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단상-김경애 시인] 하동(河東) 천승세 선생님, 제3주기 추모문학제에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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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김경애 시인] 하동(河東) 천승세 선생님, 제3주기 추모문학제에 다녀왔습니다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3.12.06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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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애 시인

[목포시민신문] 하동 천승세 선생님이 돌아가신 지 벌써 3년이 되었다. 2020년은 코로나 19로 서울에 갈 수도 없었고, 또 선생님이 목포에서 떠나신 후, 여러 가지 마음들이 교차하여 선뜻 나설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목포는 3년이 지난 지금도 조용하다. 벌써 3주기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추모문학제가 20231124() 오후 4, 서울 출판문화회관 강당에서 열린다는 소식이다. 계획에 없던 일이라 망설였지만, 마음의 소리는 자꾸 선생님이 부르는 것만 같았다. , 최근 문학과 사람들에 대한 번뇌와 아쉬움으로 번아웃 상태였다. 무작정 피할 것이 아니라 정면으로 부딪쳐 해답을 찾아보자는 마음으로 기차를 탔다.

용산역에서 내려 종각역으로 향했다. 생각지도 못한 주선미, 공광규, 임동확 시인이 먼저 반겨주었다. 공광규 시인은 첫 시집 표사를 써 주신 분이라 더욱 반가웠다. 오시다가 사 오신 양말로 따뜻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좀 이른 시간에 행사장에 도착했다. 천승세 선생님 가족들을 처음으로 만났다. 선생님이 목포에 계실 때는 가족들과 교류가 별로 없었다. 목포에 계실 때 10여 년 목포문학관에서 예맥 소설반을 만드시고 후학 양성에도 힘쓰셨다. 문학관에서 강의를 들으면서 인연이 되었다. 선생님은 삶과 말씀, 모든 행동이 문학이었다. 솔직히 그때는 선생님 곁에서 오래 견디기가 힘들었다. 가까이에 있는 다른 문우들도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중에는 주변에서 맴돌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은 경애는 천상 목포 여자인데, 소설을 써야지.” 자주 권유를 하셨다. 그때마다 ~” 대답만 했을 뿐 소설은 쓰지 못했다. 선생님의 가족들을 서울에서 만나니, 마치 선생님을 다시 뵌 듯 반가웠다. 목포라는 공통점이 있어서인지 더욱 살갑게 느껴졌다. 이제 선생님은 작품을 통해서만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아쉽다.

천승세 선생님은 1939223일 목포에서 출생했다. 소설가이자, 극작가, 시인이던 그는 20201127일 오전 81세로 별세했다. 한국 근현대 최초 장편 여성 소설가로 일컬어지는 소영 박화성의 둘째 아들이다. , 소설, 희곡 등 세 장르를 섭렵한 전천후 작가이자, 그만의 독특하고 개성적인 문체로 한국 문단을 살찌운 작가라는 평을 받았다. 대학원 소설 분석으로 천승세 선생님의 작품을 읽고 과제로 제출한 적이 있다. ‘만선’, ‘낙월도’, ‘신궁을 읽으면서 섬 공간의 특수성과 무속의 신성성이 흥미로웠고 실감 나는 뱃사람들의 말투는 마치 선생님의 목소리를 듣는 듯 생동감이 있었다는 기억이다. 그 후 잊고 있었다. 추모제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그동안 만든 책 3권을 주셨다. 19811월부터 19821030일까지 광주일보에 연재되었던 선창 1, 선창 2(2022,) 두 권의 미완의 유작과 문학과행동에서 출간된 山棠花(산당화)(2016) 시집을 받았다. 시집 첫 페이지 자서(自序)단풍잎-김남주 82연이 수록되어 있다. 민주투사 김남주를 얼마나 아끼고 오래 기억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하동 천승세 선생님의 추모 행사는 이철진 사모님과 자녀들, <성균관대민주동문회>, <하동천승세기념사업회준비위원회>, ‘문학과행동이규배 대표님과 이승철시인, <한국작가회의> 회원들, 시낭송과 공연으로 생전에 선생님과 인연이 있는 많은 분들이 함께 했다. 목포에서는 박관서 사무총장과 나만 참석한 듯했다. 아쉬움도 있었지만, ‘목포문학관에서 보낸 축하 화분이 행사장에 먼저 도착해서 다행이었다. 주제발표는 임동확 시인(<염통과 하동성, 그리고 몸굿’>의 시학), 전상기 평론가(<한국 해양문학의 금-은자탑>), 김재영 소설가(<생태위기 시대에 다시 읽는 천승세 소설>)로 이루어졌다. 익히 선생님의 작품성을 알고 있었지만, 주제발표를 하면서 읽게 된 선생님의 작품을 이제야 꼼꼼히 다시 읽게 된 것을 후회와 다행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김재영 소설가는 낙월도에 나오는 소설 문장을 소리 내서 읽으며 문장의 아름다움을 곱씹으며 다시 새겼다. 사모님의 감사 인사와 그곳에 참석하신 분들이 선생님과 겪은 일화와 이야기로 따뜻한 추모문학제가 되었다. 날씨도 추워지고 갑자기 결정한 일이라 어렵게 기차표를 구입해 서울에 간 것이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에 자주는 못 갔지만, 페이스북을 통해 교류를 하고 있어 낯설지는 않았다. 다행히 행사가 끝난 뒤풀이 장소에서도 훈훈한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내가 등단한 문학과의식출신 이공희감독님, 강민숙 시인과 동향 이수행 시인, 정정현 선생님은 더욱 반가웠다.

심야 버스를 타고 돌아와야 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이제 시작이라는 느낌이 좋았다. 선생님을 기리는 일은 그의 작품을 더 많이 읽고 또 좋은 작품을 쓰는 일이라는 것. 망설였던 서울행이 충만한 시간이 되었다. 그동안 혼자 답답했던 마음이 풀리고,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문학하는 사람으로서 살면 되는 것이다. 돌아오자마자 선생님이 하신 말씀 문학은 문자의 행동이다. 행동하지 않는 것은 실체가 아니라 사체다”(낮달 정정현 님 페이스북)를 마음에 새겼다. 생각만 하고 행동하지 않고 글을 쓰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으랴. 오늘 아침에도 선생님의 山棠花(산당화)시집을 소리 내어 읽어본다.

꽃이 되랴 하였으면 향훈 한 올 말아 올려/녹수청산 고를 것을/하필이면 산구방도리 마사토 덮고/허우룩이 서 있는 뜻/그 산사람 시뻘건 염통 속에 내 뿌리 갈래갈래/순장(殉葬)한 탓이외다/철마다 피 삭는 춘삼월 이맘때면/이파리 톱날같이 묵은눈 베어내도/군시러운 오금마다 골막히 핏물 올라/겨드랑이 비집는 원한 홍반(紅斑) 돋쳐 앓거니와/저 미친 벌떼 불침 꽂으며/꽃만 되라, 꽃만 되라 애끊기만 하더이다” - 산당화전문. 이 시는 모친 박화성(1094~1988) 소설가가 전남 영광에서 교편을 잡은 시절, 시조 시인 조운(曹雲) 선생님 댁에서 시 공부를 한 어머니를 사모하여 쓴 시라고 한다. 이번 주 수요일 영광 나도작가수업가는 날에는 조운 생가를 들러볼 참이다. (2023. 1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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