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찰
해찰
박승자
일주일에 한 번 습관적으로 神殿에 가는 길
오래 된 궁리를 발끝으로 톡톡 차고 가는 길
은행나무 가로수가 도열해 있는 길
오전 여덟시 오십 분 햇살이 부챗살처럼 활짝 펼쳐있고
서늘한 그늘을 차바퀴가 수십 번 더 끌고 가는 길
철쭉 분재원 있고 일요일에는 문 열지 않는
승미편의점 굴다리 위를 지나가는 길
앞니 빠진 자리 같은 편의점 유리창 안에
이마를 들이밀며 춥파춥스가 꽃다발처럼 꽂혀 있는 진열장
유리창이 밀리고 손님을 기다리던 女子가
잠깐 졸은 잠에서 놀라서 깨고
아이는 열이 높은 이마를 들이밀며 볼멘소리를 하는데,
女子의 손은 아이보다 더 뜨겁다
어느새 가게는 늙은 어둠 속으로 아늑히 접힌다
어린 시절의 고요에 한 눈을 팔며
일부러라도 자꾸 해찰 하며 가고 싶은 길
이래도 되는 걸까?
오랫동안 들려오지 않는 목소리
설익은 건달처럼 땡깡 부리고 가고 싶은 길
빨아 입지 않는 옷처럼 칙칙한 질문들
아! 하고 벌린 입과 다문 입 사이의 말씀처럼
아홉시 은행나무 저 나란히 뻗은 잎맥을 통과한
초록 등불에 자신을 내다 걸어도 되는 걸까
소소한 의문들과 침묵이 만든 햇살의 경계에서
눈알을 츄파춥스처럼 빨며 가는 길
다시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었다. 자꾸 생각이 옛것으로 물든다. 일요일이면 신전으로 가는 발걸음이 무겁다. 일부러 샛길로 접어든다. 어릴 때 골목이 펼쳐진다. 닫힌 슈퍼 안에 사탕이 있다. 맨 종아리로 가게로 뛰어가며 집어 들던 다디단 사탕 같은 날이 그립다
약력 :2000년 광주일보 신춘 당선
2011년 시안 『봄호』 신인상 당선
시집 『곡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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