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읽기-박정용 교사] 한반도 서·남지역 문화연대의 중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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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읽기-박정용 교사] 한반도 서·남지역 문화연대의 중심지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3.06.01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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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용 문태고 교사

[목포시민신문] 목포가 역사적으로 의미있게 등장하는 시기는 조선 세종 21(1439)에 영산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만호를 파견하고 병선을 주둔시켰던 때 부터이다. 그러다가 고종 21(1895)에 근대적 행정 군사제도 개편에 따라 폐진 된다.

2년 후 부산, 원산, 인천에 이어 1897년에 개항을 하게 되면서 목포는 이른 시기에 근대도시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일본영사관이 세워지고 그 앞으로 일본인 위주의 외국인 거류지역이 조성되었다. 거류지는 격자망으로 질서정연하게 조성되었고 더불어 위생 설비도 갖추게 되어 주변에 무질서하게 난립하던 조선인 거주지역과는 비교되는 양면성을 갖는 식민지 도시인 근대적인 모습과 전근대적인 모습을 갖게 된다. 이처럼 근대도시 목포는 일본인 거주지와 조선인 거주지역으로 양분되는 모습을 지닌 채 출발하게 된다.

목포항이 새로운 개항장으로 결정되었던 것은 항구로서 지리적 장점 때문이었다. 다른 개항장들과 달리 목포는 영산강의 하구에 위치하여 바다와 강을 연결하는 내륙 소비시장으로 진출에 유리하였다. 나주, 광주, 능주 등 큰 시장을 배후에 두고 있어 화물의 집합장으로서 편리하고, 특히 전라남도의 쌀을 일본으로 운송하기에 유리한 위치였다. 그리고 해양 측면에서는 서남해안 어업 전진기지로서의 관문 역할을 하였고, 아울러 정치·군사적으로도 목포가 한반도와 중국, 일본을 잇는 삼각 항로의 모퉁이에 위치하여 전략적 가치가 컸다는 점도 고려되었을 것이다.

특별히 눈여겨 볼 점은 목포 개항은 이전의 다른 개항장처럼 일본과의 불평등조약에 의한 것이 아닌 고종의 칙령에 따라 문을 연 자개항(自開港)의 성격이 크다는 점이다. 당시 조선 정부가 목포의 개항이 조선에게도 유리하다고 확신하고 있었던 것은 바로 관세에 대한 목적 때문이었다. 목포가 개항된 1897년은 대한제국 광무 원년으로 개혁을 이루어내기 위한 자금 확충에 가장 유용한 것이 개항장에서 걷어 들이는 관세 수입이었고, 재정수입을 늘려 상업의 진흥을 도모하는 것이 목포 개항의 목적이었다. 그래서 개항 이전에 이미 무안감리서와 목포해관을 설치하였다. 목포항에 설정된 외국인 거류지는 대한제국과 통상조약을 맺은 여러 나라가 공동으로 관리할 수 있는 각국거류지였다는 점도 이러한 자주 개항의 성격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목포는 이후 전국 3대 항구로 발전하였고, 1932년에는 인구 66대 도시로 성장하였다. 1905년 증기선이 들어오고, 1911년 국도 1호선, 1914년에는 철도가 놓여 서울을 지나 만주와 대륙으로 연결하는 시발점이 되었다. 식민지 시대에는 1(), 3(, 면화, 소금)의 집산지였다. 인구도 1940년대 10, 1950년대 11, 1980년에 20만을 넘기고 2010245천 명을 정점으로 감소하여 20234월 말 현재는 215천 명으로 개항 초기의 명성에 비하면 초라한 모습일 뿐이다.

1960년대 산업화 이전의 목포는 자연·지리적인 이점과 식민지 정책에 따라 발달한 도시였다고 볼 수 있다. 즉 내생적 역량보다는 외생적으로 주어진 기회에 의해 발전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산업화 이후 지금까지 목포가 계속해서 쇠락한 모습을 보여준 이유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내생적 역량을 확보하지 못한 점이 가장 크다고 볼 수 있다.

심지어는 가지고 있던 역량도 큰 고민 없이 내버린 경우도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목포대학교를 무안 청계면으로 내보낸 것이 바로 그렇다. 그 외에도 상당히 많은 시행착오를 눈에 보이지 않게 범한 것이 오늘날 목포 쇠락의 과정이었다. 이제 더 이상 정치 보복으로 지역 발전이 더디 되었다고 한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그래서 앞으로 목포가 한반도 서남지역에서 중심적 기능을 갖는 것이 목포뿐만 아니라 주변 지역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목포를 중심으로 무안, 신안, 진도, 완도, 해남, 영암을 아우르는 광역지방자치단체를 염두에 두고 목포가 이를 포용할 역량을 키우고 가꾸는 과정이 필요하다. 한반도 서남지역의 역사·문화자원을 발굴하고 드러내는 작업을 꾸준히 하면서 이 지역의 정체성을 담아낼 수 있는 아젠다를 만들어 내야 한다. 21세기 변화의 방향과 맞물려 인구감소가 가져올 서남지역 소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목포의 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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