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종문화-근대성 넘나들기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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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종문화-근대성 넘나들기 전략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13.09.06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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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규(서울대 HK교수)

 
[목포 시민신문] 지난 8월 15일부터 21일까지 광화문에서는 밤마다 특별한 행사가 진행되었다. 문화재청이 주관하는 ‘광화문 빛 너울’이라는 명칭의 미디어 파사드(Media Facade) 작품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에 빔 프로젝트로 여러 가지 미디어 영상을 덧씌워, 휘황찬란한 빛의 향연을 이끌어냄으로써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관광 상품을 개발하려고 하였는데, 이런 작품이야말로 가르시아 칸클리니가 말한 혼종문화의 한 양태에 속한다.
 
혼종문화라고 하면 흔히 이질적인 문화 요소가 조화롭게 혼합된 상태라고 이해한다. 그런데 이 세상에 이질적인 요소가 뒤섞이지 않은 순수한 문화가 있을까? 단언하건대, 그런 문화는 없다. 우리 주변을 잠시 살펴보더라도 김치는 조선 중기 이후에 도입된 고추로 뒤범벅되었고, 우리말 또한 한자어, 일본어, 영어 등 수많은 외래어 요소가 섞여 있다. 예나 지금이나 문화는 항상 이질적인 요소를 받아들여 역동적으로 변모하는 과정에 있다. 
 
그러나 이런 보편적인 현상이 가르시아 칸클리니가 『혼종문화』에서 다루는 문화현상은 아니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보다는 1980년대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시대에 들어와 본격적으로 재편되고 있는 라틴아메리카 문화현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고급문화와 저급문화(대중문화), 전통문화와 근대문화, 민족문화와 타민족문화와 같은 각종 근대적 이분법의 경계가 무너지거나 교차하면서 갖가지 양태로 문화가 재구성되는 과정을 여러 사례를 통해서 보여준다. 
 
가르시아 칸클리니에 따르면, 문화 재편을 추동하는 가장 큰 힘은 시장의 논리이다. 이를테면 축제는 원래 공동체 구성원들만의 의례인데 어느 날 외지인 관광객이 들어오고, 이들을 위해 수공예품과 음식물을 판매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좀 더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서 현대적인 도구와 수단을 도입하며, 곧이어 매스컴이 몰려와 비용을 지불하고 취재하거나 촬영함으로써 이제 축제는 전통문화이면서 동시에 시장 의존적인 행사로, 수익성 있는 관광 산업으로 변모한다. 브라질의 리우 카니발, 멕시코의 ‘망자의 날’, 볼리비아의 오우로 축제는 물론이고, 우리나라의 각 지방에서 열리는 축제 또한 이러한 논리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을 것이다. 
 
가르시아 칸클리니는 우리가 가끔 라틴아메리카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목격하는 전근대적 사회문화영역과 외부인은 결코 관심을 두지 않는 근대적 사회문화영역 사이의 상호 간섭, 갈등, 모순을 어느 하나로 통합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접근하고 이해하려 한다. 즉 『혼종문화』는 근대 사유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서열화와 각종 차별을 넘어서서 공존을 지향하고 차이를 존중하려는 새로운 문화론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시대의 라틴아메리카 사회와 문화에 대한 구조 분석을 외면하고 있으며, 문화현상의 단순 기술에 그치고 있다는 점은 이 책의 한계이기도 하다. 
 
끝으로, 급속한 산업화와 함께 전통문화가 거의 사라져버린 우리 문화의 맥락에서 『혼종문화』는 무엇을 얘기할 수 있을까? 체계적으로 저술하지 않은 책이지만 책장 여기저기서 신선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도 있고, 수십 년 전부터 진행된 문화유산의 복원작업과 이른바 한류라는 이름의 문화 세계화 사이에 개재된 긴장을 포착할 수 있는 안목은 제공해주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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