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단상-김경애 시인] 외달도, 미루나무 한 그루에 마음을 걸어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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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김경애 시인] 외달도, 미루나무 한 그루에 마음을 걸어두었습니다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3.10.26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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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애 시인

[목포시민신문] 나에게 외달도란? 사랑스럽기도 하고, 외롭기도 하고, 또 마음이 애잔해지기도 한다. 이유는 추억이 많은 곳이고 또 아직 모르는 곳이기 때문이다. 외달도는 삼십 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매년 한 번씩은 다녀왔다. 그 섬에서 사는 사람은 아니지만, 눈을 감고도 그림이 그려지는 곳이다. 그렇지만 매번 갈 때마다 새로운 것을 하나씩 알고 온다. 이번에는 외달도 등대가 눈에 들어왔다. 외달도 등대는 황색 바탕에 검은 횡선 표지가 있다. 이것은 동쪽에 암초나 장애물이 있다는 뜻이고, 표지의 서쪽은 가항수역이라는 것을 알았다. 매번 갈 때마다 바닷물이 부두까지 넘실거려서 등대로 걸어갈 일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엔 썰물이어서 등대까지 걸어갈 수 있었다. 건너편에는 해남 화원 매봉길에 있는 목포구등대가 보인다.

외달도는 신진페리호, 김상근 회장님, 목포시문학회를 생각하게 한다. 목포시문학회는 19873월 목포 문학인들을 주축으로 창립된 시인회(詩人會). 목포시문학회의 정체성은 시와 바다, 항구에서부터 시작되었다. 199686일 신진페리오라는 여객선에서 외달도를 오가며 1회 목포 뱃길 100리 선상시낭송회를 열었다. 올해로 28회가 되었다. 2014년 세월호 사고가 있은 후 배를 타고 행사를 한다는 것이 조심스러워졌다. 그 후 정박해 있는 해양경찰 전용 부두나 유람선에서 시낭송회를 열기도 했다. 상황이 변하면서 조금씩 형식은 달라졌지만, 목포시문학회는 여전히 바다에서 시를 노래하고 있다. 그렇지만 선상시낭송은 역시 외달도를 오가는 선상과 또 외달도에 도착해서 어우러지는 시적인 풍경이 가장 특별하다. 우리는 비바람이 불던 해에도 외달도를 찾았다. 그때 쓴 시가 나의 졸시 비 내리는 선창가이다.

비 내리는 선창가는 젖은 눈물이기보다는/늦은 오후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오는/아버지의 뜨거운 가슴 같은 것/비바람 치는 선창가에 서서/아버지의 그늘을 생각해 본다/폭풍우의 날들 속에서도/아버지는 우우우 울고 싶은 날 있었을까/어린 딸을 삼켜버린 바다를 바라보며/컥컥 목 놓아 울고 싶던 저린 날들조차/뒤돌아보면 견딜만했다고/말할 것 같은 아버지/비틀비틀 온몸이 흔들리면서도/더러는 선창가를 두리번거리고 싶은 날 있었을까/그때 나는 유달산 자락 어딘가에서/술에 취한 아버지의 뒷모습만/속수무책으로 바라보고 서 있었다/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그때를 생각하면/가슴속 뜨거운 것들 자꾸 뭉클거린다/휘몰아치는 폭풍우 속에서/다시 또 펄럭이는 깃발로 서서/어딘가로 떠날 준비를 하는/늙은 아버지의 모습이 보인다” - 비 내리는 선창가전문, 김경애 시.

초창기엔 전국의 시인들을 초대하고, 목포시장님과 방송국 사람들, 시민들과 여행객들, 화가와 음악인들이 함께 했던 시간이 있었다. 시인들은 시낭송을 하고 화가는 그림을 그리고 대금을 연주하고 춤을 추기도 했다. 또 어떤 해에는 외국인 관광객들과 기타를 치고 춤을 추고 노래를 함께 불렀다. 현재 목포시문학회 회원이기도 한 유헌 시인은 이웅성 화백이 그해 여름 현장에서 그려준 부채를 지금도 가지고 있다. 여러 예술 장르가 함께 어우러져 한 풍경이 된 모습이야말로 목포, 예향을 말해주는 것이리라. 지금 우리도 다양한 방법으로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또 사람들 마음마다 각자의 시와 삶과 애환을 품고 살아가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in어게인 섬 문화 기록단회원들과 요트 그레이스호를 타고 다녀왔다. 통상 배를 타고 가면 목포항에서 달리도, 율도를 거쳐 외달도까지 50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요트를 타면 조금 빨리 갈 수 있을까? 그러나 요트도 천천히 목포항 주변의 풍경과 바람을 온몸으로 받으며 천천히 항해했다. 보통 섬에 가려면 아침 일찍 출발해서 배 운항이 끊어지기 전 안전하게 이른 오후쯤 섬에서 나오는 시간이 많았다. 일박을 하지 않으려면 하루 여행 코스로 잡아도 충분히 섬을 다 둘러볼 수 있어서 좋다. 또 막배를 타고 돌아올 때, 어떤 화가도 흉내 낼 수 없는 붉은 노을의 광경은 어찌 말로 다 표현 할 수 있겠는가. 산다는 것은 때로는 불덩이처럼 뜨겁게 타오르기도 한다. 그러니까 외달도는 사랑의 섬이다.

지난 코로나 때는 지인 셋과 외달도를 찾았다. 이제는 신진페리오가 아니라 슬로아일랜드였다. 20219월 말쯤이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웅성거렸던 해수풀장과 바닷가, 민박들은 모두 고요했다. 외달도는 가게가 따로 없다. 그래서 오래 머무르려면 미리 먹을 것을 준비해 가는 것이 좋다. 우리는 고즈넉한 바닷가에서 고둥을 주워 바위에 걸터앉아 라면을 끓여 먹고, 커피를 마셨다. 또 별섬을 지나 붉은 칸나가 피어있는 해안선을 걸었다. 민박과 식당을 겸하는 집에서 늦은 점심 예약을 해 둔 터라 식사는 할 수 있었다. 그것도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낭패를 볼 수 있다.

나는 두 지인에게 외달도를 소개해 주고 싶었다. 서울에서 살다 온 지인은 섬에 올 기회가 별로 없었다고 한다. 목포 가까운 곳에 이렇게 아름다운 섬이 있다는 것에 감탄하였다. 우리는 계속 사진과 영상을 찍었다. 사실 등대도 그때 처음으로 자세히 관찰하게 되었다. 그 민박집 앞에는 키가 큰 미루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우리의 삶이 어디까지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인생 오십이 지난 후 모든 인연의 길이가 같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떠나는 이도 다가오는 이도 어찌할 수 없는 것. 외달도도 누군가에게는 뒷모습이고, 누군가에게는 앞모습일 수 있다는 것. 지금은 내게 주어진 몇 시간의 자유 또한 소중하다. 각기 다르게 모인 우리는 복잡다난한 세상일들은 저 파도 속에 잠시 묻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의 인연에 충실하기로 하였다.

목포항이 눈앞에서 멀어져 간다/신진페리호, 외달도, 하얀 등대/반딧불이처럼 환한 불빛 되었다가 /먹장처럼 막막해지는 바다/해안선에 피어난 해당화 꽃향기/떠난 사람 생각에 울었던 밤이 생각난다// 외달도에 와서 내달도를 들여다본다/사랑이 떠나간 자리에/파도 소리가 앉는다/해조음(海潮音)에 쓸려 가는 쓰라린 것들// 오래전 사랑을 꺼내 다시 묻는다/너는 아직도 잠에서 덜 깨었느냐?// 외달도에서 다시 내달도를 만난다/사랑이 내 안에 늘 피어 있음을 본다” - 외달도에서 내달도를 만나다전문, 김경애 시.

추석 전, 전 신진해운 대표이사, 목포시문학회의 큰 별 김상근 회장님이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삶이 시 같은 분이고 말씀이 시였던 분이라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믿고 싶지 않고 믿기지 않는 이별이 우리에게 불쑥 찾아왔다. 추석날 목포시문학회 회원들은 시인의 시를 돌아가며 읽었다. 모두 애도하며 슬픔을 나누었다. 삶과 죽음은 이렇게 밀물과 썰물처럼 흘러가도 외달도는 더 아름답게 달라져 있다. 지금은 외달도 전 가구가 민박집이 되어 있다.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게 보이지 않던 오셔요 민박집이 기억에 남는다. 마을 길도 단장이 되고 벽화도 예쁘게 꾸며졌다. 그렇지만 나는 외달도 마을 길목에 있는 미루나무 한 그루에 마음을 걸어두었다. 그것은 내 마음속에 자리한 시적인 것들이다. 외달도에서 또 새로운 시가 탄생하길 꿈꾼다. 좋은 사람들과 다시 외달도, 그 길을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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