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과 법, 정의의 다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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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과 법, 정의의 다툼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13.11.22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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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의 법정, 법률의 법정 그리고 소통   

정영수(서울시립대 교수)

우리나라의 민사재판이나 형사재판에서 법정이라는 무대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은 검사, 판사와 변호사이다. 일반 시민은 민사법정의 방청석에 앉아서 몹시 지루해하거나 형사법정의 방청석에 앉아서 자극적인 사실관계에 놀라워하는 모습을 보이는 정도로 법정에 등장한다. 이러한 방청객이 주요 인물로 변신하여 법정이라는 무대에 등장하는 경우가 있으니 바로 형사재판에서의 배심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국민참여재판제도가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법률 제8495호)에 따라 2008년 1월 1일부터 시행된 이후 5년이 지났고, 이 제도의 시행이 국민의 사법에 대한 신뢰의 회복에 기여를 한다는 평가도 많았다. 인터넷의 생활화 및 SNS의 이용 증가로 인하여 정보의 공유와 유통이 일상화되면서 사법과정에 대한 국민의 참여욕구가 늘어났고 이러한 분위기가 국민의 적극적 재판참여를 가능하게 한 것이다. 그런데 일반 시민인 배심원이 소속하고 있는 여론은 12명의 배심원을 통해서 법정 안으로 전달되기에는 너무 광범위하고 무겁다. 그리하여 법률의 법정 밖에 또 다른 법정, 즉 여론의 법정이 열린다.

신문, 방송 또는 인터넷을 무대로 삼는 여론의 법정에서 인정된 사실관계와 법률문제는 시시각각 법률의 법정 안으로 진입을 시도하지만 공정성과 독립성을 생명으로 하는 법률의 법정은 그 진입을 쉽게 허용하지 않는다. 시민들은 법률의 법정과 여론의 법정의 결론이 같은 경우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더욱 공고히 하지만, 만약 그 결론이 다른 경우에는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혼란에 빠져서 급기야 법률의 법정에 등장하는 검사, 판사와 변호사, 배심원 등 주요 인물들을 여론의 법정에 등장시켜 그들을 곤혹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이 책은 전 세계에서 배심제도가 가장 잘 발달된 미국의 수많은 사례와 교훈들을 소개하고 있다. 특히 O. J. 심슨 사건과 같은 세기의 사건들과 최근의 유명 재판들은 검사, 판사와 변호사 등 법률전문가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이 법과 여론의 상호 소통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를 잘 보여주고 있다. 여론은 배심원을 통해서 전달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아서, 배심제도가 발달된 나라에서뿐만 아니라 그렇지 않은 나라에서도 유능한 판사 또는 변호사로 인정받으려면 증거법 원칙이 통하지 않는 여론과 맞닥뜨릴 것에 미리 대비하여야 할 것이다.

특히 다재다능한 변호사는 여론의 법정에 적용되는 특이한 규칙들을 배워야 할 뿐만 아니라 여기서 이기는 기술을 숙달해야 할지도 모른다. 다른 한편으로 여론의 법정을 구성하는 일반 시민들은 법률의 법정에서의 재판의 원칙에 관한 최소한의 지식을 습득해야만 법률의 법정으로부터 무시당하지 않게 된다.     “재판 절차에 대한 접근성은 법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를 높이고, 전체적인 사법 시스템의 기능을 잘 알 수 있도록 한다”는 윌리엄 브레넌(William Brennan) 대법관의 말은 현대 사회의 법정이 나아가야 할 바를 미리 잘 표현한 것처럼 보인다. 재판은 검사, 판사와 변호사들만의 재판이 아닌 일반 시민이 참여하는 재판이어야 하고, 그 재판의 결과물로 발견된 정의에 대해서는 대중이 신뢰를 보낼 수 있어야 한다. 재판에 참여한 배심원은 마음을 텅 비우는 것(empty mind)이 아니라 열린 마음(open mind)을 가져야 한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의 정의를 놓고 법률의 법정과 여론의 법정이 상호 영향을 미치는 정도가 훨씬 커지고 있고 그 소통의 문제 또한 크게 대두되고 있음을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재판의 공정성·독립성과 대중민주주의 사이에 빈번하게 발생하는 갈등의 문제는 간단히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다행히 이 책의 저자와 역자는 모두 유능한 법률가이자 위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는 길잡이로서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해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은이 켄들 코피(Kendall Coffey)는 판사를 상대로 법률 논리를 주장하는 것을 전문으로 하는 변호사이면서 배심원들을 효율적으로 설득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여론의 법정에서도 대중의 관점을 정확히 읽어내는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옮긴 이 또한 20여 년간 판사와 변호사로서 법률의 법정과 여론의 법정을 경험하며 법과 여론의 소통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이들에 의하여 우리는 법률의 법정과 여론의 법정 사이의 소통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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