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말은 어떻게 퀴즈쇼에서 1등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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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말은 어떻게 퀴즈쇼에서 1등을 했을까?
  • 조규범(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 법학박사)
  • 승인 2014.06.20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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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가장 좋은 것은 앞날에 남았으리

 

그래도 가장 좋은 것은 앞날에 남았으리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에게 엄마는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어?” 라고 묻는다. 아이는 기다렸다는 듯 조잘조잘 그날 있었던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엄마는 그런 아이 앞에서 문득 잊고 있던 자신의 어렸던 시절을 떠올렸고, 또 아이는 엄마 앞에서 언젠가 어른이 되어있을 아직 도착하지 않은 자신의 미래를 상상했다.

삶은 그렇게 이야기로 가득 차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잊지 않기 위해, 때론 나누기 위해 자신의 이야기를 흰 종이에 적었고, 또 무대 위에 펼쳤고 그리고 스크린에 투사했다. 조너산 갓셜이 인간을 가리켜 “스토리텔링 애니멀(Storytelling Animal)”이라 이름 붙인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아웃도어 스포츠에 빠져 혼자 여행을 떠난 한 청년이 그만 인적이라곤 없는 계곡에서 추락해 커다란 바위에 팔이 끼이고 만다. 청년은 꼼짝달싹할 수 없는 상황에서 127시간을 버텼고, 결국 살아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자신의 팔을 중국산 군용나이프로 끊어내고 마침내 그곳으로부터 탈출했다. 청년은 한쪽 팔을 잃었지만 대신 살아남았고 덕분에 유명해졌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냈고 여전히 스포츠를 즐기게 됐다. 그리고 청년의 이 이야기는 오래지 않아 영화가 됐다. 대니 보일 감독의 2010년 작 <127시간>이 그것이다. 그렇게 한 편의 영화에는 적어도 하나 이상의 인생이 담겨 있다.

물론 관객의 시선이란 게 주인공에게 먼저 가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만 때로 어떤 이들은 주인공보다 비극적 최후를 맞이하는 악당을 지극한 연민으로 바라볼 때도 있고, 또 엔딩은커녕 영화 초반부에 먼지처럼 사라져버린 어떤 이름 모를 조연의 삶에 마냥 애틋해질 때도 있다. 어쩌면 우리가 어두운 극장 안으로 걸어들어 가는 건 그렇게 누군가의 인생을 훔쳐봄으로써 그 안에 있을지 모를 또 다른 나를 찾으려는 건지도 모르겠다.

<자말은 어떻게 퀴즈쇼에서 1등을 했을까>라는 다소 긴 제목의 이 책은 영화가 꿈이라 결국 영화 만들기를 직업으로 택한 저자가 바로 그 영화를 통해 삶을 돌아보고 또 장차 살아갈 힘을 얻는 과정을 풀어놓는다. 제목 역시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에서 따왔다. 영화는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한 한 시골뜨기 인도 소년이 어느 날 엄청난 상금이 걸린 생방송 퀴즈쇼의 결승에 오르면서 시작된다. 과연 소년은 어떻게 그 많은 어려운 문제들을 술술 풀며 그 자리까지 갈 수 있었을까. 소년이 혹시 아무도 몰랐던 천재였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저 행운? 사기? 모두 아니었다. 정답은 바로 “It is written." 그렇게 쓰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즉 소년의 삶은 이미 그렇게 운명 지어져 있었다. 라는 의미였다. 그렇다고 저자가 굳이 이 영화를 통해 운명론적 세계관을 이야기하는 건 아닌 것 같다. 다만 누구에게나 어렵고 힘든 시기는 있으며 우린 그럴 때 더없이 따뜻한 위로가 필요한 데 바로 이 영화가 그 역할을 해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문득 한번 생각해 본다. “난 과연 잘 될 수 있을까?” 영화의 해피엔딩처럼 나의 인생도 결국에는 해피엔딩이 될까? 그 순간 이 영화가 대답했다. “It is written."

책은 4개의 큰 주제와 그에 따른 소제목으로 분류되어 있다. 누구나 행복해지기 위해 살지만 정작 행복하지 않은 우리들의 모습. 알지 못하기에 불안한 운명에 우린 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그리고 누구나 한번쯤 겪었을 사랑과 그로 인한 상처의 극복, 마지막으로 그 모두의 중심에 있는 ‘나’에 대한 이야기들을 다양한 영화 속 스토리와 등장인물의 삶에 대입해 흥미롭게 펼쳐놓는다. 일테면 쓰지도 않을 짐들을 어깨에 올려놓은 채 내려놓지 못하는 현대인들을 향해서는 “당신의 가방에는 무엇이 들었나요? (What's in your backpack?)”라는 영화 <인 디 에어>속 대사를 통해 이야기를 시작하는 식이다.

스크린 속에는 누군가의 삶이 살아 있다. 그리고 우린 때로 영화가 현실을 비춰주는 거울이란 걸 알고 있다. 영화를 보며 남몰래 울고 또 웃는 건 그 순간 영화가 내 삶을 어떤 식으로든 위로해 주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책에 그런 위로가 되는 영화들을 담았다. 책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드는 생각은 잔잔한 행복감이 카푸치노의 거품처럼 입안에 몽글몽글 퍼져드는 느낌이라고나 해야 할까?

조규범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 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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