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서점 이주의 책] 봄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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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서점 이주의 책] 봄빛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4.04.02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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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빛

*정지아 소설집 | 창비

*2024228일 개정판 1쇄 발행

[목포시민신문] 30만부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한 아버지의 해방일지의 뿌리가 되어 준 정지아의 초기작이 산뜻한 표지로 단장하고 다시 세상에 나왔다. 소설집 봄빛안에는 인생에 대한 작가의 사유와 깨달음이 담긴 11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표제작인 봄빛과 아버지에 대한 어머니의 절절한 연서 세월을 소개한다.

p 47~48, 어머니는 요즘도 해가 뜨기 직전 정화수를 떠놓고 장독대 앞에서 그의 안녕과 무사를 위해 치성을 드렸다. 그것이 어머니에게는 하루를 여는 의식이었다. 그런 어머니 정성 덕분에 지금 이만큼이라도 살고 있는 게 아닐까, 간혹 가슴이 뻐근하게 미어지기도 했다.―「봄빛

어머니의 간절한 염원이 자식을 살게 하는 것은 아닐까?’ 때때로 생각한다.

우리 어머니도 뒤뜰 장독대 앞에서 정갈하게 세수하고 정화수로 자식들의 안녕을 기원하였고, 생일이면 집 떠나 있는 자식들을 위해 시루떡과 쌀밥, 미역국을 차려 놓았다. 책장을 덮고 전화기를 들어 안부를 묻고 싶지만, 이제는 먹먹한 그리움으로만 담아 둔다.

봄빛의 어머니가 자식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팔순이 넘어 치매를 앓게 된 남편과의 시간을 보여주었다면 세월의 어머니는 먼저 떠나간 남편을 향한 가슴 저린 사랑 고백이다.

p 319, 영감, 그 좋아하던 소주도 인자 싫소? 제우 한잔 묵고 마다요? 차라리 잘됐소. 맛난 것도 잊아불고, 좋던 것도 잊아불고, 그립던 것도 다 잊아불고, 올 때맹키 홀가분히 가씨요. 징헌 기억일랑 쩌 아지랭이맹키 날레불고 말이어라. 영감, 보이요? 민들레 꽃씨가 날리그만이라. 모르제라. 우리맨치 징헌 세월을 산 워떤 영감의 징헌 기억이 꽃가루로 날린가도 말이어라. 자요, 영감? 그리 자고 또 자요? 거그는 워떻소? 꿈도 없이 다디단 이녁의 잠 속은 워떤게라? 나도 잠 델꼬 가씨요. 나도 이녁이랑 한날 한시에 갈라요.―「세월

자식들 보기엔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랑이 무뚝뚝해 보일 수 있지만, 세월을 품은 두 분의 깊이는 눈으로 헤아려지는 게 아닐 것이다.

봄빛을 다시 읽으니 이유도 모른 채 내 기억에 각인된 어떤 장면들이 나를 소설의 길로 이끈 게 아닌가 싶다.’ 이야기한 작가의 말처럼 우리를 세상에 있게 한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의 장면들이 지금 우리를 이 자리에 있게 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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