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단상-조기호 시인] 독락獨樂, 그 특별할 것도 없는 평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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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조기호 시인] 독락獨樂, 그 특별할 것도 없는 평안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3.07.13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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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호 컬럼니스트

[목포시민신문] 며칠 전 칠순이라는 이름으로 가족들과 함께 조촐한 음식을 나누었다. 그런데 그저 생일 때마다 한 끼의 식사를 나누었던 자리가 그날은 왠지 어색하고 미묘한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꽃다발도 그랬고 자식들이 건네는 용돈도 다른 때와는 조금 달라서 마냥 민망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당황스러운 것은 칠십이라는 내 나이가 믿겨지지 않는 까닭이었다. 어떻게 내가 그렇게 많은 세월을 살아왔단 말인가. 그리고 그 세월들은 언제 그렇게도 쏜살같이 지나가버렸단 말인가. 솔직히 말하지만 나는 여태껏 내 나이에 대해 이무런 생각이 없었다, 아니 나이에 대해 무관심했었다. 그래서 나는 내 자신이 이렇게 쉽게 나이를 먹을 줄을, 그리고 이렇게 재빠르게 늙어 가리라고 상상하지를 못했던 것 같다. 그러므로 내 삶에서 오랫동안 나이 든 사람들은 타인들이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그 타인들의 일원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거부할 수 없는 이 생경한 나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한단 말인가? 삶의 순리를 받아들여야 한다고들 하지만 그럼에도 자연스럽게 늙는 것이 허용되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요즘엔 노년층을 겨냥한 광고와 슬로건들이 더 이상은 늙지 말아야 한다는 솔깃한 위로와 충고로 신문과 텔레비전을 가득 채우기도 한다. 하지만 갖은 방법으로 몸을 치장하고 얼굴을 고치고 근육질을 키우고 젊게 보이려고 애를 쓰는 그런 탐욕적인 노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청춘의 몸을 갖기를 열망한다고 해서 생물학적 나이로 되돌아갈 수는 없지 않겠는가.

결국 우리는 우리에게 결핍된 것을 씁쓸히 확인하면서 저마다의 나이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수시로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건망증, 절친한 친구의 이름이 가물가물하고 방금 사용했던 휴대폰이 순식간에 어디론가 사라져버려도 좀처럼 기억해 내지 못하는 그 답답함도 나이 탓이다, 어디 그뿐인가, 간단한 짐 꾸러미를 들어 나르거나 높지 않은 계단을 오르면서도 금방 숨이 차오르는 것 또한 일종의 늙어감의 현상일 것이다. 그것은 곧바로 내 능력에 대한 신뢰와 내 수준에 대한 기대 상실로 이어져서 매사에 몸을 움츠리고 주저하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렇듯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두려움으로 소심해지기 시작하면서 점점 더 자신을 쇠약하게 만드는 무의욕의 생활 속에 허망하게 늙어가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의 이 나이에는 수많은 희망과 시련을 겪은 청년의 내가 걸어온 길이 있었고, 온갖 고통과 수고를 겪은 중년의 내가 걸어온 길이 있었다는 것을 상기해보아야 한다. 굳이 젊음을 되찾고자 하는 것도 아니고 지난날의 추억에 매달리고 싶은 것도 아니나 그럼에도 예전과 다르지 않은 나 자신으로 자유롭게 살고 싶은 것이다. 일상이 흐려지고 느려지고 곤궁한 날의 연속일지라도 그동안 아등바등 몸을 추스르기에 바빴던 생물체로서의 껍데기를 벗고 이제는 차분히 마음을 내려놓고 세상 그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는 나만의 독락獨樂을 즐기고 싶은 것이다.

그리하여 무엇보다도 헐렁해지고 싶다. ‘철저하고 빈틈없음이라는 꼼꼼한 생각이 짓누르는 완벽한 피곤을 털어내고 사소한 실수와 허술한 틈을 유쾌하게 허락하며 혼자서도 웃을 줄 아는 넉넉한 일상을 즐기고 싶다. 굳이 언제 어디에서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겠다는 다짐과 약속에 매이기보다는 때로는 외로움과도 독좌獨坐할 수 있는 시간을 기꺼이 마련하고 싶다. 돌아보면, 내 젊음이란 욕망을 향한 끊임없는 질주에 다름 아니었다. 그러나 그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끝내 채울 수 있는 것들이란 결코 없었다. 늘 부족함과 아쉬움만 더할 뿐이었니까. 그러다보니 삶의 여정에서 만났던 소중한 시간과 연분들을 무심히 지나쳐버리고 날마다 내 안에 유리조각 같은 불만과 불평만을 쌓았던 것도 사실이다. 문득 나는 그동안 무던히도 지키려고 애써왔던 신념과 의지라는 고지식한 명분들에게 부질없이 소중한 시간들을 빼앗긴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행복이란 필요한 것을 얼마나 가득 채우느냐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워지느냐에 있다고 한다. 생각건대, 모든 아쉬움이란 마음의 높낮이에 다름 아니었을 것이다. 감사할 줄도 모르고, 서로 등을 기대고 어깨를 맞출 줄도 몰랐으며, 끝없이 살아갈 것으로만 골몰했던 내 욕심의 옹졸함이었던 것이다. 이제와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고요히 방콕을 독락獨樂삼아 고독과 마주앉아 깨닫는다, 여태껏 나는 왜 알지 못하고 살아왔을까. 하루하루 일상의 매 순간이 내게 유일하게 주어진 죽음의 때라는 것을, 그러므로 지금의 이 시간이 정작 우리가 서로를 사랑해야 하는 마지막 때라는 것을 말이다. 봄꽃과 가을 달을 즐길 줄 알고 눈 덮힌 소나무와 반가운 빗소리를 즐길 줄 아는 낭만도 좋겠고, 헐렁한 바지차림으로 아침 해와 저녁노을을 맞을 수 있는 넉넉한 날들도 마련할 수 있다면 좋겠다. 바라건대, 궁상과 자탄과 한숨으로 쓸쓸히 쇠락하지 않도록 마음을 곧추세우고 부디 남은 날들을 감사와 기쁨으로 평안하게 채워가는 은총의 노후가 되기를, 감히 독락獨樂의 평안을 누릴 수 있기를 기대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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