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서점 이주의 책] 『별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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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서점 이주의 책] 『별의 시간』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3.09.20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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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시간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지음 / 을유문화사

·2023. 02. 25 발행

[목포시민신문] 분량이 많지 않고, 흡입력이 좋아 한 자리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도 좋을 소설. 그러나 한 편으로의 낯섦. 자연스럽지 않은, 혹은 익숙하지 않은 것이 주는 몽글거리는 불편함. 몇 번이나 앞 문장으로 돌아가 이전 내용을 확인하게 만드는 전개.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났지만 브라질에서 성장하고, 활동 한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소설 별의 시간은 겹쳐진 두 장의 사진을 보는 것 같은 묘한 매력을 지닌 작품이었다.

북동부 출신의 여자마카베아. 소설의 주인공인 그녀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진심으로 웃지 않았을 것 같은, 누구에게도 진심으로 사랑받지 못했을 것 같은 인물이다. 마카베아가 무언가 잘못된 행동을 하거나 딱히 악한 인물도 아니지만, 그녀의 상황이 그러했고, 그녀 역시 자신의 처지에 큰 불편이나 자각 없이 현실을 살고 있다.

마치 표정이 없는 그림자, 혹은 아무리 얼굴을 떠올리려 애써도 실루엣으로만 남아있는 희미한 기억과 같은 느낌의 마카베아는 무려 4명의 마리아와 같은 집에서 살며, 직장에서 타이피스트로 일하고 있다. 삶에서 처음이자 단 한 번 연애의 대상이라 생각한 사람에게 사랑 대신 거짓과 배신을 당하는 마카베아. 친구도 동료도 아닌 사무실에서 같이 근무하는 이의 추천으로 아무리 좋게 보아도 사이비가 분명한 전직 포주이자 점술가를 찾아가는 데, 그곳에서 처음으로 희망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소설은 메마른 삶을 사는 마카베아의 이야기인 만큼 큰 사건은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큰 사건도 그녀의 건조하고, 바스락거리는 일상처럼 보이게 만들 정도로 마카베아의 희미한 이미지가 잘 그려져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소설 속 마카베아의 이미지를 만들고 있는 건 화자인 호드리구다. 소설에 직접 등장하지도, 마카베아와 단 한 번도 대화를 나누지도 않는 호드리구는 마카베아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화자이면서도, 마카베아와 동조하기보다 끊임없이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그러나 소설이 진행되는 동안 가장 흥미롭고, 궁금한 대상은 마카베아보다 오히려 화자인 호드리구였다. 남성이며서 작가인, 어떻게 봐도 마카베아와는 전혀 다른 배경을 가지고 다른 삶을 살고 있을 화자의 정체는 누구이며, 마카베아와의 관계는 무엇일까? 그리고 왜 독자에게 한 권의 책을 통해 마카베아의 이야기를 들려주려 하는 것일까? 이런 질문을 따라가며 별의 시간을 읽어본다면, 어쩌면 그 끝에서 진짜 작가를 마주할 수도 있을 것이다.

<구보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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