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의 혁신,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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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의 혁신, 어떻게 할 것인가?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13.08.06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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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호(서울교대 교수)

 
[목포 시민신문] 리처드 거버(R. Gerver)의 『오늘 만드는 내일의 학교』는 영국의 교육체제가 급변하는 사회변화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고, 학교는 아이들을 미래에 그들이 겪을 문제들에 대처하도록 준비시키는 데에 어이없이 실패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아이들은 ‘고화질, 디지털, 온디맨드(on-demand) 세대’인데, 학교와 교육체제는 아직까지도 ‘14인치, 모노 사운드, 흑백’으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사실 학교교육의 ‘실패’를 꾸짖는 이런 주장은 우리에게도 이미 익숙한 것이 되어버렸다. 어쩌면 우리는 그 ‘실패’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저자가 지적하고 있는 기존의 교육패러다임, 즉 사전에 정해진 교육내용을 일방적으로 전달하고, ‘시험 합격여부’로 아이들을 줄 세우는 교육에 안주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학교를 디즈니월드처럼 신나는 곳으로, 어른들이 아니라 아이들이 주인인 곳으로, 미래 세대의 핵심역량인 ‘자신감과 자존감,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사고능력, 협업능력, 의사소통능력’을 기를 수 있는 곳으로 만들 수 있는가? 저자의 이 질문은 우리에게도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 책에 제시된 저자의 주장과 그랜지(Grange) 초등학교의 혁신 사례에 비추어 보면, 혁신의 주체는 현장의 교사일 수밖에 없다. 영국이나 우리나라나 정치권과 교육관료는 눈에 보이는 가시적 성과나 이를 입증할 통계수치에 연연한다. 그들의 논의에서 아이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재탕 삼탕식으로 ‘상부’에서 하달되는 온갖 과제들은 현장 교사들의 짐만 무겁게 할 뿐이다.
 
우리에게도 저자와 같은 책임감과 열정을 가진 현장의 혁신가가 절실히 요청된다. 이 책은 그의 성공사례를 비교적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정부의 지침대로, 교과서를 가지고 정해진 교육과정을 가르치는 데에 급급한, 시종 침체된 상태에서 급기야 폐교 위기에 몰린 초등학교에 부임한 후, 5년에 걸친 비교적 짧은 기간 안에 그 학교를 영국의 가장 모범적인 혁신학교로 만들어냈다. 특히 그가 소개하는 ‘그랜지 타운 사업’은 학교혁신의 탁월한 사례를 보여준다.

이 사업은 학교 공동체를 학생들 스스로 관리하고 운영하는 프로젝트로서, 학교의 정치시스템(시장과 시의원), 환경관리팀(학교환경 및 급식관리), 도우미 시스템(운동장관리, 안전, 응급처치), 건강식품체인점, 카페(간식과 음료판매), 박물관과 선물가게, 갤러리, 미디어센터(신문, 방송) 등을 직접 운영해봄으로써, 학교에서 배운 것을 적용하고, 현실세계에 대한 이해, 책임감, 협업능력 등을 함양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 사업은 저자의 학교혁신의 아이콘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랜지 타운 사업’을 읽는 동안 필자의 뇌리에는 작년에 방문했던 십여 군데의 서울 소재 초등학교 어린이회의 운영실태가 교차되었다. 우리는 여전히 초등학교 아이들은 어른의 보호와 감독을 받아야 하는 존재로 간주하는 패러다임에 안주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아이들을 학교와 자신의 삶의 주인과 주체로서 인정하고, 그들의 놀라운 학습능력과 잠재력을 존중하고, 그들의 넘치는 끼와 흥미에 부합하는 재미있고 신나는 학습공동체를 만드는 일, 이 일은 결국 현장의 교사가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거버의 이 책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 책이 ‘성공’ 사례만을 소개할 뿐, ‘실패’와 ‘좌절’의 사례를 보여주는 데는 인색하다는 점이다. 5년간의 교장으로서 그의 경험에는 ‘성공’뿐만 아니라 ‘실패’도 있었을 것이고, 그의 말대로 우리는 그 ‘실패’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가 소개하는 영국왕립예술학회(RSA)의 정책보고서인 ‘열린 마음 새 교육과정’(open mind new curriculum)에서 제시하는 ‘역량중심 교육과정’ 또한 나름의 한계를 지닌다는 점이 학계에서 이미 지적된 것도 사실이다.
 
우리의 교육시스템도 많이 개선되었지만, 영국에 비하여, 우리의 교육시스템은 훨씬 더 국가주의적이고, 훨씬 더 관료적이며, 국가교육과정은 훨씬 더 경직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의 ‘혁신학교’들은 국가교육과정의 제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그런 만큼 ‘그랜지 타운 사업’과 같은 혁신적 기획은 현재의 체제로서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 책은 우리 학교의 혁신을 모색하는 데에는 충분한 참고가 될 것으로 보이며, 특히 이 방면에서 고민하고 있는 현장의 교사들과 정책담당자들에게는 중요한 토론의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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