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신재중] 정치인의 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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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신재중] 정치인의 배신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4.02.28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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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중 전 청와대 관저비서관

[목포시민신문] 선거를 전후해서 언론과 메스컴에서는 "배신자"라는 결코 달갑지 않는 표현들이 난무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현실은 정치적으로 지역감정이 극에 달해있고, 사상과 이념간의 갈등의 골은 깊게 패여 있다.

따라서 국민들 간의 적대 적 관계정립으로, 정치적 이념이 다른 상대방에 대한 공격성 행동이나 극도의 감정 표출은 이미 사회문제가 되어 버렸고, 그 감정의 응어리는 국민들의 가슴 깊숙이 자리를 잡아 버렸다. 그럼으로써 국민 간, 지역 간, 세대 간의 갈등의 벽은 치유할 없을 정도로 너무 높고 두텁게 쌓여 버렸다.

이러한 갈등을 해소하고 조정하는 게 정치의 본질이다. 그런데 정치는 사라져 버리고 개인 권력유지에 목숨을 건 패거리들만 여의도에 집결하여, 서로를 향해 무차별 공격을 하고 있다. 이런 정치를 바로 잡기 위해 앞장선 양심 있는 정치인들의 목소리와 행동들을 언론과 매스컴은 배신자라는 달갑지 않은 닉네임을 붙여 준다.

배신의 사전적 의미는 "믿음이나 의리를 저버림" 이라고 해석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혼자서는 존립할 수가 없다. 신뢰와 믿음 때문이 아니라 삶을 영위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혼자가 아닌, 여러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조직이나 단체에 속하고자 한다. 그리고 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자신에게 필요한 사람들과 더욱 가까이 하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또한 인간은 자신에게 해를 끼치거나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과는 관계를 맺지 않을뿐더러, 맺었던 관계마저도 냉정하게 끊어 버린다. 이것 역시 자신의 안전한 삶을 위해서다. 그것은 생물학적인 생존본능의 아주 자연스러운 이치인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바로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히게 되는 것이다.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히는 순간, 배신자가 되어 사회적으로나 인간관계에서 소외되고 인신공격을 당하거나 공동체 생활을 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이다.

특히나 정치권에서는 그 정도가 심각하다. 정치 세계에서는 배신의 역사가 있고, 또한 현실 세계까지 그 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정치권에서의 배신은 정치적으로 민감하게 작용이 되어 큰 이슈를 만들어 내고, 국민감정에 커다란 악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반면에 배신의 내용에 따라 배신자라 낙인이 찍힌 정치인이, 정치권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선한 정치적 행위가 되어, 국민의 삶의 변화를 이끌어 가기도 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정치인의 배신 기준은 국민의 시선으로만 판단을 해야 한다. 정치인은 국민의 주권을 위임받아 그 주권을 대리행사 하기 위한 대리인이자 심부름꾼으로서, 국민과의 약속을 전제로 한다. 정치인은 국민과의 믿음과 신뢰로 관계 설정이 되어 있다는 거다. 그러므로 정치인의 배신은 국민을 배신했을 때 배신자라 낙인이 찍히고, 또한 국민의 심판을 받게 되어 있다. 이것이 정치인의 운명이자 숙명이다. 그리고 정치인에 대한 배신의 평가 기준이 된다.

그 외에는 정치인이 되기까지의 정치적 멘토이자 브레인인 스승을 배신했을 때, 배신자의 오명을 쓰게 된다.

이 두 가지의 예를 벗어 난 정치인에게 씌우는 배신은 성립이 안 된다. 그저 내 편이었다가 다른 편이 되어 버린 상황은 배신이 아니라, 내 편에서 적이 되어 버린 적폐의 대상이 될 뿐이다. 그리고 언론이나 메스컴에서 말하는 공적인 배신자란 낙인은 정치인에게만 허용이 된다. 바로 국민에게 믿음과 신뢰를 보여야 하는 주체가 정치인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인이 국민과의 약속을 위반했거나 신뢰와 믿음이 가지 않을 때는, 당연히 관계를 파기하고 선거를 통해서 심판할 수가 있다. 국민이 정치인에게 맡겼던 주권을 다시 회수하는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대리인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러한 순기능이 국민이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의 최고 가치가 되는 참여정치인 것이다.

정치인은 자신의 철학과 이념 그리고 국민과의 약속을 이행할 수가 있는 정당이라고 판단이 섰을 때 정당을 선택하고, 정당에 속해 있는 정치인들과 소속감을 갖는다. 그런데 자신의 정치철학이 정당과 소속 정치인과의 이견이 생기거나 정당이 함께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를 버리고, 몇 몇의 정치인들의 정치적 욕망에 사로 잡혀 패거리 집단이 되어버렸을 때는, 용기와 자신감을 가지고 국민에게 약속했던 초심을 잃지 않고 정치적 판단을 하여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정치적 목적과 소신에 따라 비판과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그 비판과 쓴 소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는 과감하게 소속 정당을 떠날 수가 있고, 자신의 철학을 펼칠 수 있는 정당을 선택할 수가 있다. 이건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정치적인 행위이지 배신의 개념과는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 대선을 전후해서 여.야의 정치인들이 탈당과 입당 등 정치권의 이합집산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정치권의 이합집산은 국민을 위한 같은 목적을 가졌던 정치인들이 목적의식이 서로 달라졌거나 국민을 위한 정당이 개인의 정치권력을 위한 정당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이다. 그러면서 정치를 하는 정당이 아닌 서로 죽이고 죽이는 정치적 살육의 현장이 된 것이다. 이는 정치가 정치 본연의 궤도를 벗어났다는 확실한 증거다. 이러한 모든 심판은 오로지 국민의 몫이다. 국민이 바로 이 나라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신의 정치권력 유지를 위한 탈당과 입당에 따른 행위들에 대해서는 국민들이 판단을 한다. 특별한 이유가 없이 정치권력을 찾아 국민이 선택해준 정당을 포기한 행위에는, 국민이 직접 선거를 통해서 심판을 하게 되어 있다. 정치인은 정당을 대표하는 게 아닌 국민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치인의 모든 정치행위는 국민의 행복한 삶을 위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정치인에게 배신자라는 낙인을 찍기 위해서는, 배신의 내용이 자신의 정치권력을 위한 배신인지 아니면, 국민을 위한 변신인지를 정확하게 판가름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만이 정치인의 행동반경도 넓어지고, 자신의 철학을 마음껏 펼칠 수가 있으며, 오직 국민만을 바라보며 국가발전과 국민을 위한 건전한 정치적 판단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패거리 정당의 정치권력 유지를 방해한다는 이유만으로 배신자의 낙인을 찍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바라보는 올바른 시선과 판단으로, 정치인의 정당한 정치행위를 인정해 주어야 한다. 그 정치인들을 선택 해 준 당사자가 바로 우리 스스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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