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서점 이주의 책] 피로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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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서점 이주의 책] 피로사회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4.03.13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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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2

[목포시민신문] 왜 우리는 피로를 하루의 보상으로 삼고 잠자리에 누워야 하는가!

지금을 사는 우리는 매일 피곤하다는 말을 달고 살아간다. 바쁘고 일이 많아야 유능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시대이다. 스스로 많은 짐을 지우고, 당연한 노동의 형벌을 감수하는 어리석은 시지프스다.

저자인 한병철 교수는 독일에서 주목받는 철학자로서 이 책에서 현대사회의 패러다임 전환을 예리하게 포착하여 설명한다. 그가 말한 지금의 사회는 성과사회이고, 성과사회에서의 인간은 성과 주체이다. 과거의 사회(규율사회)는 부정의 사회로 하면 안 된다에 의해 이루어진 사회이고, 지금은(성과사회) ‘할 수 있다라는 것이 최상의 가치가 된 긍정의 사회이다.

긍정의 사회는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요구에 부응하려고 애쓰다가 지친 우울증 환자와 낙오자를 생산하는 사회이다. 오직 자신의 능력과 성과를 통해서 주체로서의 존재감을 확인하려는 자아는 피로해지고 스스로 설정한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좌절감은 우울증을 낳게 된다는 것이다.

성과사회의 우울은 규율사회의 우울과 다름을 이야기한다. 과거의 규율사회에서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서 다루는 억압과 부정성을 전제로 하는 우울이다. 하지만 오늘날 성과사회에서의 우울은 억압이나 부인과는 무관하다. 오히려 긍정성의 과잉, 해서는 안 됨이 아니라 전부 할 수 있음에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지금의 우울증은 초자아, 즉 무의식이 개입되지 않는다. 성과 주체는 자기 자신을 태워서 소모하고 마모되어간다. 과잉의 긍정 속에서 타인이 아닌 스스로 자신을 통제하는 것이다. 자신의 세포를 적(세균·바이러스)으로 오인하여 파괴하는 자가면역질환처럼 우울은 자신을 소멸시킨다.

우울한 인간은 노동하는 동물로서 자기 자신을 착취한다. 타자의 강요 없이 자발적으로. 그는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이다.”라고 저자는 말한다. 끊임없이 일을 만들고, 성과를 내어, 자발적으로 자신을 착취하는 일에 열을 올린다.

저자는 니체를 통해 성과 주체의 활동 과잉을 꼬집는다. “거친 노동을 좋아하고 빠른 자, 새로운 자, 낯선 자에게 마음이 가는 모든 이들아, 너희는 참을성이 부족하구나, 너희의 부지런함은 자기 자신을 망각하려는 의지이며 도피이다. 너희가 삶을 더 믿는다면 순간에 몸을 던지는 일이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너희는 인내심이 부족해서 기다리지도 못한다. 심지어 게으름을 부리지도 못하는구나!” -니체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활동 과잉은 오히려 인간을 고립시키는 고독한 피로이며, 폭력이라고 말한다. 또한, 그것은 모든 공동체, 모든 공동의 삶, 모든 친밀함을, 심지어 언어 자체마저 파괴한다고 한다. 활동 사회, 즉 성과사회가 고립과 고독으로 몰아넣는 우울증 만연의 사회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성과의 기준을 만들어 자기 자신과 경쟁하면서 끝없이 자기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파괴적 강박 속에 모든 것을 갖고자 투쟁한다. 자기를 착취하고, 자학하며 자기 소멸로까지 치닫는다. 저자는 이를 호모 리메르(자기 주권자)를 자처하는 성과 주체는, 호모 사케르(추방된 자)라고 밝힌다. 성과사회의 주권자는 자기 자신의 호모 사케르라는 것이다.

이토록 우울한 피로 사회에서 우리에게 희망은 사색이라고 저자는 해결책을 던진다. 지금의 사회는 심심한 것에 대해 거의 참을성이 없는 까닭에 저 깊은 심심함도 허용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저 깊은 심심함은 철학적 사색으로 과잉주의인 산만함과 대조시킨다.

사색하는 삶은 모든 일의 긍정이 아닌 주체적인 저항이다. 즉 중단하는 능력을 말한다. 그것은 하지 않은 힘이다. 오늘날 우리는 중단, 막간의 시간이 아주 적은 시대를 살고 있다. ‘하지 않음으로 자신에게 저항하고, 막간을 이용해 깊은 사색에 잠겨 보는 것이 우울을 예방할 수 있는 처방전이 아닐까!

피로사회는 나에게 막간과 중단이라는 자가처방전을 내릴 수 있도록 용기를 준 책이다. 당신에게도 하지 않아도 되는 저항을 일깨워주는 데 충분하리라 생각된다. 새봄, 새 학기에 모두가 무엇인가를 하려고 할 때, ‘하지 않음의 용기를 때로는 보여줄 수 있기를 응원한다.

화온책방/별꽃그림책정원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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