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강봉룡 교수]일제가 수탈을 위해 해낸 일을 왜 우리가 우리를 위해 못해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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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강봉룡 교수]일제가 수탈을 위해 해낸 일을 왜 우리가 우리를 위해 못해내겠는가?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3.06.01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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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봉룡 목포대 사학과 교수
다도해의 모항 목포의 희망 만들기

일제강점기 6대 도시, 3대 항

[목포시민신문] 일제강점기 목포 도시 발전의 속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1930년대 전반 목포의 인구 증가율은 11.20%(전국 도시 평균 6.01%)로 단연 전국 최고였고, 1935년에 이르면 인구가 6만을 넘어서면서 전국 6대 도시, 3대 항의 반열에 올랐다. 당시 인구 기준 도시의 순위는 서울, 부산, 평양, 대구, 인천, 목포, 신의주, 함흥, 개성, 청진, 광주 순이었다. 1897년 개항 당시 인구 150여명에 불과했던 바닷가 소촌락 목포가 불과 30여 년 만에 이렇듯 급성장한 것은 세계도시발달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빠른 속도의 성취였다.

목포의 이러한 급성장을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우선 그 이면에 식민지 지배와 수탈이라는 불순하고 음습한 그림자가 깔려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그렇지만 현재의 관점에서 한번 뒤집어 보면 목포 미래의 희망적인 비전과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한 역사 경험의 방향타로 삼을 수도 있다.

목포의 급성장은 일제가 목포의 지리환경적 여건을 정확히 파악하고 이를 식민 지배정책에 적용했던 것이 맞아 떨어진 결과였다. 인식과 실천의 주체를 과거의 일제 식민지배자에서 현재의 우리로 바꾸어 목포의 지리환경적 여건을 오늘에 되살릴 수 있다면, 목포 미래의 발전을 추구하는 희망 만들기의 담론으로 이어갈 수 있지 않을까?

사진1-공진회 목포역 행렬

다도해의 관문, 해륙 중계도시, 섬의 수도

여기서 목포의 지리환경적 여건을 보자. 먼저 목포는 한반도의 ‘L’자 축의 꼭지점에 위치한다. 영산강이 목포에서 서해와 남해가 만나는 서남해로 흘러간다. 그리고 그 서남해의 바다는 우리나라 최대의 다도해 해역을 이루며 중국으로, 일본으로 이어진다. 목포는 세계로 열린 다도해의 관문이다. 일제는 이러한 목포의 지리환경적 여건을 활용하여 서남방의 다도해와 동북방의 육지를 연결시켜 서남(西南海)-목포-동북(東北陸)’으로 이어지는 해륙(海陸) 중계도시의 건설을 구상하였다.

이를 위해 일제는 목포를 중심으로 한반도의 육상 교통망을 기획하고 정비 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1911년에 북으로 서울을 거쳐 신의주에 이르는 국도1호선의 기점으로 삼았다. 1914년에는 동으로 부산에 이르는 국도2호선의 기점으로 삼았고, 같은 해에 목포-서울 간 호남선 철도까지 완공하였다. 목포로부터 서남방으로 다도해의 에너지를 확보하면서 중국에 이르고, 동북방으로 국도와 철도를 통해서 반도를 섭렵하면서 중국에 도달하겠다는 심산이었다. 목포 중심의 동아시아 전략의 대구상을 실천에 옮긴 것이다.

이렇듯 일제강점기 목포의 급속 성장의 배경에는 다도해의 관문 목포를 해륙 중계도시로 건설하겠다는 구상이 있었다. 이러한 구상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19261111일에서 25일까지 2주에 걸쳐 목포에서 동시 거행된 2개의 공진회(전남물산공진회와 조선면업공진회)이다. 공진회란 오늘날의 박람회 혹은 엑스포에 해당한다.

당시 동아일보는 19261111일자 기사에서, 해상에는 군함 퍼레이드가, 하늘에는 비행기 에어쇼가 펼쳐졌다고 하면서 공진회의 장려함이 극치에 달했음을 전하였다. 또한 수산관(2 회장)을 공진회 대회장(1 회장)과 양축을 이루며 배치한 점, 기선과 기차를 통해서 전국의 관람객이 목포에 내방했다는 점 등을 강조하면서, 당시 해륙 중계도시목포의 면모를 전하기도 하였다.

한편 매일신보1115일부터 18일까지 4회에 걸쳐 공진회에 대한 기획기사를 연재하면서 ‘808()의 수도(首都) 목포를 기사의 타이틀로 내세웠다. 이는 당시 목포가 다도해의 관문이자 섬의 수도와도 같은 기능을 수행하고 있었음을 설파한 촌철살인의 멘트가 아닐 수 없다.

사진2-공진회 선창가 풍경

목포의 현실은 어떠한가

목포에는 역설적이게도 해방과 더불어 기나긴 쇠퇴의 그늘이 드리워졌다. 일제강점기 때 목포를 기점으로 해()와 육() 양방향으로 도달하고자 했던 중국 대륙은 1949년 공산화와 함께 죽의 장막에 가려 차단되었고, 일본과 중국을 이어주던 서남해의 바다는 졸지에 국제적 고립 공간으로 전락하였다.

1960~70년대에 시작된 산업화의 열기도 태평양으로 통하는 동남권에 집중되어 서남권의 목포를 비켜갔다. 목포는 고립 공간에 갇혀, 현실적 박탈감과 심리적 피해의식이라는 고통과 굴레에 시달려야 했다. 박탈감과 피해의식은 이후 격동의 정치 과정을 거치면서 심각한 지역감정으로 굳어졌다. 그리고 지역감정은 목포가 야권 정치의 상징 도시로 떠오르는 에너지로 작용했다.

1970~80년대에 목포는 야권 정치의 성지가 되었고, 정권을 잡는 것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리라는 믿음(진단)으로 똘똘 뭉쳤다. 급기야 1997년 목포 출신의 정치지도자 김대중이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목포는 40년 가까운 세월 짊어져 온 피해의식의 설움과 한을 벗어던질 수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개운하지 않았다. 정치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처럼 믿었던 진단은 빗나갔다. 목포의 희망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고, 기왕의 체념과 절망은 허탈과 냉소로 변해갔다.

사진3-전남물산공진회 건물 풍경

그래서 지금 목포의 현실은 어떠한가? 협소한 경계 안에 갇혀 폐쇄적인 분위기가 만연해 있다. 목포시의 면적은 비수도권 기초지자체 중에서 가장 작고, 인구밀도는 수도권과 광역시를 제외한 일반 기초지자체 중에서 가장 높다. 경제규모와 유동인구가 과소하고 면적조차 협소한 경계 안에서 적지 않은 인구가 오랫동안 부대끼며 살아오다 보니, 목포시민들은 부지불식간 밖의 큰 세계를 보지 못하고 내부의 작은 것에 매달리고 집착하는 경향이 생겨 버렸다.

너무 오랫동안 굳어 있었다. 지금 역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한 뿌리인 무안반도에 공존하고 있는 목포와 무안은 서로 외면하고 질시한다. 2001년 서해안고속도로 개통, 2005년 전남도청 이전, 2007년 무안국제공항 개통 등으로 이어지는 괄목할 만한 발전적 변화가 있었건만, 그 흐름을 한 마음 한 방향으로 모으지 못하고 있다. 다도해의 관문임을 잊은 지도 오래다. 중국으로 통하는 페리가 끊긴 지 오래고, 목포시민들은 그 귀한 앞 바다 다도해를 먼 산보듯 한다. 그렇다, 새로운 진단이 필요하다.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우리에게 있다는 깨달음이다. 좁디좁은 경계의 틈바구니를 박차고 저 넓은 세계로 나가려는 노력,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어떤 처방이 필요한가?

사진4-조선면업공진회 건물 풍경

어떻게 목포 희망 만들어갈까

목포가 잘 나가던 그때를 반추해 보자. 키워드는 6대 도시, 3대 항, 다도해의 관문, 해륙 중계도시, 섬의 수도 등이다. 목포의 지리환경적 여건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유효하다. 그리고 1992824중국과 국교가 수립되었다. ‘죽의 장막으로 차단되었던 중국이 다시 열린 지도 어느덧 30년을 넘어섰다. 고립되었던 목포의 다도해는 다시 세계를 향해 활짝 열렸다. 또 한번의 절호의 기회가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그럼에도 목포는 무감각하다. 감각을 살려내야 한다. 먼저 새로운 기회가 왔음을 인지해야 한다. 경계를 허물고 더 넓은 세계를 향해 마음과 힘을 함께 모아야 한다.

먼저 목포권 상생을 위한 진정성 있는 구상과 실천이다. 메아리 없이 반복되어 온 통합의 논의는 이제는 진부하기까지 하다. 작은 일부터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상생을 위한 하나의 시도로, 목포시와 신안군이 여객선비 할인을 위해 공동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어떨까? 목포시민들이 저렴한 선비로 신안군의 여러 섬들을 방문할 수 있게 된다면, 산안 다도해는 목포시민의 마음 속에 먼 산이 아니라 우리의 섬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신안군 다도해에 지역적 내수 효과가 일어나고 타지역 사람들의 방문 욕구를 자극하게 될 것이다.

근래 국가가 섬의 날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한 것도 고무적이다. ‘섬의 시대가 열리고 있는 추세를 유념할 일이다. 관내 섬들을 방문할 때 50% 선비 할인 혜택을 누리는 여수시민들은 섬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각별하다. 여수시 관내 섬들은 아연 생기가 돌고, 섬들과 내통한 여수시의 분위기도 자못 활달하다.

이제 처방은 분명해졌다. 목포는 딱딱하게 느껴지는 다도해의 관문대신 어머니의 따스함이 느껴지는 다도해의 모항을 표어로 내세워, 어머니 항구와 그녀의 수많은 자식 섬들이 에너지를, 활력과 생기를 발산하도록 상생 협력한다. 그 항구는 그 다도해를 통해 중국으로, 일본으로 뻗어나간다. 철도와 고속도로와 공항을 통해서 다도해의 에너지를 전국으로, 세계로 확산시킨다. 이를 통해 해륙 중계도시의 위상을 다시 드높인다. 이것이 다도해의 모항 목포가 목포권은 물론, 전라남도, 국가, 그리고 세계에 기여하는 길이다.

그러면 목포 희망 만들기를 위한 이러한 처방과 실천은 누가 할 것인가? 민관정(民官政)이 함께 하되 민이 먼저 나서야 한다. 민은 열린 마음으로 목포권 시민운동을 전개하여 목포니 무안이니 신안이니 하여 차단해온 경계의 벽을 조금씩 허물어 간다. 관은 민의 명령을 받아 큰 그림을 그리고, 정은 국가 차원에서 이를 뒷받침한다. 이것이 다도해의 모항 목포의 희망 만들기 프로젝트의 큰 얼개다. 세부는 지금부터 함께 머리를 맞대자. 일제가 수탈을 위해 해낸 일을 왜 우리가 우리를 위해 못해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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