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읽기-조준]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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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읽기-조준]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바꾼다?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4.04.09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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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준(동신대학교 미래라이프대학 학장)

[목포시민신문] 종종, 아니 많은 경우 자리가 사람을 바꾸는 경우를 보게 된다. 선생은 학생들 앞에서 자신의 무식을 드러내기 쉽지 않고 아이를 보호해야 하는 부모는 자신의 약함을 드러내기 쉽지 않다. 전쟁에 임하는 장교는 부하들 앞에서 자신의 두려움을 감추려하고, 지도자는 자신을 따르는 사람에게서 자신의 흔들림과 번뇌를 감출 때가 많다. 사장은 회사가 망해가도 직원들 앞에서 회사가 잘 될거라고 말한다. 또 어떤 경우에는 자신의 자리에 취해서 자신의 부족함을 망각하는 경우도 자주 보게 된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새끼 염소의 이야기는 이를 잘 나타내준다. 양은 높은 바위산을 잘 오른다. 염소들도 산양만큼은 아니지만 높은 곳을 잘 오른다. 어떤 집 우리에서 나온 새끼염소가 어디로 갈까 망설이다가 마당을 가로질러 지붕으로 올라갔다. 지붕에 올라와 보니 그동안 우리에 갇혀 있을 때와는 세상이 달라 보였다.

단지 마당에서 요리조리 몇 걸음 옮겨 지붕에 올라왔을 뿐인데 마치 온 세상이 자기 발밑에 있는 것 같았다. 우리에 있을 때는 마을 전체를 바라볼 수 없었는데 지붕에서는 마을 전체가 눈 아래 굽어 보였다. 늘 쳐다보기만 했던 마당가 나무의 높은 가지에 매달린 나뭇잎도 자기와 같은 높이에 있었다. ‘그래, 내가 있는 자리가 이곳이구나.’ 멀리 바라보니 굶주린 늑대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며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늑대가 가까이 오자 새끼 염소는 일부러 거드름을 피우며 평소 아버지와 어머니도 늑대에게 함부로 하지 못했던 말들을 퍼붓기 시작했다. “, 이 녀석아! 어딜 그렇게 쫄쫄 굶은 채 돌아다니냐? 그렇게 주린 배를 끌고 돌아다닌다고 누가 밥이라도 준다더냐?” 늑대가 소리나는 곳을 쳐다보니 한 입 거리밖에 되지 않는 새끼 염소였다. 평지에서 마주쳤다면 감히 저렇게 까불지 못할 것이다.

대거리를 하기도 귀찮아 다시 걸음을 옮기는데 새끼 염소가 다시 늑대를 모욕했다. “이런 못난 녀석. 오죽이나 재주가 없고 못났으면 이 아침에 배를 곯고 다니느냐? 그냥 가지 말고 어디 재주껏 나 한번 잡아보시지.” 그러자 늑대가 지붕 위에 있는 새끼염소에게 말했다. “, 이 꼬마 녀석아. 높은 데 올라갔다고 우쭐거리지 마라. 너는 지금 네가 잘나서 나를 놀려대는 줄 알지? 지금 나를 놀려대는 건 네가 아니라 지금 네가 있는 바로 그 자리, 지붕이란 말이야.” 이솝우화의 이 이야기는 모욕에 대한 것이다. 하지만 대접받는 자리에 관한 얘기라 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조선시대 대표적 청백리 중 한 명인 맹사성은 76살의 나이로 벼슬을 내려놓고 고향인 온양에 내려가 초야에 묻혀 살았다. 당대 최고의 재상으로 이름을 떨친 그였기에 그 고을에 신임 사또가 부임하면 맹사성을 찾아가서 인사를 올리는 것이 관례처럼 되었다고 한다.

어느 날 새롭게 부임한 사또가 인사를 하기 위해 관아의 관리들을 거느리고 맹사성을 찾아갔다. 마침 밭에 나가 김을 매고 있던 맹사성은 사또가 온 것을 알았지만, 그를 밭에 세워둔체 김만 계속 매고 있었다. 돌아갈 수도 그냥 서 있을 수만도 없던 사또는 팔을 걷어붙이고 밭에 들어가 함께 김을 맸다. 사또가 움직이자, 관아의 관리들도 서로 질세라 열심히 김을 맸고, 해가 질 무렵이 돼서야 맹사성은 허리를 펴고 일어섰다.

그만들 하시고 나오시게!” 맹사성은 그제야 신임 사또의 인사를 정중히 받으며 말했다. “사또로 오셨으니 오늘 하루만이라도 뙤약볕에서 땀 흘려 일해 보면 백성들의 노고가 어느 정도인지 아셨을 것입니다. 아침저녁 밥상을 대할 때마다 밥알 하나하나에 맺혀있는 백성들의 땀을 생각하십시오. 그리하여 부디 모든 이에게 존경받는 목민관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22대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뽑힌 우리들의 대표가 4년 동안 우리를 대신하여 일하게 된다. 자리는 사람을 긍정적인 의미에서 만들 수도’, 부정적인 의미에서 변질되게 할 수도있다. 벌써 꽤 오랜 전 영화인 천만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는 대중이 바라는, 대중을 위할 줄 아는 지도자의 참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비록 진짜 왕은 아니었지만 탐관오리에게는 거침없이 화를 낼 줄 알고 어린 궁녀의 죽음에는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며, 명나라와의 의리보다 중요한 것이 배가 주린 조선의 백성임을 잘 아는 가짜 왕 하선의 모습은, 분명 지금의 대중이 바라는 지도자의 참 모습이다. 어지러운 세상사를 못본체 하며 봄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나는 4월의 봄 날, 민초의 아픔을 읽고 대변할 수 있는 지도자들이 많아지기를 기대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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