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유용철 대표] 땅에 떨어진 살구와 장맛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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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유용철 대표] 땅에 떨어진 살구와 장맛비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3.07.27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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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시민신문] 장맛비가 세차게 내리는 날이면 살구가 생각난다. 땅에 떨어진 살구는 나무에 따 먹는 것보다 맛이 좋다. 배고프던 시절 집 앞마당에 떨어진 둥근 살구들을 가만히 떠올려본다. 살구가 떨어지면 장마가 시작된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땅에 떨어진 살구를 주워 먹었다가 배앓이를 했던 기억도 새록새록하다.

땅에 떨어진 살구 얘기를 읽으면서, 얼마 전 보았던 영화 ()’의 한 대목이 떠올랐다. 주인공인 양미자 씨는 자신의 손자로 인해 자살한 여학생의 어머니를 찾아가는 도중 땅에 떨어진 살구를 주워 맛을 본다. 그러고는 들판에서 일하고 있는 그녀에게 차마 자신이 누구인지도 밝히지 못한 채 살구에 대한 몇 마디를 주고받고 돌아온다. 살구가 참 맛있다는 양미자 씨의 말에 그녀는 무심히 살구는 원래 땅에 떨어진 게 맛있어요. 나무에 붙은 것 들은 설익어서 못 먹어요라고 대답한다.

결국, 여학생이 쓰러진 강가에 양미자 씨는 몸을 던져 죽음을 선택한다. 소녀의 죽음에 대한 최선의 예의로 그녀가 선택한 것은 몇 푼의 합의금이 아니라 자기 죽음을 통한 속죄였다. 열매가 되었든 사람이 되었든, 땅에 떨어진 목숨은 아직 세상에 매달려 있는 우리를 향해 살아남은 자의 예의와 윤리를 아프게 되묻고 있는 듯하다.

때 이른 죽음에 대한 애도는 영화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우리는 생떼 같은 젊은 목숨을 너무도 어이없이 떠나보내고 있다. 세월호 참사의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태원 참사를 또다시 겪었다. 296명이 희생됐다. 유가족들은 정부로부터 제대로 된 사과를 받지 못했다며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아픔이 채 가시기도 전 중부지역에 내린 기록적인 폭우로 오송지하차도 참사가 또 다시 발생했다. 이른 아침 출근을 하기 위해 이곳을 지나던 시민 24명이 속절없이 물에 갇혀 죽음을 맞았다. 폭우로 침수된 지역의 희생자를 수색에 나섰던 해병대 병사가 안전장비도 감추지 않은 채 급류에 떠밀려 내려가 사망했다.

한국전쟁이 끝난 지도 반세기가 훨씬 넘었는데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터질지 불안하기만 한 나날들이다. 폭우에 희생된 장병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군대에 보내고 동연배 딸을 둔 부모 입장이라 더 마음이 애잔하고 아픈지 모르겠다.

우리 주변엔 한국전쟁의 아픔을 간직하고 사는 사람이 많다. 아버지가 참전용사였던 사람에서부터 전쟁에서 입은 부상 후유증에 시달리는 사람까지 아직도 전쟁의 아픔 기억의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이 많다. 어머니는 피난길에 두 삼촌을 잃었던 기억에 아직도 눈물을 훔친다. 자신도 어린 나이였던 시절 남동생 손을 놓았던 기억을 자책하며 가슴의 응어리로 살고 있다. 한 개인이 감당해야 할 역사의 그늘이 유난히 무겁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폭우로 산사태와 침수로 수많은 수재민이 발생했다. 대통령은 해외 순방 기간을 연장하면서까지 전쟁의 참상을 경험하겠다고 우크라이나 전장을 방문했다. 귀국한 대통령은 부산에 입항해 있는 미 핵잠수함수정을 방문했다. “한반도에서 핵전쟁까지 불사하겠다고 한다. 대통령의 말에 등골에 식은땀이 흐른다. 미국의 군사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 전쟁 다음은 분명 대만해협과 한반도가 될 것이다고 공언한다. 전쟁이 발병하면 한반도는 핵전쟁이 될 것이며 한반도에 어떤 생명체도 살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세계 전쟁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가장 끔찍한 전쟁이 될 것이다고 말한다.

향기로운 살구 얘기를 하면서도 아픈 죽음과 역사, 전쟁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생각에 불안감이 엄습한다.

그런데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전쟁이란 살구가 익을 대로 익어서 땅에 떨어지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사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땅에 떨어진 살구가 맛있다는 말은 전쟁에 관한 한 절대로 성립될 수 없는 진실이다. ‘누구도 저 살구들을 땅에 떨어뜨릴 권리를 갖고 있지 않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어수선한 시절, 평화와 국민의 안정을 기원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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