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 출신 첫 여성 국회의원 “목포는 나의 뿌리다”
상태바
목포 출신 첫 여성 국회의원 “목포는 나의 뿌리다”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13.06.13 11: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목포여고 출신 통합진보당 김미희 국회의원

 
목포출신 첫 여성 국회의원
서울대 약대 나와 정치 입문

김미희 의원은 목포출신 여성으로는 최초로 국회의원이 된 인물이다. 오거리 차 안다니는 거리 근처인 창평동에서 태어났고, 부친은 지금도 목포에 살고 있다. 서울대 약학대에 입학한 모범생이었지만 사회 현실의 여러 가지 문제들을 접하면서 운동권 학생의 길에 뛰어들어 서울대 약대 총학생회장에 선출돼 운동권의 길을 걸었다. 대학 졸업 후 성남 시청 민원실 앞에 약국을 개업해 터를 잡은 뒤 성남시 2대 3대 시의원에 무소속으로 출마, 당선돼 정치인의 길을 걸었으며, 민노당 창당 중앙 위원, 최고위원 등 민노당 핵심으로 활동하다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지금은 통합진보당으로 이름이 바뀐 자신이 소속한 당이 집권당이 꿈이라고 밝히고 있다. 지난 4월 총선에서 선거법위반혐의로 1심에서는 벌금 250만원을 받아 의원직 상실의 위기에 처했지만 항소심에서 80만원을 선고받아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게 됐으며 현재 대법원 재판이 진행중이다.

29세 때 성남시 기초의원 출마 약한 사람의 대변자역
서울대 약학대 학생회장 맡아 노동자 농민 아픔 알아

- 목포출신 여성으로는 최초의 국회의원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에 대한 소감은?
목포출신 최초 여성 국회의원이라는 것에 자부심도 느끼지만 책임감도 많이 느낀다. 앞서 활동하시거나 현역인 목포 출신 선배, 동료 의원들께서 알게 모르게 도와주시는 것이 많다. 목포시민들께서 자랑스럽게 느끼실 수 있도록 열심히 활동하겠다.

- 지난 4월 총선에서 유권자에게 선거법위반혐의로 1심에서는 벌금 250만원을 받아 의원직 상실의 위기에 처했었다가 고등법원 항소심에서 80만원을 선고받아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많이 힘들었겠는데?
작은 실수가 이렇게 큰 사건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통찰과 반성을 하는 기회였다. 힘들었지만 재판 과정에서 3만여 명의 탄원서를 받는 등 주민들과 나를 지지해주는 분들의 뜨거운 응원과 격려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아직 대법원 재판이 진행 중이다. 좋은 결과를 받을 수 있도록 목포 시민 여러분, 응원해주었다. 아이러니 하게도 부모님이 고향을 잊지말라고 형제들에게 1/10로 분할 상속한 목포집이 사건의 발단이 됐다.

-1995년에 성남 시의원에 출마, 당선됐다. 일찌감치 정치에 뛰어들었는데 정치입문의 동기는?
선거 때 야당을 지지해도 노동자, 농민의 입장에서 활동하지 않는 모습에 실망하여 1995년 지방선거 때 제가 활동하던 성남터사랑 청년회에서는 주민이 주인이 되는 지방자치를 만들어보라고 만 29세 미혼인 저에게 출마를 권유했다. 시의원을 두 번 하면서 민주노동당 창당에 참여하였고 2004년부터 국회의원선거에 계속 출마하여 작년에 당선됐다.

- 정치에 뛰어든 것에 대해 후회는 없는지?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아서인지 후회를 할 여유가 없다. 공공의료 활성화, 노동자들의 권리보장과 처우개선, 우리민족의 평화통일 등 할 일이 많다.

- 민주노동당 창당 멤버로 민주노동당에서 활약했는데, 민주노동당에 합류한 이유는?
무소속 시의원을 하면서 나와 생각이 비슷한 당이 있다면 정책의 도움도 받고 참 좋을 텐데 하고 느꼈다. 노동자, 농민, 청년, 장애인, 여성을 위한 민주노동당이 만들어진다고 하여 적극 함께 했다.

- 목포여고를 졸업해 서울대 약대에 입학해, 1986년 서울대 약대 학생회장으로 활동했다. 이른바 운동권 핵심멤버로 활약했는데 그 이유는?
1984년 서울대 약학과에 입학했다.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의 노동자, 열심히 일하고 생산비를 보장받지 못하는 농민의 현실을 알게 됐다. 3학년 초에 두 학생이 분신 투신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많은 고민을 했다. 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국민들이 함께 참여하고 작은 힘이라도 많은 수가 보태야지, 소수가 무거운 짐으로 괴로워하며 죽음을 통해 외치는 일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여 약대 학생회장을 맡게 된 것이다.

▲ 김미희 국회의원이 본사 배종호 회장과 담화를 나누고 있다.
- 정치권에 뛰어들어서 지금까지 한 일 가운데 가장 보람된 것은?
나는 국회의원이 되고 보건복지위원회에 들어간 뒤 강릉에서 제주까지 전국의 지방의료원 12군데를 순회했다. 지방의료원은 일반병원의 70%의 진료비만 받고 과잉진료나 비급여진료를 하지 않아 시민들이 저렴하게 이용하고 있었다. 지방예산에서 운영비를 지원받지 못하는 지방의료원의 경우는 적자를 메꾸기 위해 직원들의 월급을 체불하며 버티고 있는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의료원장이나 노조위원장은 국회의원의 방문이 처음이라며 놀랐다. 나는 그 뒤 국회에서 지방의료원을 알리고 관심을 촉구하는 발언을 수없이 했다. 대구시지노인병원, 이화의료원, 진해동의요양병원 등 현장방문과 국회활동 뒤 노사협상이 타결되어 보람을 느꼈다. 그리고 저의 고향에 있는 목포의료원 방문은 더욱 뜻 깊었고, 그곳에서 근무하는 여고동창이 반겨주어 인상에 남았다. 또한 주거이전비를 받게 된 중원구 도촌동 110세대 주민들께서 주신 감사패와 주식회사 한라공조가 투기자본에 의해 상장폐지될 위기를 막아냈다고 하여 노동조합에서 주신 감사패는 나의 소중한 보물이다.

- 학창시절 아주 공부를 잘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학창시절 기억에 남는 일은?
초등학교 때 선생님을 따라 방문했던 목포 유달산 중턱 가난한 친구집에서 받은 충격이 지금도 떠오른다. 집이 가난해도 마음껏 공부하고 밝게 자랄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느꼈다.

- 서울대 약대 출신으로서 약국을 운영하면서 순탄한 삶을 살수도 있었을 텐데도 비주류인 진보정당의 길을 걷느라고 힘이 들었을 텐데, 어려운 길을 극복해낸 힘은?
나는 부모님 뿐 아니라 이름 모를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입어 살아가기에 내가 가진 것을 나누고 나라에 쓸모 있는 일꾼이 되어 보답하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먹은 마음이 나를 여기까지 견디고 오게 해준 것 같다. 지금 가는 길은 험난하지만 진보정치가 실현되고 국민이 살기 좋은 복지국가가 이뤄지리라는 믿음이 저에게는 에너지 원천이다.

- 목포는 김의원에게 어떤 의미인가? 그리고 김 의원의 오늘이 있기 까지 목포는 어떤 영향을 미쳤나?
목포에서 태어나 목포에서 자랐다. 물론 제 2의 고향은 성남이지만 어디까지나 목포는 제 고향이다. 아직도 목포에 부모님이 살고계시고 친척분들, 친구들이 많이 있어 마음의 안정을 주는 곳이다. 자주는 못가지만 명절에 내려가서 푸근함을 느끼고 오면 힘이 솟는다.

- 본인의 성장과정에서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 또는 책은?
가난 때문에 과학자의 길을 포기했다는 중학교때 여자 물상선생님의 말씀, 성실하고 검소한 삶을 과학연구에 바친 퀴리부인의 이야기에 감동하여 과학자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대학에서는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전태일 평전),‘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5.18광주항쟁 기록) 등의 책을 읽고 많은 생각을 했다.

- 목포는 원도심 문제를 비롯해 여러 가지 면에서 낙후돼 있는 곳이다. 21세기 목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목포는 바다라는 큰 자산을 안고 있는 도시입니다. 이 자산을 관련 사업과 함께 특화하고 성장시켜 세계적인 해양도시로 나아가길 바란다. 
 
- 수도권 집중 현상이 심화되면서 목포의 젊은이들은 불평등과 차별에 고통받고 있다. 목포의 젊은이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미래는 우리가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목포의 젊은이들도 많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함께 뭉쳐 문제를 해결할 대안을 찾고, 여론으로 만들어 정치권에 요구하기 바란다.
 
- 지난 대선에서 이정희 후보의 처신에 대해 말이 많다. 또 최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의 발언을 두고도 의견이 분분하다. 어떤 입장인가?
몸에 좋은 약이 입에 쓰다는 말이 있다. 진심어린 비판에 귀기울이면 정치가 발전한다.

- 개성공단이 사실상 폐쇄되는 등 남북관계가 완전 경색되고 있다. 남북관계의 해법은?
남북한은 물론이고 미국과 중국, 러시아, 일본의 지도자들, 그리고 유엔도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다같이 힘써야 한다. 한반도에 완전한 평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대화로 종전선언을 체결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 우리 아이들에게 전쟁 걱정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 줘야한다.

- 마지막으로 목포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목포는 나의 뿌리이다. 목포의 딸인 저에게 늘 응원과 조언을 부탁한다. 이메일은 snuppkmh@gmail.com. 트위터는 @snkmh, 전화는 02-784-1860이다.

* 이력
목포시창평동(현재:삼일로) 출생
목포여고졸업
서울대약학대학학생회장
대한성공회성남교회에서노동자생활야학알기교실창립, 1기 교사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원
성남중앙병원 약제과근무
성남시청민원실앞 다나약국설립
제 2대, 3대 성남시의회의원
민주노동당 창당준비위원회운영위원, 창당 중앙위원, 민주노동당 최고위원, 원내 대변인
대한약사회 금장 수상

대담=배종호회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