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단상-김경애 시인]당신은 생각나는 사람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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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김경애 시인]당신은 생각나는 사람인가요?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3.07.20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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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애 시인

[목포시민신문] 대학 졸업반인 딸이 요즘 유치원으로 실습을 나간다. 광주에서 실습하다가, 교통이 번거로워 목포 집 근처에서 실습한다. 그런데 아이들을 대하는 일보다도 담임 교사와의 관계가 더 힘들다고 눈 밑에 눈그늘까지 생겼다. 실습이라고 해도 나름대로는 애쓰는 모양이 안쓰럽기도 하고, 또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그보다 더한 일들도 많이 만나게 될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항상 네 편이고 힘들면 아무 때나 다른 일을 해도 된다고 여지를 두었다. 실습과 감기에 두 주일 동안 남자 친구도 못 만나고 있다는 속말을 했다. “그러면 남자 친구가 널 잊어버릴 수도 있겠네!”라고 말했더니 엄마, 내가 잊힐 사람이야? 생각나는 사람이지! 매일 통화는 하지요.” 딸의 대답에 건강하게 잘살고 있구나 싶어 안심되었다.

딸과 대화를 한 후 누군가에게 생각나는 사람이라는 말을 새삼스럽게 생각해 보았다. 어떤 만남은 절절하게 가까웠던 사람도 생각도 나지 않고, 또 연락이 와도 불편하고, 통 연락이 오지 않아도 화가 나고, 또 생각이 난들 어쩌겠느냐고 마음의 문을 미리 닫고 사는 나를 보았다. 애써 복잡미묘한 감정들은 강바닥에 깔아놓고 유유히 아름답게 흐르는 강물을 상상하며 착각하고 살고 있다. 그래도 문득 경애, 잘살고 있어?” “어떻게 지내니?” “얼굴 한번 보자.” 이렇게 물어주는 사람이 얼마나 고마운 사람인가? 그런데 마음의 여유가 없거나 강퍅할 때는 그 물음조차 부담될 때가 있다. 그래서 마음이 내키지 않는 것은 빈말이라도 그래, 잘살고 있어’, ‘언제 다시 만나이런 말이 도통 쉽지 않다. 참 못됐다는 것도 아는데 성격이나 습관은 바꾸기가 쉽지 않다.

인사만 잘해도 관계가 순조로울 것 같은데. 이론과 생각은 알겠는데, 마음과 몸은 쉽지 않다. 그래도 다행히 아주 긍정적이고 낯빛이 좋은 친구가 가까이 있어 배우기도 하고 덩달아 편하기도 하다. 그건 그 친구 삶의 태도이니, 나는 나대로 변화가 필요하긴 하다. 내가 우선순위이고 내 감정에 철저하게 몰두하고 살아온 내가 요즘 나이 오십이 되어 주변을 살피고 있다. 나이 들어 자기밖에 모르는 속물이 되고 싶지 않고, 또 나도 먼저 인사해주고 알을 척해주는 사람이 고마워서 보답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아이들과 힘겨워 보이는 사람에게는 내 마음에서 우러나와 먼저 말을 건다. 그러니까 좀 까칠하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철칙이 있긴 한 것이다.

가끔 시간이 날 때 긍정 맨 친구랑 근교 미술관에 나들이를 간다. 성옥기념관이나 유달산에서 열 번은 마주친 사람이 있다. 항상 반갑게 인사를 한다. 그런데 그날은 좀 이상했다. 마치 처음 본 사람처럼 대하는 것이다. 나는 평소 반갑게 알은 척을 안 해서 느낌으로만 안다고는 하지만, 친구는 차까지 함께 마신 적도 있다고 했다. 그분이 우리를 여행하는 여행객처럼 대하니 친구도 덩달아 처음 그림을 보는 사람처럼 이야기를 나눈다.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은 풍경이었다. 가만히 의자에 앉아 눈앞에 있는 그들과 나를 다시 바라보았다. 어쩌면 두 사람이 진짜 날마다 여행자처럼 사는 것 같았다. 그분이 아파 보이지는 않았다. 기억이란 사람마다 각자 다른 모습으로 되새겨지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최근 본 독립영화 그대 너머로나 치매로 한 부분의 조각들만 기억하는 것과는 달랐다. 한참 그림 설명을 듣고 온 친구에게 물었다. 그분이 처음 만난 여행객처럼 열심히 설명해 주시니, 본인도 기억을 되살리려고 말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이렇게 비현실적이고 이상야릇한 상태가 시적인 순간이 아닌가? 나는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최근 주변에 알고 지내는 분들이 다른 지역에서 목포로 이사와 정착한 분들이 몇 분 있다. 세 사람의 공통점은 그렇게 바삐 지내고 세계 여러 곳을 다녔지만, 목포에 와서야 그 방랑벽이 무뎌지고 다른 곳에 여행을 가서도 목포 집에 와서야 안정감을 느낀다고 한다. 물론 그 사람들은 또 언제 떠날지 모르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목포의 바보 마당도 마찬가지다. 몇 년 전에 목포에서 사는 몇몇 예술가들이 모여들어 만든 곳이다. 그런데 지금은 서울에서 내려와 정착한 시인과 바보 사진관과 몇 명의 예술가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때 그곳에 마음을 담고 있었던 나는 쉽게 잊을 수 없는 공간이다. 아니 그 이전 그러니까 지금 사는 사람들보다 훨씬 전, 내 친구들이 자취하며 살았던 그 공간은 지우려고 해도 지울 수 없는 곳이다.

몇 주째 장마로 어수선한 전국의 비 소식들. 다행히 목포는 다른 지역에 비해 비가 많이 오지는 않았다. 일요일 오후 일정을 마치고 반짝 해가 비쳐 목포항과 바보 마당을 둘러보았다. 갈 때마다 다르게 보이는 풍경. 여행자의 발길로 보는 하늘의 구름과 강 같은 목포 앞바다. 햇살 사이로 빗방울이 선을 긋는 풍경이란 그 어떤 그림과 비교할 수 있을까? 유달산과 목포 앞바다 서산동과 온금동 거리와 집들. 이 모든 풍경이 한 폭의 그림 아니 여러 폭의 수묵화다. 아주 오랜만에 멀리 서울, 경기도에 사는 고등학교 친구들을 소환해서 통화했다. ‘나는 당신을 생각합니다. 나도 당신의 기억속에 사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기억되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마음이 닿길 바라며 그냥 혼잣말을 해본다.

2023. 7. 17.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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