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단상-조기호 시인] ‘겸손과 감사’의 한 해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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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조기호 시인] ‘겸손과 감사’의 한 해가 되기를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4.01.17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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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호 시인

[목포시민신문] 날짜에 새해 아침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새해 아침이 있다고 한다. 아침 바다, 혹은 머언 산등성이 위로 떠 오르는 붉은 햇살은 새해 새 아침의 그것이라 해도 실은 어제의 햇살과 다름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새해를 맞는 우리들의 눈에는 오늘의 햇살이 분명코 어제의 그것과 같을 수 없으니, 이것이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새 아침의 빛이기 때문인 것이다.

지는 태양을 서산 위에 붙들어두려 했던 것은 서슬 푸른 권세를 휘두르던 어느 옛 황제의 억지였거니와, 흐르는 시간에 선을 그어 묵은 해와 새해를 나눔은 힘없던 백성들의 지혜가 아니었을까. 현실의 가혹함과, 힘 있는 자들의 부당한 요구가 흰옷 입은 백성들의 삶을 억누를 때, 천만리 타향에서 축성(築城)과 수자리() 살기에 지친 그들은 마음으로나마 과거를 미래와 분리하고 싶었으리라. 아리고 쓰디쓴 날들이 손가락으로 꼽기에도 넘치도록 많을 때, 쉬임없는 시간의 운행 가운데 한 날()을 정하여 점을 찍고, 그로부터 새로운 희망을 다시 펼쳐보려 했을 그 가난한 지혜여. 그 마음에는 더러 쓸쓸하고 더러 가슴 아프면서도, 회한과 함께 용서가 있고, 아슴아슴 얼비치는 기대와 소망이 있다. 그것은 새봄이 시작되기도 훨씬 이전, 겨울의 한 가운데에 새해의 첫날을 정한 것으로 보아 너무나도 분명한 일이 아닌가.

새해 새 아침의 마음, 이는 새해를 맞는 순수한 기쁨을 노래했던 어느 수필가의 말(김정빈의 까닭 없는 기쁨중에서)처럼 떠오르는 새날의 모든 것을 새롭게 바라보는 새마음의 다짐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마음이 새롭다는 것은 이전의 것들로 부터 벗어나는 해방감과 함께, 다시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가슴을 벅차게 한다. 그리하여 새 아침의 일출(日出)을 맞는 모든 사람들은 기쁜 얼굴로 저마다의 소망을 기원하는 것이다,

이 아침, 나는 무엇을 더 가지고 무엇을 더 이루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다가 문득, 가지고 이루는 일로 해서 나는 지난 한 해 동안 누군가를 많이 아프게 했을지도 모르며 또한 나를 나 자신으로 부터 멀어지게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가지고 더 이루고자 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바람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소욕(所欲)의 하나일 것이므로 끝내 채워지지 않을 고통스런(?) 꿈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애써 밖으로 찾아 헤매지 않아도 이미 내 안에서 누릴 수 있는 본래의 기쁨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즉 우리 안에서 찾을 수 있는 기쁨과 보람이란 아마도 긍정(肯定)과 자족(自足), 그리고 느긋하고 넉넉한 생활에서 비롯되는 겸손과 감사의 마음일 것이다.

겸손이란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낮추는 태도를 일컫는 말이다. 그러나 나는 누군가가 겸손이란 자기의 분수(分數)를 아는 것이라고 한 말에 깊이 공감한다. 겉으로 드러난 외형적 태도보다는 가슴에 내재된 마음의 상태가 진정한 행실의 근원이 되리라는 생각에서다. 그렇다. 분수(分數) 또한 자신의 신분과 처지를 바르게 알고 실천하는 것을 뜻하는 말이니 정작 겸손이란 절제와 극기와 배려와 통찰의 생활을 돕는 것은 물론,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는 참으로 아름답고 따듯한 마음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새해를 맞는 나의 소박한 바람은 그저 맹목으로 허리를 굽신거리고 고개를 조아리는 그런 겸손이 아닌 진정한 겸손의 생활로 나의 어설픈 이기(利己)를 바르게 다스리며 살아가고 싶은 것이 그 하나이다.

그리고는 내가 가진 것들에 고마워하며 그 선물들을 이웃과 나누는 기쁨을 누릴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사람들의 불행이란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에 대한 불평과 불만에 다름 아닌 것이다. 어찌 우리가 바라는 모든 것들을 다 가질 수 있겠으며, 어찌 모두가 다 같은 것들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겠는가. 저마다의 삶이 다르듯 각자의 생활 모습 또한 다른 것이 세상살이가 아니겠는가. 우리가 무엇으로 살아가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느냐에 대하여 한 번쯤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 다 그런 까닭이다.

산동네의 낮은 처마 끝에 내려앉는 아침 햇살 속에서 깨어나는 가족들의 행복한 웃음소리를 상상해본다. 가난과 궁핍 속에서도 그렇게 따뜻하고 아름다운 평화가 펼쳐지는 세상을 떠올리다 보면 차라리 탐심으로 채워진 부요보다 빈 마음으로 빛나는 맑은 가난이 더 좋아 보이기도 한다. 나 또한 가진 것이라곤 별로 없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감사하다. 스스로의 몸을 다스릴 수 있는 건강과 서로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가족과 친구들과 이웃들이 있다는 것과 먹고 살만큼한 약간의 돈과 여유로운 시간이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그리고 혼자 끙끙거리며 시답지도 않은 시를 쓰는 기쁨을 맘껏 누릴 수 있어서 감사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아침마다 가난한 두 손을 모아 내 이웃의 사람들을 위하여 소리없이 기도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민망할 만큼 감사한 것이 사실이다.

감사함 없이 어떻게 행복이 있으며 겸손함 없이 어떻게 사랑이 있을까, 나는 새해의 들뜬 마음을 조용히 누그리며 특별히 가질 것도 새롭게 이룰 것도 없는 나의 삶이 올해는 한결같이 겸손하고 감사한 일상으로 이어지기를 감히 다짐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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