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시민신문] “언젠가 이 비에 / 제주4·3의 이름을 새기고 / 일으켜 세우리라”
제주4·3평화공원 입구에 자리잡은 제주4·3평화기념관. 제주4·3의 역사를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는 이곳 상설전시실의 제1관 '역사의 동굴' 끝에는 길이 3m, 폭 90㎝, 높이 50㎝의 하얀 비석 하나가 덩그러니 누워 있다.
그려지거나 새겨진 글자 하나 없이 천장이 뚫린 원형 기둥 아래 여린 햇빛만 쬐고 있는 모습이다.
이 비석은 이른바 '백비(白碑·Unnamed Monument)'로 불린다. 어떤 까닭이 있어 비문을 새기지 못한 비석이라는 뜻이다.
'이름 짓지 못한 역사', '언젠가 이 비(碑)에 제주4·3의 이름을 새기고 일으켜 세우리라'라는 문구가 적힌 백비 앞 표지석이 그 까닭을 어림짐작케 할 뿐이다.
제주다크투어 김잔디 사무국장은 “2008년 3월28일에 개관한 기념관과 역사를 함께 해 온 이 백비가 지난 15년 간 비문 없이 누워 있는 것은 제주4·3이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 등과 달리 여전히 올바른 역사적 이름을 얻지 못하고 있는 비극적인 현실 때문이다”고 말했다.
실제 오늘날 제주4·3은 어떤 시각과 입장에서 보느냐에 따라 '사건', '항쟁', '폭동', '봉기', '사태', '학살' 등으로 저마다 다르게 불린다.
정부는 중립적이면서도 다소 모호한 성격의 '사건'이라는 표현을 쓴다. 2000년 1월12일에 제정된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제주4·3특별법)'이 그 근거다.
현행법상 '제주4·3사건'은 '1947년 3월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21일까지 7년 7개월간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 충돌과 그 진압 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규정돼 있다.
지금도 진보계는 "제주4·3은 공권력 탄압에 대한 정당한 저항"이라며 '항쟁'이라는 표현을, 보수계는 "제주4·3은 정당한 공권력에 대한 좌익의 반란"이라며 '폭동'이라는 표현을 쓰며 대립각을 세운다.
기념관을 운영 중인 제주4·3평화재단은 "백비로 연결되는 제1관 '역사의 동굴'은 제주4·3의 역사를 찾아가는 여정의 첫 관문"이라며 "제주4·3의 진정한 해결이 이뤄지는 날 비로소 비문이 새겨질 것이고, 누워 있는 비석도 세워질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