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사회서비스원 사랑 쑥쑥⑦] 별이 된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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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사회서비스원 사랑 쑥쑥⑦] 별이 된 아빠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4.04.16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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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민우아동청소년발달센터 목포점 채수경

본보는 전남사회서비스원과 공동으로 도내 사회서비스 우수사례를 발굴해 보도한다. 전남사회서비스원은 매년 가사 간병 방문지원사업을 비롯해 청년마음건강지원사원, 일상돌보서비스 등에 참여한 봉사자 또는 수혜자들의 우수사례 공모전을 실시하고 있다. 본보는 우수사례로 선정된 작품을 보도함으로써 지역 사회서비스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고 방향성을 제시할 목적으로 전남사회서비스원 사랑 쑥쑥이란 제목으로 연중 연재를 실시한다.<편집자 주>

[목포시민신문] 창밖에서 매미가 재잘거리고 바람이 볼을 간지럽히던 한가로운 오후, 한 부녀가 센터에 방문하였다. 상담을 위해 찾아올 땐, 대다수 모녀가 온다는 점을 생각하면 참 보기 좋은 모습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그것도 사춘기를 겪고 있는 딸아이를 위해 아빠가 노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아이는 여느 아이들처럼 핸드폰을 하고 있고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아이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였지만 아이는 나를 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눈도 맞추지 않고 표정의 변화도 없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앞머리를 길게 길러 두 눈을 가린 모습이었다. 궁금해졌다. 내 앞에 있는 이 아이는, 어떤 아픔을 가진 채 살아가고 있는지.

아빠와 먼저 상담이 이루어졌다. 아이는 다문화가정이었고, 46세에 어렵게 생긴 귀하고 귀한 딸이었다. 아빠는 아이들을 위해 일을 해야 했고,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 가족과 잠시 떨어지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아이는 두 동생들과 엄마와 함께 생활하였으며, 아빠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개구쟁이 아이였다. 그렇게 어쩌다 아빠가 오면 떨어지기 싫어서 아빠 옆에 꼭 붙어있고, 잠을 잘 때에도 아빠 배가 가장 좋다며 아빠 배 위에 올라가 잠을 자던 철없는 아이였다. 가끔씩 아빠가 없을 땐 불안하여 오줌을 싸기도 하고, 무서운 도깨비가 나타나는 악몽을 꾸기도 하지만 아빠가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 하나로 며칠을 버티던 씩씩하고 의젓한 아이였다.

그렇게 아빠가 오는 날이 가장 설레고 좋다던 아이에게, 아이들을 보기 위해 힘들어도 꾹 참고 열심히 일하던 아빠에게, 하늘은 무심했다. 아빠는 위암 4기 판정을 받았다. 일을 계속하는데에도 어려움이 있고 당장 항암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어쩔 수 없이 아빠는 일을 그만두고 가족들의 품으로 가게 되었다.

아빠는 아이들에게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아이는 아빠랑 이제 떨어지지 않고 함께 산다며, 매일 밤 아빠 배 위에서 잠을 잘 수 있겠다며 기뻐서 춤을 추는 그런 아이에게 아빠는 차마 아프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가장의 아픔으로 가세는 기울고 부부싸움은 많아졌다. 엄마는 한국말이 서툴러 아이들과 대화가 매끄럽지 못하고, 아빠가 없는 동안 받았던 스트레스를 아이들에게 표출하고 있어 아이들과도 갈등관계였다. 아빠는 그동안 일 때문에 가정과 아이들에게 소홀히 한 부분이 있었고, 그로 인해 아이의 심리적 아픔과 어려움을 뒤늦게 인지하였다.

아이들은 어느새 엄마 아빠 눈치를 보고 있었고, 다 큰아이가 소변 실수를 한다든지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도 어울리지 못하는 등 불안한 모습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심리상담을 받게 되었다.

심리검사를 진행했다. -나무-사람 검사, 문장완성검사, 아동청소년 행동평가척도검사 등 아이의 심리적 어려움을 파악하고자 다양한 검사를 했다.

그림을 잘 그렸다. 아이는 예쁜 집과 나무, 그리고 사람을 그렸다. 아이는 집 그림에서 아빠를 가장 많이 언급하였다. 생각나는 사람, 함께 있고 싶은 사람, 함께 자고 싶은 사람 등 아빠와 함께하는 생활이 아이에게는 무척 행복하고 의미 있는 일상이었다.

아이는 글씨를 쓰고 문장을 완성하는 데에는 조금 서툰 모습을 보였다. 철자를 틀리거나 어법에 맞지 않는 문장을 쓰는 등 다소 미성숙한 모습을 보였으며, 이는 의사소통 상황에서도 좋지 않게 나타날 수 있는 반응이었다. 아이는 친구들과 같이 어울리고 놀고 싶어 하지만 사회적 규범이나 규칙, 사회성 등을 배우고 익히는 등의 학습이 부족하여 그렇지 못하는 어려움을 호소했다.

아빠도 검사를 진행했다. 아이를 양육하는 데 있어 어떠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부모양육태도검사를 했으며, 아이에게 애정표현이 다소 서툴고 학습적인 도움을 많이 제공하지 못한 점과 항암치료로 인해 신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스트레스 받은 것을 아이에게 표출하고 해소하는 모습들이 나타났다.

그래서 심리치료를 받기로 하였다. 아이의 대인관계 향상과 의사소통 능력, 그리고 불안한 마음과 가정환경에 대한 갈등 등을 목표로 놀이치료가 진행되었다.

처음에는 조심스러웠다. 타인의 시선을 피하고 회피하는 모습 등 대인관계에 있어 신뢰가 부족하고 자신의 감정을 부정하거나 숨기는 모습들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정젠가와 감정카드를 이용하여 신뢰관계를 형성하고 천천히 자신을 탐색하고 알아갈 수 있는 시간들을 가졌다.

아이는 매주 성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처음에는 좋다, 싫다고 표현하지 않고 정서나 감정을 모두 배제한 체 로봇처럼 말을 했던 아이가, 이제는 재미있다, 좋다, 즐겁다와 같이 긍정적이고 따뜻한 말들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하루는 아무 활동도 하지 않고 40분 동안 선생님과 일상적인 이야기만 했다. 자신의 속마음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좋다고 말하는 밝은 아이로 변해가고 있었다.

아이는 점점 더 나은 방향으로 변해가고 있을 때, 아빠의 증상은 점점 더 좋지 않은 방향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아빠가 위독하다는,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말을 들었다. 아이는 바뀌기로 결심했는데, 아빠와 약속했는데, 그러기로 한 아빠가 이제는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심리적으로 많이 힘들어하고, 다시 이전의 좋지 못한 모습으로 되돌아가려는 모습을 보였다. 이와 더불어 엄마의 스트레스 또한 높아졌고, 아이와 엄마의 갈등상황은 극에 치달았다. 엄마는 아이에게 아빠와 함께 죽으라는 입에 담지도 못할 말을 하였고, 아이도 아빠와 함께 죽겠다는 가슴 찢어지는 그러한 말들을 주고받았다.

치료는 쉽지 않았다. 아이 개인의 문제와 함께 가족과 그의 주변 환경 모든 것을 바꾸기란 역부족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엄마는 가족들과 동반자살을 시도하기도 하였다. 상담사로서, 아니 한 사람으로서 정말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우선은 아이에게 집중하였다. 아이의 심리적 안정과 위로를 위해 해줄 수 있는 모든 자원을 이용하여 지원을 해주었다. 상담사도 아이도 참 힘든 날들이었고, 느리긴 했지만 아이는 다시 심리적으로 안정을 되찾았다.

그런데, 희망의 끈이 끊어졌다. 하늘은 결국 아빠를 데려가기로 했고, 아이 또한 삶의 원동력을 잃었다. 아이는 약속을 했었다. 이제 공부도 열심히 할 거고, 중학교 올라가서도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엄마 아빠 말도 잘 듣겠다고. 아이와의 만남도 끝이 보였는데, 약속을 잘 지키도록 격려해 주고 응원해 주어야 하는데, 다시 한 번 아이를 시험에 들게 하는 하늘이 너무나도 야속하였다. 아빠는 결국 하늘의 별이 되었고, 아이는 애써 덤덤하고 밝은 척을 했다. 추억회상 책을 만들어 아이에게 이별의 감정과 부정적인 감정을 탐색하고 표현해보도록 하였다. 그랬더니 아이가 이러한 반응을 보였다. “내가 웃지 않으면 더 슬플 것 같아서, 더 크게 더 과장되게 웃는 거예요”. 처음 만났을 때 조금은 미성숙하고 어리던 그 아이가 이제는 너무나도 커버린 느낌을 받았다.

상담사로서 아이에게 더 많은 지원을 해주기 위하여 지역아동센터, 다문화가족센터 등 지역사회 기관들의 방문을 두드렸고, 모두들 한마음 한뜻으로 아이를 위해 적극 협력해 주기로 하였다.

아이의 주 호소에는 이런 것이 있었다. ‘유치원 때부터 지금까지 악몽을 꾸고, 자다가도 울거나 많이 불안해한다’. 상담사로서 아이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아직 밤에 무섭고 악몽을 꾸느냐고,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아빠가 별이 되어 무섭지 않게 널 비춰주고 있다고 말이다.

비록 이제는 아빠 배 위에서 잘 순 없겠지만, 따스한 이불처럼 언제나 밤하늘을 덮어주는 빛나는 별이 있다는 것을 아이에게 꼭 말해주고 싶다.

<자료제공=전남사회서비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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