. “보호사님 오늘이 중복이잖아요. 보호사님한테 이거 꼭 해드리고 싶었어요. 맛은 장담 못 하는데 정성껏 마음 설레가면서 준비했으니 맛있게 드셔주시고 우리 같이 건강하게 여름 보내시게요하시면서 닭 다리를 건네셨습니다. 여기서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화장실 가서 손 씻고 온다는 핑계를 대고 들어가서 몰래 눈물을 훔치고 나왔습니다. 내가 뭐라고 이렇게 대접을 해주시고 나에게 고맙다고 하시는지... 여름이 지나갈 무렵 서비스는 종결의 날이 다가오고 이모님은 내내 아쉬워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 이모님과 저는 눈물을 흘리며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그렇게 아쉬움을 뒤로하고 서비스는 종결이 되었습니다.

요즘도 이모님께서는 제가 바쁠까봐 전화 통화는 미안해서 못하시겠다며 가끔 문자를 주십니다. “보호사님 보고 싶고 생각나서 문자 했어요"라고 짧은 문자에 담긴 이모님의 마음이 보이기 때문에 문자를 보고 있으면, 괜히 또 눈가가 시큰해집니다.

이 일을 시작한 지 오래 되지는 않았지만 일을 하면서 참으로 다양한 감정들을 느끼고 있습니다. 사람이 혼자라는 것, 늙는다는 건 외롭고 아프고 슬픈 일 같습니다. 그 외롭고 아픈 슬픔을 오롯이 혼자 견디며 사시는 이웃들에게 나의 장점이자 특기인 웃음과 긍정의 에너지를 나누며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자며 다짐해봅니다.

자료제공=전남사회서비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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