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경제학자가 쓴 복지국가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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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경제학자가 쓴 복지국가의 정치학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13.08.30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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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준(성균관대 교수)

 
[목포 시민신문] 하버드 경제학자가 쓴 복지국가의 정치학 - 누가 왜 복지국가에 반대하는가?
알레시나와 글레이저가 함께 쓴 『복지국가의 정치학』은 미국과 유럽 복지국가를 비교한 것이지만,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초판이 출간된 지 1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이 책이 우리 앞에 번역되어 나온 점도 복지의 확대가 시대적 과제로 등장한 한국의 현실을 어느 정도 반영한 것이리라.

사실 유럽 복지국가들과 비교할 때 미국의 복지가 왜소하다는 점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저자들은 미국과 유럽 복지국가 발전의 격차를 가져왔을 것으로 알려진 몇 가지의 요인들 중에서 중요한 것들을 차례로 언급하면서 관련가설들을 검토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 저자들은 미국과 유럽 복지국가의 격차는 두 대륙이 가진 정치제도의 차이,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비례대표제와 같은 선거제도의 일반화 정도나 연방제의 강도, 입법권-사법권-행정권 사이의 집중과 분산 정도에 의해 절반가량 설명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을 통해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국과 유럽 복지국가 격차의 무려 절반 정도가 정치 제도에 의해 설명가능하다는 점이다.
 
 한국은 복지가 정치와는 무관하며, 정치를 통해 복지가 호명되는 것을 극구 회피해왔던 사회다. 복지가 철저하게 탈정치화 되어 복지의 문제를 전문가 중심의 경제 문제, 관료 중심의 통치 문제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매우 강한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물론 여기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국가주도의 급속한 산업화를 경험하면서 한국의 정책 결정 구조는 물량적 경제성장과 토건을 통한 개발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에 적합한 방식으로 변형되었다. 한국에서 복지는 태생적으로 국가의 책임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즉 경제성장에 부담을 주지 않는 것을 최우선적인 정책 목표가 된 것이다. 한편, 정책이 그러한 방향으로 작동되기 시작하면, 관료조직 내부로부터 그것을 변화시키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관료적 의사결정은 주어진 목표에 맞는 수단을 찾는 것에 적합한 것이지, 새로운 목표를 찾는 것에 적합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물량적 경제성장과 토건에 기초한 개발의 적합성이 상실되었을지도 모르는 지금도 복지는 여전히 그러한 정책 목표 하에서 생산되고 유통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복지국가, 혹은 정부에 의해 조직되는 복지정책은 언제나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을 필요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복지의 문제는 정치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복지가 정치의 문제라면, 복지가 정치담론으로 등장한 한국의 현실과 복지 확대에 대한 정당의 관심을 포퓰리즘으로 몰아가는 것은 옳지 않다. 이 책은 복지의 정치화가 뒤늦게 이루어지고 있는 한국의 현실이 지극히 정상적인 것임을 우리에게 일깨운다.
 
 물론 저자들의 주장과 관련하여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해보아야 할 점들도 있다. 우선, 미국과 유럽 복지국가의 격차에 대해 경제변수의 설명력이 거의 없다는 저자들의 주장은 지나치게 강하다. 저자들이 힘주어 부정하는 세전 소득불평등만 검토해보자.

이론적인 차원에서 보면 세전 소득불평등 정도와 복지국가 발전 사이의 관계는 복지의 핵심적인 기능을 재분배로 볼 것인가, 아니면 위험분산에 둘 것인가에 따라 다르다. 재분배 기능에 초점을 둘 때 세전 소득불평등 정도와 복지국가 발전 정도는 비례할 수 있지만, 위험분산 기능에 초점을 둔다면 소득불평등 정도와 복지국가 발전 정도는 반비례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한 많은 연구들을 검토하지 않고 복지국가 발전 정도에 경제변수가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미국과 유럽 복지국가의 격차 중에서 정치제도의 차이로 설명될 수 없는 나머지 절반은 인종적 이질성에 의해 설명할 수 있다는 저자들의 주장 또한 생각해보아야 할 것들을 남긴다.

이질적인 인종들 사이에서는 동질적인 인종들 사이에서보다 연대감이나 공감이 덜하고, 이러한 차이가 타인에 대한 재분배를 제도화하는 복지국가에 대한 선호의 차이를 낳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인종적 이질성을 전적으로 외생적인 변수로 두는 것은 사회과학 연구에서 적절하지 않으며, 내생적 변수라면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다른 변수들을 더 중요하게 다루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끝으로 미국과 유럽에 존재하는 다양한 복지제도들을 소개할 때 종종 발견되는 오역이 이 책에는 없었다. 역자의 큰 수고가 느껴지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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