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장 그르니에 지음 / 민음사
·2020. 10. 16 발행
[목포시민신문] 이 책을 무어라 불러야 좋을까? 또 어떤 방법으로 정리를 해야 할까? 화자와 몇몇 인물이 등장하지만 소설이 아니고,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수필이라고 하기엔 사색적이라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철학책에 가깝다. 하지만 이성이라는 돌을 각지게 다듬어 견고하게 쌓아올린 철학책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책 속의 몇몇 서술은 오래 잊고 지냈던 피천득 선생의 단아한 문장들을 떠올릴 만큼 깨끗한 울림을 가지고 있다. 달고 부드러울 줄 알고 깨물었는데, 이가 아플 정도로 단단해 당황스러웠던 경험. 냉장고에서 막 꺼낸 캐러멜 같은 책이 바로 장 그르니에의 『섬』이다.
『섬』은 민음사에서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장 그르니에라는 낯선 프랑스 작가를 소개하며 발간한 책이다. 이후 ‘선풍적’까지는 아니지만 장 그르니에를 찾는 독자가 꾸준히 늘어나 민음사에서 ‘그르니에 선집’시리즈를 펴내기도 했다. 그르니에 선집의 첫 책인 『섬』은 장 그르니에의 제자인 알베르트 카뮈의 헌사로 시작한다.
“나는 지금도 그 독자들 중 한 사람이고 싶다. …(중략)… 나는 아무런 회한도 없이, 부러워 한다. 오늘 처음으로 이 『섬』을 펼쳐보게 되는 저 낯모르는 젊은 사람을 뜨거운 마음으로 부러워한다.”
『섬』은 총 8편의 길지 않은 글로 구성돼 있다. 작품들은 ‘지금’의 화자(나)가 ‘과거’의 경험을 서술하는 형태로 이뤄져 있어 짧은 소설이나 수필을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여기엔 간결하고 때론 서정적이기까지한 그르니에의 문법도 한몫을 한다. 그렇기에 장 그르니에가 미학자이자 철학자인 사실을 몰라도 『섬』은 편안하게 읽을 수 있다.
작품 속에서 그르니에(화자)는 주변의 사람과 동물, 그리고 꽃의 향기에 등 세계를 향해 따뜻한 시선으로 ‘말걸기’를 한다. 그러나 세계의 다른 존재들은 회복 불가능한 상처를 입은 고양이, 병에 걸린 정육점 주인, 높은 담 안에 갇혀있다 담을 넘와서는 스르륵 흩어지는 꽃들의 향기처럼 금새 사라지게 될 것들이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게 될 것, 생명으로 가득차 있지만 곧 비워지게 될 대상에게 그르니에의 시선은 닿아있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무(無)의 상태이지만 0은 아닌, 작품에서 ‘공(空)’이라는 단어로 표현한 상태를 그르니에는 바라본다. 가득 차 있으면서도 비어있는 물과 물 사이 존재하는 섬처럼, 그렇게 공과 공 사이에 존재하는 게 사람이라는 것일까? 이 질문은 끝내 답을 찾지 못해도 좋을 것 같다.
<구보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