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돌프 히틀러, 모두가 다 아는 하지만 잘 모르는 악마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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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돌프 히틀러, 모두가 다 아는 하지만 잘 모르는 악마의 모습
  • 승인 2014.08.21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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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에 붙이는 주석 원제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 1890년 4월 20일 ? 1945년 4월 30일). 모두가 인정하는 악마적 인물이다. 독일의 독재자로 2차 대전을 일으켰으며, 그 전쟁에서 수천만 명이 희생되었고 수백만 명의 유대인과 소수 민족이 학살되었다. 국가사회주의(National Socialism)라는 이념을 내세우면서 1930년대 독일을 전체주의 사회로 변모시키었고, 그 국가의 힘을 이용하여 유럽 정복을 시도하였다. 특히 인종주의에 기초하여 게르만 민족의 우수성을 강조하였고, 생존권(Lebensraum) 개념에 기초하여 게르만 민족이 생존할 수 있는 공간을 동부 유럽에 구축하고자 하였다. 2차 대전은 그 수단이었고, 여기서 패배하여 자살하였다.

히틀러의 이러한 프로필은 널리 알려져 있다. 제바스티안 하프너의 <히틀러에 붙이는 주석>은 앞에서 제시한 프로필에 기초하여 히틀러라는 인물을 분석하고 있다. 독일어책 자체는 1978년에 출판되었고, 지금까지도 독일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히틀러 관련 서적이다. 1983년 하버드 대학 출판부에서 <히틀러의 의미(The Meaning of Hitler)>라는 제목으로 영어 번역본을 출판하였으며 한국어 번역은 2014년에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 책은 그 ‘주인공’의 중요성을 고려한다면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2010년에 두 권으로 번역된 2,200페이지의 이언 커쇼(Ian Kershaw)의 히틀러 전기와 함께, <히틀러에 붙이는 주석>은 20세기 역사의 중심에 나타났던 악마적 인물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저자는 히틀러의 생애와 성과 및 성공,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타났던 오류와 실수, 마지막으로 그가 저지른 범죄와 배신 등을 다루고 있다. 히틀러의 개인적 삶은 너무나도 빈약하였다. 가족도 자녀도 없었으며, 적절한 교육을 받지도 않았고 뚜렷한 직업도 가지지 못하였다. 하지만 히틀러는 정치적으로 비상하였고 탁월한 조직 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독일이라는 국가를 경제공황에서 탈출시키는 데 성공하였을 뿐만 아니라 군사력을 재건하는 데도 성공하였다. 또한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을 무너뜨리고 자신의 정권을 수립하였으며 베르사유 체제를 붕괴시키고 독일의 위상을 제고하였다.

그러나 히틀러는 이러한 성공에 머물지 않고 더욱 많은 것을 추구하였고,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여 모든 것을 파괴하였다. 특히 히틀러가 가지고 있었던 유대인에 대한 병적인 증오심은 1942년 이후 전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사라지자 히틀러 자신의 모든 행동을 결정하게 되었다. 이러한 해석에서 저자는 히틀러의 반유대주의와 게르만 민족의 생존권을 추구하려는 노력을 구분한다. 즉, 기존의 설명이 생존권 추구를 위한 2차 대전의 부산물로 유대인 학살을 이해하였다면, 하프너는 유대인 학살은 전쟁의 결과가 아니라 대체물이었으며 1941년 겨울 전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사라지자 히틀러는 자신의 또 다른 목표인 유대인 살해에 집중하였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히틀러는 국가를 통치하는 정치가가 아니라 연쇄 살인범에 가깝다. 비스마르크와 나폴레옹 등은 전쟁을 수행하고 그 과정에서 무고한 사람과 군인을 희생시켰지만, 통일 독일과 공화정 프랑스 및 법률 등의 유산을 남겼다. 히틀러는 뚜렷한 목표를 가지지 않았고, 오직 살인에만 집중하였다.

독일 정치의 전통인 ‘국가에 대한 봉사’라는 측면에서 히틀러는 지극히 이질적이다. 히틀러는 자기 개인의 증오심을 실현하기 위해 국가를 수단으로 이용하였고, 패배에 직면하자 끝없는 살육에 몰두하였다. 정치가에게 필요한 건설적인 상상력이 결여되었고, 세계를 자신이 보고 싶은 방식으로만 파악하였으며, 국가 기구를 파괴하고 혼란을 유발한 상황에서 자신만이 그 혼란을 통제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 때문에 히틀러는 패배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혼란 때문에 히틀러의 이념은 부활할 수 없었다. 책 말미에 등장하는 이러한 관찰은 매우 정확하다. “나폴레옹이 몰락한 후 33년이 지나서 프랑스는 나폴레옹의 조카를 대통령으로 선출하였다. 하지만 히틀러의 몰락 후 33년이 지난 1978년에도 히틀러의 정치적 후계자는 등장할 수 없었다.” 나치즘의 소멸. 이것이 히틀러가 남긴 가장 귀중한 유산일 것이다.
<이근욱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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