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단상-조기호 시인]"봄도 아프게 피어나고 있었다"홍매화 보러 가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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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조기호 시인]"봄도 아프게 피어나고 있었다"홍매화 보러 가는 날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4.03.20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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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호 시인

[목포시민신문] 올해는 홍매화가 많이 힘이 드나 보네.”

해마다 3월을 맞을 때면 새봄의 안부를 홍매화 꽃망울 사진과 함께 전해주던 친구가 보내온 소식이었다. 수령이 400년이 넘는다는 홍매화는 그 자태 또한 수 세월의 풍파를 짊어지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흉하게 뒤틀리고 휘어진 가지들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도리어 경이롭고 경건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혹독한 바람과 차가운 폭설에 시달리면서 긴 겨울을 견뎌왔을, 아니 수 백년을 그런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왔을 홍매화의 속마음은 어떠했을까? 함께 보내온 사진 속의 홍매화는 속살이 다 패인 둥치를 딛고 일어서는 가지 위에 조그만 꽃망울들을 눈물처럼 매달아 놓았을 뿐이었다. 어쩌면 겨우겨우 안간힘을 다하여 꽃망울들을 틔웠을지도 모른다. 봄이 왔다고, 새날이 밝았다고 그러니 힘내라고 사람들에게 환한 웃음을 보여주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친구는 나중에 만개한 사진을 다시 보내주겠노라 하였지만, 저 작은 꽃망울들이 이내 붉은 빛을 터트릴 때도 나는 그것이 아픔으로 피어난 꽃이라는 것을 생각하며 왠지 씁쓸할 것만 같았다,

끊임없이 휘몰아 오는 세파에 시달리며 쓸쓸히 스러져가는, 그러나 끝까지 꽃을 피우기를 멈추지 않는 이 봄의 홍매화를 생각하며 나는 문득 너의 아픔이란 무엇이었느냐고 스스로에게 묻고 싶어지는 것이다. ‘흔들리지 않고 피어나는 꽃이 어디 있겠느냐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세상에 아픔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 또한 어디 있겠는가, 생각과 현실 사이의 불화나 불편함, 그리고 마음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불만과 육체적인 아픔 등 그 모든 것을 고통이라고 한다면, 이는 우리의 삶에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일들이며 누구라도 피할 수 없는 것임이 틀림없다. 다만 사람들에 따라 각기 다른 양상으로 드러날 뿐이지 결국 고통이 없는 삶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일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오늘까지 살아왔다는 것은 주어진 일상 속에서 이미 저마다의 고통을 잘 견디며 이겨냈다는 증표일 것이다. 삶이란 아니, 살아가는 일이란 매 순간 우리에게 주어지는 고통을 슬기롭게 묵묵히 헤쳐나가는 극복의 과정이 되어야 하는 까닭이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저자인 빅터 플랭클은 의미 없는 고통은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힘들고 괴로운 일이 모두 다 가치 있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고통에 의미를 부여한다면 그 순간 고통은 고통이 아닌 밝고 높은 곳으로 오르는 신의 선물(가치 있는 일)’이 된다고도 한다. 나는 빅터 플랭클의 이런 조언이 고통을 이겨내는 한 방법으로써, 궁극적으로 삶의 원동력이 되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하는 것이다.

생각건대, 고통이란 그 고통에 대한 반응과 태도에 따라 각기 여러 양상으로 드러나는 것이므로 우리는 그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찰스R.스윙돈은 인생이란 10%는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이지만 90%는 그 일에 대한 태도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빅터 플랭클이 말한 <고통에 의미 부여하기>는 고통을 극복하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을 거라고 감히 여겨진다.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은 통찰의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긍정성과 피하지 않고 꿋꿋하게 맞설 수 있는 당위성을 확보하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고통에 대한 적극적이고 당당한 태도를 견지할 수 있는 힘을 갖게 하는 까닭인 것이다.

지그시 눈을 감고 홍매화를 떠올려본다. 그가 겪는 고통이란 무엇일까. 뭇 세월의 비바람과 땡볕과 눈보라와 온갖 풍파일 수도 있고 그 모든 역경을 겪어야 하는 순명順命의 삶, 그 자체가 곧 그의 고통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홍매화가 오늘날까지 홀로 그 모진 고통을 이겨온 까닭은 정작 무엇일까? 그것은 해마다 긴 겨울의 혹한을 이겨내고 세상 사람들에게 희망의 새봄을 알리는 짧은 한순간의 기쁨과 보람 때문은 아니었을까. 세상 사람들이 맞는 아름다운 봄이 저렇듯 남모르는 아픔 속에서 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나는 홍매화의 굽고 휘어진 등걸이 그저 남루하고 처연한 세속의 풍경이 아닌 경이롭고 외경스런 성자의 모습으로 빛을 발하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는 이내 붉은 꽃망울 위에 맴도는 봄바람의 소리를 듣는 것이다. -고통을 등에 지고 가지 말고 품에 안고 가라, 등에 짊어지고 가는 것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억지로 지고 가는 것이기 때문에 무겁기만 할 뿐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고통을 품에 안고 가라, 고통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의지와 인내가 어떠한 고통도 따듯하게 녹여줄 것이다- 나는 친구가 보내준다는 홍매화의 예쁘고 환한 웃음을 끝내 기다리지 못할 것만 같아서 황급히 마음의 길을 재촉하여 그에게로 달려가야만 했었다.

너의 한 송이는 경이롭다./ 마른 가지에서, 아니/ 아무도 돌보지 않는 절망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이라서/ 너는 거룩하다,// 기다림으로/ 처절한 견딤으로/ 그리고 서늘한 침묵으로 피어나는 너는/ 응달 아래 차갑게 녹아내리는 눈보다/ 어쩌면 더 슬픈 눈물을 흘렸으리라.// 발 디딜 곳 없는 허공에서/ 너는 밤마다/ 얼어붙은 꿈 위에 돋아나는/ 봉긋한 슬픔을 찢으며/ 가엾은 꽃들을 피웠으니// 가자,/ 겨우내 서럽던 날들 보듬고/ 봄 맞으러 가자./ 힘들고 아팠던 모든 것들 내려놓고/ 봄 마중 가자.// 아지랑이 푸르고 새순도 돋아나리니/ , 그 언덕에서/ 우리도/ 한 송이의 사랑을 꽃피워야 할 때가 아니냐. - 조기호의 홍매화 보러 가는 날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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