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서점 추천 이주의 책]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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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서점 추천 이주의 책]섬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3.12.06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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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그르니에 지음 / 민음사

·2020. 10. 16 발행

[목포시민신문] 이 책을 무어라 불러야 좋을까? 또 어떤 방법으로 정리를 해야 할까? 화자와 몇몇 인물이 등장하지만 소설이 아니고,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수필이라고 하기엔 사색적이라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철학책에 가깝다. 하지만 이성이라는 돌을 각지게 다듬어 견고하게 쌓아올린 철학책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책 속의 몇몇 서술은 오래 잊고 지냈던 피천득 선생의 단아한 문장들을 떠올릴 만큼 깨끗한 울림을 가지고 있다. 달고 부드러울 줄 알고 깨물었는데, 이가 아플 정도로 단단해 당황스러웠던 경험. 냉장고에서 막 꺼낸 캐러멜 같은 책이 바로 장 그르니에의 이다.

은 민음사에서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장 그르니에라는 낯선 프랑스 작가를 소개하며 발간한 책이다. 이후 선풍적까지는 아니지만 장 그르니에를 찾는 독자가 꾸준히 늘어나 민음사에서 그르니에 선집시리즈를 펴내기도 했다. 그르니에 선집의 첫 책인 은 장 그르니에의 제자인 알베르트 카뮈의 헌사로 시작한다.

나는 지금도 그 독자들 중 한 사람이고 싶다. (중략)나는 아무런 회한도 없이, 부러워 한다. 오늘 처음으로 이 을 펼쳐보게 되는 저 낯모르는 젊은 사람을 뜨거운 마음으로 부러워한다.”

은 총 8편의 길지 않은 글로 구성돼 있다. 작품들은 지금의 화자()과거의 경험을 서술하는 형태로 이뤄져 있어 짧은 소설이나 수필을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여기엔 간결하고 때론 서정적이기까지한 그르니에의 문법도 한몫을 한다. 그렇기에 장 그르니에가 미학자이자 철학자인 사실을 몰라도 은 편안하게 읽을 수 있다.

작품 속에서 그르니에(화자)는 주변의 사람과 동물, 그리고 꽃의 향기에 등 세계를 향해 따뜻한 시선으로 말걸기를 한다. 그러나 세계의 다른 존재들은 회복 불가능한 상처를 입은 고양이, 병에 걸린 정육점 주인, 높은 담 안에 갇혀있다 담을 넘와서는 스르륵 흩어지는 꽃들의 향기처럼 금새 사라지게 될 것들이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게 될 것, 생명으로 가득차 있지만 곧 비워지게 될 대상에게 그르니에의 시선은 닿아있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의 상태이지만 0은 아닌, 작품에서 ()’이라는 단어로 표현한 상태를 그르니에는 바라본다. 가득 차 있으면서도 비어있는 물과 물 사이 존재하는 섬처럼, 그렇게 공과 공 사이에 존재하는 게 사람이라는 것일까? 이 질문은 끝내 답을 찾지 못해도 좋을 것 같다.

<구보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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