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서점 이주의 책]죽은 나무를 위한 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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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서점 이주의 책]죽은 나무를 위한 애도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4.01.31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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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나무를 위한 애도

헤르만 헤세. 송지연 옮김. 민음사(2022.9.23.)

[목포시민신문] 겨울 여행을 시작하며 나는 바람 따라 자유로워지고자 했다. 계획을 잡지 않고 시간에 쫓기지 않으며 바람이 부는 대로 길을 걸어가고자 했다. 여행용 가방은 지금껏 내가 다녀본 여행 중에서 가장 가볍게 꾸렸다. 10여 일 여행하는데 옷 두 벌과 책 두 권이 전부였다. 두 권의 책 중, 한 권이 헤세의 죽은 나무를 위한 애도이다. 헤세의 책을 펼치면 나의 가슴은 뛴다. 한 장씩 넘겨질 때마다 아쉽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겨울바람 길여행은 우연히 나무가 친구 되어 늘 함께였다. 서울에서 첫날은 올리브 나무(‘올리브 나무 아래’, 박노해 사진전)를 만났다. 척박한 땅에서 살아내는 올리브나무는 그곳 사람들의 생명과도 같았다. 올리브 초록은 고뇌와 사랑이 응축된 고독의 색이다.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으며 자신의 모습을 완성하고 표현하는 데 온 힘으로 정진하며 살아가는 고독한 존재, 헤세의 나무가 그렇게 치열하게 서 있었다. 이튿날, 중학시절 절친이 강원도 양구군에 살고 있어서 속초로 넘어가는 길에 들렀다. 처음 만난 박수근의 나무는(‘나무 아래’, 미석 박수근 그림전) 나의 절친처럼 친근하면서도 편한 모습으로 반겨주었다. 속초와 강릉, 동해 바닷길에서 만난 해송은 용기와 힘을 주는 친구였다. 깊고 찬 겨울 물결이 이내 향긋한 솔향과 만나니 온순해지고 가녀린 하얀 손으로 모래알을 쓰다듬어 주었다.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나에게 용기의 말을 건네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몇 해 전, 화마로 검게 타서 벌거벗은 죽음의 상처를 겨울 찬 바람에 드러낸 숲의 참혹함을 보며, 상처의 빈자리에 나무의 이야기가 다시 시작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속 애도의 시간을 가졌다.

헤세는 자신 주변 물건(사물)들의 조용한 도움, 침묵의 언어를 좋아한다. 매일 만나고 손으로 만지는 물건들과의 친분을 즐긴다. 책장의 책들, 지팡이, 주머니칼, 정원이 보이는 발코니, 특히 정원의 나무들. 나무들은 늘 만나는 이웃이며 친구들이다. 그림을 그리다, 글을 쓰다가, 책을 읽다가 피곤해지면 그 발코니와 나무 우듬지가 보이는 전경을 찾는다. 계절마다 만나는 친구들이 다르고 향기도 다르다. 나의 작은 일상과 닮았다.

우리가 슬프고 더는 삶을 잘 견뎌 내기 힘들 때 깊은 위로를 주는 헤세의 나무처럼, 처음이지만 언젠가 함께였던 것처럼 푸근한 품을 내어 주는 수근의 나무처럼, 나무는 어머니와 고향으로부터 멀리 갈수록 겁이 나 있는 아이에게 고향은 바로 마음에 있다고 타이르며 마음의 안식처를 찾게 한다.

- 죽은 나무에서 나무가 살아온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나이테의 모양새에는 모든 싸움과 고뇌, 행운과 번영의 역사가 그대로 씌어 있다. 인간의 삶이 다하고 난 후에, 한 인간의 인생을 이야기할 수 있듯이. ‘나무는 저마다 져야 할 짐이 있었고 자신을 지켜야 했다. 그러기에 그들은 자기 고유의 모습과 특유의 상처를 지니고 있었다. - 헤르만 헤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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