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공짜로 공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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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짜로 공부한다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13.10.11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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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제영(이화여대 교수)

 
미래 학교의 모습을 상상하라

얼마 전부터 ‘칸 아카데미(Khan Academy)’는 인터넷 상에서 상당한 화제가 되고 있다. 칸 아카데미는 누구나, 쉽게, 무료로, 배우고자 하는 것을 학습할 수 있도록 동영상을 제공하는 사이트(http://www.khanacademy.org/)로 알려져 있다.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것을 학습할 수 있다는 것은 온라인 교육의 장점으로 오랫동안 제시되어 왔는데, 칸 아카데미에서 실제 실현되어 2012년 현재 월간 600만 명이 넘게 접속하여 1억 4천만 회의 동영상 재생이 이루어졌고, 학습자들이 5억 개에 가까운 연습문제를 풀었다. 이처럼 세계적인 호응을 얻은 학습 사이트는 유래가 없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칸 아카데미를 처음 만들어서 운영한 살만 칸(Salman Khan)이 본인이 생각하는 학교와 교육의 미래상을 제시한 것이다.

 학교는 오랫동안 독점적인 지위에서 교육을 공급하는 역할을 수행해 왔다. 21세기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인간들은 학교를 통해 지식을 습득하였고, 학교 체제가 잘 갖추어지지 않은 사회를 미개한 사회인 것으로 여겨왔다. 최근 정보통신 기술이 급속히 발전하고, 스마트 기술이 보편화 되면서 삶의 양상이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

일상의 상당한 시간을 스마트 폰에 할애하고 있으며, 인간 관계의 유지와 관리도 스마트 폰과 SNS에 의존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반면에 학교의 모습과 역할을 살펴보면 학교 밖의 변화와는 달리 상당히 많은 부분은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저자가 가장 중요하게 제기하고 있는 문제는 ‘학교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느냐?’ 하는 것이다. ‘똑똑하고 의욕적인 많은 아이들이 교육과정에서 실패를 경험하고, 푸대접을 받고 있으며, 자존심이 짓밟히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학교의 본질적인 기능이라고 할 수 있는 교과 지식의 체계적인 학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운영되는 학교를 ‘프러시아식 학교 모델’이라고 지칭하면서 산업화 시대의 근대적 학교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뜨거운 교육열로 인해 치열한 경쟁과 승부가 펼쳐지고 있는 학교의 상황을 보면 칸의 지적이 가슴 깊이 공감이 된다.  근대적 학교 모델에 대한 비판은 여러 학자들에 의해 수십 년간 제기되어 왔기 때문에 우리에게 오히려 익숙하다.

저자가 제시하는 학교의 미래형 모형에 대해 더 깊은 관심이 쏠리게 된다. 저자인 칸은 학교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대안으로 ‘The One World Schoolhouse’를 제시하고 있다. 저자의 새로운 학교 모형을 ‘한 교실 통합학교 모형’으로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이가 뒤섞인 100명의 아이들과 5명 정도의 교사가 함께 하나의 교실을 구성하고, 개개인의 학생들이 다양한 온라인 콘텐츠를 활용하여 본인에게 적합한 내용을 수준에 맞추어 학습해 가는 것이다. 본인이 완전하게 이해한 후에 다음 진도를 나가기 때문에 절대기준 평가에 맞추어 성적은 ‘A’만이 존재하고, 방학은 필요에 따라 휴가처럼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칸의 새로운 아이디어는 우리나라의 ‘서당’을 연상시킨다. 훈장님의 지도와 조언 아래 학생이 본인의 능력과 진도에 따라 스스로 ‘자기조절학습’을 하는 모습이다. 대학의 역할에 대해서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있는데 대학의 졸업장을 대체하는 과목별 학력 인증체제를 사회에서 인정해 주는 방식이다. 대학은 더 많은 인턴십의 기회를 제공하여 자연스러운 취업 기회를 확대해 주게 된다. 이러한 학교체제는 취약계층에게 교육받을 수 있는 기회를 더 확대해 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칸의 학교교육 혁신 제안은 일부 학교에서 이미 적용된 사례가 있을 정도로 상당히 실현가능성이 높은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정보통신 기술을 활용한 교육이 전통적인 학교교육을 완전히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적으로 활용되어야 한다는 것도 중요한 부분이다. 교과 지식을 전달하는 학교의 독점적 지위가 약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학교의 새로운 역할과 책임을 어떻게 설정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다만 학교교육에서 지식 전달을 위한 역할 이외에 학생의 인성과 감성, 사회성, 의사소통 능력, 배려 등 사회생활을 위해서 꼭 필요로 하는 핵심역량(core competences)을 어떻게 기를 것인가에 대한 언급이 부족한 부분은 아쉬움이 남는다. 학교의 새로운 모델링은 미래 세대를 위한 우리 세대의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으며, 칸의 아이디어는 상당히 긍정적인 학교의 미래를 보여주고 있다. 칸이 제시한 아이디어는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서 큰 그림을 완성해야 하는 중요한 과제를 우리 사회에 던져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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