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서점 추천 이주의 책] 제자리를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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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서점 추천 이주의 책] 제자리를 찾습니다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3.09.13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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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리를 찾습니다

막스 뒤코스 글. 그림

이세진 옮김

국민서관. 2023.4.

[목포시민신문] 당신은 제자리에 있나요?”

할아버지에게는 오랫동안 가꿔온 하나뿐인 소중한 친구, 연못이 있었다. 하루는 땅 주인이 찾아와서 연못이 있는 자리에 주차장을 만들 거라며 내일 당장 떠나라고 말한다. 연못을 남겨 두고 혼자 떠날 수 없었던 할아버지는 연못을 돗자리처럼 돌돌 말아 길을 떠난다.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여동생의 집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오빠를 무척 반가워했지만,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어서 거실 한가운데 연못을 계속 둘 수 없다고 한다. 다행히 여동생 옆집 사는 선생님 덕분에 학교 교실로 연못을 옮겨 간다. 아이들은 즐거워하며 연못에 관심을 가졌으나 교장 선생님은 계속 두면 모기가 생긴다며 거절한다. 시청, 공원, 쇼핑센터, 병원의 정원, 현대미술관, 길거리 모퉁이를 전전하며 돌아다녔지만, 연못을 반기는 곳은 없었다. 오히려 연못은 점점 쪼그라들어 물웅덩이처럼 되었다. 그들은 멀리 떠나 맨 끝 동네에 갔다. 그 동네에서도 맨 끝 골목까지, 그 골목에서도 맨 끝 건물까지. 연못과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 책은 제자리를 찾아 떠나는 할아버지의 여행 같은 인생이야기가 담긴 막스 뒤코스의 그림책으로 노인을 등장시킨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제자리를 찾는 일은 청소년기는 자아정체성 찾기, 청장년기에는 진로와 사랑 찾기, 노년기에는 살아 온 삶을 돌아보며, 자아통합을 이루는 것이라고 심리학에서 발달과정마다 과업으로 다룬다. 자신을 찾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확장하는 일은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존재의 가치를 인정받는 일이다. 이 책의 서두에서 오랜 기간 할아버지는 자신을 인정하는 연못이라는 완벽한 세계를 소중한 친구로 여기며 살아왔다. 노년기의 과업인 자아통합을 완수하고 나름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내는 할아버지에게 당장 이곳을 떠나라는 청천벽력같은 소리는 존재의 가치를 뒤흔드는 최대 위기였다. 인생의 과정마다 우리는 위기의 순간을 맞이할 때가 있다. 그때마다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할 것인지, 또 어떻게 해야 현명한 판단인지를 늘 고민한다. 할아버지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연못을 돗자리처럼 돌돌 말아서 어깨에 매고 함께 길을 떠나는 장면은 작가의 탁월함이 돋보인다. 나는 과연 이런 상황이었을 때, 연못을 어떻게 했을까? 할아버지의 존재는 연못과 하나였다. 그래서 함께해야만 할아버지가 존재하는 것이었다.

할아버지는 위기의 순간, 가장 먼저 가족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이웃, 학교, 공공기관, 병원, 지역사회. 그렇지만 아무도 할아버지의 존재를 온전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여지는 곳은 없었다. 여기서 온전하다는 것은 연못과 함께하는 할아버지의 존재를 말한다. 결국, 할아버지는 더 깊은 고독의 동굴로 찾아서 길을 떠나게 된다. 끝으로 더 깊이, 더 끝으로 고립된다. 하지만 더 깊고 끝이라고 하는 곳에서 신의 존재를 발견하고 기도를 드린다. 할아버지와 연못, 할아버지의 온전한 존재를 받아들여 준 곳은 어디였을까! 할아버지와 연못이 있어야 할 제자리는 어디였을까! 결말은 책을 읽어 보는 재미로 독자의 몫으로 남긴다.

인간은 누구나 존재의 가치를 온전하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다. 오랫동안 믿어온 관계에서는 더욱더 그러하다. 사람의 가치는 어느 날 위기가 찾아올 때, 더 뚜렷하게 진가가 드러난다고 한다. 할아버지가 연못을 온전하게 자신으로 인정하고 함께한 것은 자신과 외부와의 신뢰를 지킨 지혜로움이다. 잔잔한 그림과 함께 펼쳐지는 할아버지의 연못과의 여행은 우리가 자신의 자리를 잘 찾아가도록 보여주는 안내서이다.

무더위와 장마가 유독 힘들게 했던 올해의 여름이 가고 있다. 제법 풀벌레 소리가 깊어진 여름의 색을 가을로 준비하는 중이다. 나의 자리를 온전하게 찾아가는 여정에 친구가 불러 주는 노랫소리처럼 편안하다.

별꽃그림책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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