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맞서 싸운 스페인 한 마을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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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맞서 싸운 스페인 한 마을의 이야기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14.08.28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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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상한 마을에 산다

 
‘우리는 이상한 마을에 산다’는 매우 흥미로운 책이다. 두 가지 점에서 그러하다. 하나는 전 세계적으로 상당한 관심을 불러모아 온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의 마을 공동체 마리날레다를 본격적으로 다룬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새로운 사회에 대한 구상에 적지 않은 함의를 안겨준다는 점이다.

물론 이 두 이슈가 분리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발 금융위기는 시장에서의 경쟁의 원리를 특권화시켜 온 신자유주의의 한계를 드러낸 역사적 사건이라는 점에서 개인 간 무한경쟁에 대한 대안으로 공동체적 연대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게 했고, 이러한 경향은 이 책에서 다루는 마리날레다를 포함한 마을 공동체 운동에 관심을 기울이게 했다.

저자인 댄 핸콕스가 저널리스트인 만큼 책의 내용은 한 편의 소설을 보는 것처럼 다채로우면서도 다이내믹하다. 참여 관찰과 인터뷰 그리고 사이사이 적절한 자료 제시를 통해 마리날레다라는 마을 공동체가 어떻게 등장하고 유지돼 왔으며 그 미래가 어떠할지를 종횡무진 기술한다.

사회학적 분석이라기보다 인류학적 탐구에 가까운 이 저작은 책의 후반부에 가서야 저자의 분명한 메시지를 드러낸다. 그 메시지는 마리날레다가 세상과 맞서 싸운, 다시 말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국가정책을 거부하고, 연대와 협동의 논리에 입각해 공동체를 일궈온 이례적이지만 주목할 만한 실험이라는 것이다.
서유럽의 후진국이라 할 수 있는 스페인에서 바스크 지방의 몬드라곤 사례에 이어 안달루시아 지방의 마리날레다 사례가 새롭게 각광받고 있는 것이 나로서는 크게 흥미롭다.

직접민주주의, 협동조합, 0%에 가까운 실업률, 무상 주거, 무상 의료, 다채로운 공공문화 등 마리날레다가 이뤄온 성과는 놀랍다. 저자는 마리날레다 모델을 물질적 생활과 정신적 생활을 상징하는 이른바 ‘빵과 장미’를 동시에 성취한 사례로 주목한다.

여기에는 두 원동력이 있었다. 하나는 지속적인 투쟁이다. 마리날레다 주민들은 12년 동안 한여름에 매일 16킬로미터를 행진하고 목숨을 내건 단식투쟁을 통해 대지주로부터 토지를 획득했다. 다른 하나는 이 책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마리날레다 시장인 산체스 고르디요의 리더십이다.
 
‘노동자 단결을 위한 집단-안달루시아 좌파연합(CUT-BAI)’의 대표인 그는 1979년 시장으로 선출된 후 정부와 대지주에 대항하는 투쟁을 주도해온 동시에, ‘무정부주의적 공산주의’라는 유토피아를 현실에서 구현하려는 노력을 경주해 왔다. 시민들의 열정적 참여와 고르디요 특유의 리더십이 결합해 마리날레다 모델이 만들어져 온 셈이다. 마리날레다 모델은 이중적 함의를 안겨준다. 한편에서, 이 공동체의 실험은 대처리즘으로 상징되는 ‘대안이 없다’는 신자유주의의 구호에 맞선 ‘대안은 가능하다’는 사례로 평가할 수 있다.

특히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마리날레다에 대한 관심이 유럽 안에서는 크게 증가해 왔다. 복지국가가 제도화된 서유럽에서는 마리날레다 모델이 갖는 의미가 크지 않겠지만, 남유럽을 포함한 나머지 유럽 지역에서는 새로운 발전 모델로서 상당히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마리날레다 모델이 국지적 차원이 아니라 전국적 차원에서 얼마나 유효하게 작동할 수 있는지는 미지수다. 어떤 이들은 지방자치를 강화해 수많은 마리날레다들을 만들면 되지 않겠느냐고 제안할 수 있다. 그러나 지방자치를 강화해도 전국적 차원에서 다뤄야 할 외교, 재정, 금융, 복지 등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더욱이 국민국가적 차원에서 세계화로부터 가해지는 압박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는 이 모델이 풀어야 할 숙제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도 마리날레다 사례와 유사한 협동조합 모델에 관한 관심이 높아져 왔다. 이 새로운 도전들에 대해서는 긍정적 시각과 부정적 견해가 공존한다. 내가 보기에, 국지적 차원에서 연대와 협동의 논리, 그리고 참여민주주의에 기반한 협동조합의 활성화를 비판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이러한 협동조합을 국가 단위의 거시적 경제운영과 어떻게 공존·결합시킬 것인지의 문제도 동시에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리날레다 사례로 돌아가면, 스페인 중앙정부의 위기가 결국 마리날레다의 위기로 나타날 가능성이 적지 않음을 저자는 주목한다.

우리 사회든 다른 사회든 전 세계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가져온 영향의 긴 터널을 지나가고 있다. 이 책은 저 터널 밖의 사회는 어떤 모습을 가져야 하는지, 포스트신자유주의 모델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많은 생각할 거리를 안겨준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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