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서점 이주의 책] 여우 오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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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서점 이주의 책] 여우 오는 날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3.12.13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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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 오는 날

*천옌링 지음 / 리틀브레인

*20231110일 발행

[목포시민신문] 나와 결이 다른 사람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

한 자리에서 묵묵히 긴 시간을 살아가는 나무와 옮겨 다니며 짧은 생을 살아가는 여우의 뭉클한 우정을 담은 여우 오는 날은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보아도 좋은 그림책이다.

외딴 언덕에서 홀로 살아가는 나무는 자기 앞을 지나가는 여우와 친구가 되고 싶지만, 여우는 한자리에 서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무를 보고 코웃음을 친다. 몇 달이 지나 또 그곳을 지나는 여우에게 나무는 내가 만약 너처럼 붉고 하얗게 바뀌는 날이 온다면, 그땐 나랑 친구가 되어 줄래?”라며 말을 건네고 여우는 그러겠다 약속한다. 그해 겨울 큰 눈을 피해 여우는 나무둥치 구멍에서 포근하게 잠이 들었다. 깨고 보니 붉은 잎사귀에 하얀 눈을 얹은 나무의 모습이 자기와 똑같아 보여 겨울마다 나무를 찾는다. 어느 해 나무는 겨울이 면 머물다 떠나는 여우에게 자신을 떠난 여름이면 어디로 가는지 묻는다. 여우는 자신이 나무처럼 노랗고 초록이 되면 말해 준다고 한다. 이듬해 여우는 새 생명을 품은 채 나무 곁으로 와 아기를 낳고, 겨울이 지나자 떠난다. 뜻밖에 어느 여름날 여우는 제대로 걷지도 못한 채로 나타나 풀썩 쓰러져 숨을 멈춘다. 한바탕 비바람이 쓸고 지나가자 쓰러진 여우 위로 나뭇잎이 떨어져 비로소 여우는 노랗고 초록이 된다. 그렇게 여우는 나무를 닮은 모습으로 약속을 지킨 것이다. 몇 년이 흐르고 여우가 쓰러졌던 자리에 벚나무 싹이 돋아 세월이 흐르면서 꽃을 피우고 잎을 틔우고 열매를 맺는다. 두 나무는 빛나는 시절도 초록으로 물드는 나날도 다르지만, 이제 나란히 서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보내는 친구가 되었다.

여우 오는 날은 유한한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아낌없이 자신의 몸을 내어주는 나무와 친구의 외로움을 온몸으로 보듬은 여우의 약속을 통해 누군가의 친구가 되는 일이, 누군가를 품는 일이 얼마나 삶을 아름답고 풍요롭게 하는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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