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책방 이주의 책]일인칭 가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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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책방 이주의 책]일인칭 가난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4.03.19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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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인칭 가난

·안온 지음 / 마티

·2023. 11. 24 발행

[목포시민신문] 서슬이 퍼렇다.’

아주 오랜만에 마주한 느낌이었다. 다른 이를 비난하지도, 누군가를 선동하지도 않는 책이지만, 읽는 내내 책의 각진 모서리마저 불편하고, 손가락을 베일 것 같아 조심스럽게 책장을 넘겼다. 26살에 불과한 작가에게 가난이 무엇이기에 이렇게 날카로운 각인을 새기게 한 것일까?

사고로 시력을 잃고 알코올중독자이기까지 한 아버지, 역시 사고로 무릎을 다쳐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었던 어머니. 책 속의 는 선택의 기회조차 없이 태어났고, 태어나기 전부터 가난했다. 가난은 술에 취한 아버지처럼 늘 창피했고, 불편했고, 거짓으로라도 감추고 싶었던 대상이었다.

20여 년을 국가가 인정한 가난한 가정의 구성원으로 자라며, 타인으로부터 바란적 없는 배려와 냉소적인 선의를 경험하고 자란 는 대학에 입학하며 마침내 가난과 아버지의 술냄새가 짙게 배인 집을 벗어난다. 그러나 대학까지 따라온 가난은 공부와 함께 고강도의 노동을 강요하고, 조금이라도 희망을 품는 대가로 건강을, 그리고 삶을 요구한다.

일인칭 가난은 작가가 관통해 온 가난에 대한 경험과 기억과 감정의 기록이다. 작가는 누군가에게 도와달라고 말하지도, 가난이 부모나 사회 때문이라고 탓하지도 않는다.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라거나, 가난을 혁파하기 위해 사회를 바꿔야한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다만 삶을 거세게 내리치는 가난의 경험이 축적돼 점점 날 선 존재로 되어가고 있다고 읽혔다. 그 서슬 퍼런 날은 때로는 타인을 향하기도, 때로는 자신을 향하기도 한다. 그러나 안과 밖 어디를 향하더라도, 그것이 아무리 잘 제련된 날이라 하더라도 반복해서 사용하면 날은 무뎌지거나 이가 빠져 초라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신의 가난이 다른 누군가의 가난보다 더 가난하다고 말할 수 없고, 다른 이의 가난을 대표할 수도 없기에 책을 일인칭으로 쓸 수밖에 없었다는 작가. 그렇다. 가난은 절대적이고 상대적이며, 사회적이고 동시에 개인적이다. 타인이 없다면 부족함을 가난이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고, 누구나 가난한 사회라면 나의 가난은 평균이 된다. 그렇지만 가난의 경험은 개인적인 것이기에 타인의 가난한 경험이 나의 가난을 보상하거나 위로해 주지 못한다. 작가는 결코 서투른 위안이나 뻔한 경구로 조언하지 않는다. 끝까지 개인적이고, 자신의 가난을 직시하고 있기에 일인칭 가난은 마지막 장까지 작가의 서슬 퍼런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것이리라.

작가는 자신의 가난을 일인칭으로 쓸 수밖에 없었지만, 책을 읽는 또다른 일인칭’, 가난과 함께 책장을 넘기는 또다른 일인칭은 일인칭이자 복수형으로 이곳에 존재할 것이다.

<구보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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