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의 시냇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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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의 시냇가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13.06.26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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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가 김학래
나는 1934년에 시골에서 태어나 청년기까지 농촌의 자연과 정서와 함께 숨 쉬면서 살았다. 고향 마을은 제법 큰 마을이었다. 200호가 넘는 마을이었는데, 고향 산천과 들의 이름들은 한자어가 아닌 순수한 우리말이었다.

뒷산을 뒷뫼라  부르고 앞산은 앞까끔이라고 이름을 했으며, 한겨울이면 얼음바위가 나타나는 산은 얼음박굴이라고 했다. 또 어떤 골짜기는 덤측굴이라고 불렀으며, 시내의 발원지를 큰굴헝이라고 했다.
들판의 이름들도 특색있는 이름이었다. 잠실이 있었고 새졸이란 들이 있었다. 마을 한복판으로 시냇물이 흘렀는데, 큰 비가 내리는 날에는 시냇물이 범람하였다. 그 시냇물에서 미꾸라지를 잡고, 큰 물이 날때에는 붕어까지 잡았는데, 지금은 콘크리트로 포장되었기에 사실상 시냇가가 없어진 상태다.

우리 마을 앞에는 제법 큰 하천이 있었는데, 자연이 이룬 냇가였다. 마을의 상층부에 해발 400미터 높이의 큰 산이 있었기에 물근원이 좋았고 시냇물은 언제나 흐르고 있었다.
농부들이 냇의 부분 부분을 막아서 보를 조성하였는데, 이 보가 주변의 논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소중한 수자원이었다. 여름이면 아이들은 목욕을 하러 다녔다. 이를 멱감는다고 말했으며, 강태공들을 늘 볼 수 있었다. 가뭄이 들고 냇물이 줄어들면 농부들은 물고기를 잡았다. 붕어, 피라미, 장어 등의 민물고기는 고기를 잘 먹지 못하는 가난한 농부들에게 소중한 영양식을 제공했다. 그뿐이 아니다. 부녀자들은 냇가에서 새우를 건져서 값비싼 토하젓을 만들어서 밥상에 올리기도 하고 읍내 장에 내다 팔기도 했다.

초가을이 되면 농부들은 논바닥의 물을 빼내는 작업을 했다. 논바닥의 물을 빼내야만 익어가는 나락이 잘 결실되었기 때문이다. 이때의 논바닥 물빼기 작업을 말하여 도구친다고 했다.
도구치기를 할 때는 논바닥의 붕어도 잡고 민물새우를 다량 건져서 항아리에 담고 소금으로 절여두면 값비싼 토삼 토하젓갈이 되었다. 이 토하젓갈은 이듬해 여름까지 두고 쓰기도 했으며, 부잣집일수록 토삼젓갈을 많이 담아 두었다.

그리고 벼가 누렇게 익어갈 무렵 논에는 메뚜기들이 수없이 날아 다녔는데, 이 메뚜기를 잡아서 꼿대에 꽂아 들고 다녔으며, 이것을 가마솥에 튀겨 먹으면 그 맛이 매우 구수하였다.
메뚜기 또한 토삼의 일종이었다. 토삼은 또 있었다. 추수가 끝나고 만주가 지나면 논바닥은 겨울철 휴업으로 들어갔는데, 이때 농부들은 쇠스랑을 들고 물이 약간 고여있는 논바닥을 다 해쳤다.

무엇을 캐냈을까?
토실토실 살이 찐 미꾸라지였다. 이 늦가을 미꾸라지들은 추어탕 감이 되어 한여름 농사일에 여워버린 농부들의 보신탕이 되었다. 농부들이 미꾸라지를 다라이 통에 넣고 소금을 뿌리면 파닥거린다. 호박잎으로 문지르면 는절는절한 미꾸리지의 가죽이 벗겨진다. 이 미꾸라지를 솥에 넣고 삶은 다음 절구통에서 빠순다. 미꾸라지가 발라지면 큰 가마솥에 넣고 밀가를 섞어 끓인다. 이것이 진짜 추어탕이다. 고급스프인데 끓일때 방앗잎이란 나뭇잎을 넣어 비린내를 제거한다. 이 진짜 추어탕은 두 그릇 세 그릇을 먹어도 소화가 잘 되었다. 미꾸라지는 비타민이 풍부한 민물고기이기 때문이다.

농부들이 둘러 앉아 땀을 흘리면서 추어탕을 먹으며 농주도 마시고 빼갈도 마셨다. 이것이 만추에 벌이는 향연이었다. 오늘날 식당에서 파는 추어탕과는 계단이 다르다. 메뚜기 튀김안주는 정종 안줏감으로 기가 막힌 것인데, 그 옛날 농부들은 값비싼 정종을 마시기는 어려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얼마 전 고향의 시냇가를 돌아 보았다. 콘크리트로 하천 정비공사가 잘 되었다. 시냇물이 범람하는 일은 없겠지만, 깨끗하게 정비된 시냇가는 멱감을 곳도 없고, 붕어, 미꾸라지, 장어들이 서식할 수 없는 것 같다.

현대화된 고향의 시냇가에는 자연이 없어진 것이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매년 농약을 뿌리는 논에는 붕어도 살 수 없고 새우와 미꾸라지, 메뚜기들이 없어진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내 어릴적 꿈을 키우고 벗들과 노닐던 시내는 사라진 것이다. 그러기에 마냥 아쉽고 옛날이 그리워질 뿐이다.

아-옛날이여! 그 옛날 고향의 시냇가를 어디서 찾아본단 말인가? 개발도 좋지만 자연환경과 생태계의 파괴는 너무 큰 손실이다. 토하젓과 메뚜기 튀김 등 토삼삼재(土參三材)는 추억으로만 남아 있을 것 같으니 고향의 느낌은 아쉽고 서글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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