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희망 사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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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희망 사회주의
  • 안두순
  • 승인 2014.09.03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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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사회’라는 말을 입에 올리기조차 금기시되던 시대가 있었고, 지금도 ‘사회주의’를 자유로운 대화의 주제로 삼기에는 꺼려지는 분위기가 없지 않다. <Socialism: Past and Future(사회주의: 과거와 미래)>라는 원제를 가진 이 책의 저자는 “누구도 사회주의 국가가 어떤 성격의 체제인지 몰랐던” 상황에서 그동안의 여러 “가짜 사회주의”가 우울한 사회주의 역사를 만들어 냈고, 그럼에도 누구나 사회주의에 대해서 말한다고 한다.

사회주의를 "자유와 정의가 곤경에 빠진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왔던 논리적 대응"으로 본 저자의 키워드는 자유, 정의, 연대, 그리고 희망이다. 그의 가설은 첫째, 사회주의 운동이 자유와 정의를 신장시키는 뿌리이고 둘째, 자유와 정의는 사회 경제구조의 지배를 받으며 셋째, 자본주의는 스스로 파괴할 위기를 낳는다는 등 세 가지이다. 이 책의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전반부는 전통 사회주의의 발전과 왜곡에 대해, 중반부는 사민주의 대타협의 산물인 복지국가의 한계와 그 해체 과정 및 여파에 대해, 그리고 후반부는 사회주의가 실패한 경험을 통해서 어떻게 하면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민중과 공동체 주도로 민주적 통제에 따라 진행되는 ‘사회주의식 사회화’로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으로 채워졌다. 저자에 의하면 "역사상 가장 역동적 체제"인 자본주의는 앞으로도 계속 진화, 발전할 것이기 때문에 자유와 정의가 실현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따라서 저자의 희망은 혁명 대신 점진적 접근을 통해서 ‘장미와 주먹’의 이념을 실현하는 것이다. 이 희망은 삶을 노동 이외의 지적, 문화적 영역까지 확장하여 창조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사회주의자로 통한다. 그러나 그를 마르크스나 레닌, 스탈린이나 모택동을 지칭하는 사회주의자로 보면 큰 착오이다. 그는 자유와 정의를 최고 가치로 신봉하는 민주주의 신봉자이며, 과거 소련이나 동구의 공산주의보다는 북유럽식 사회적 시장경제가 진정한 사회주의에 훨씬 가깝다고 보기 때문이다. 경제 성장과 안정을 동시에 이룬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의 경제체제를 사회적 시장경제라 하고 복지국가의 대명사인 스웨덴도 사회주의적 요소를 많이 가진 경제체제로 평가된다. 그런데 좌우 타협의 산물로 한때 대번영 시대를 이끌었던 ‘케인스주의적 연합’이 해체되면서 이는 세계 경제의 위기로 연결되었다. 저자는 이 위기상황에서 오히려 사회주의식 사회화의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본다. 그는 “계획 경제와 시장 간의 새로운 관계 설정은 언젠가는 올 유토피아, 즉 미래사회를 구성하는 하나의 원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자가 꿈꾸는 진정한 사회주의가 가까운 장래에 실현되리라 기대하지는 않지만, 지금까지의 패배와 배신에서 교훈을 얻는다면 자유, 정의, 연대라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가치를 위한 '민주적 사회화'는 계속 희망적이라는 것이 그가 생애 마지막으로 남긴 희망의 메시지이다.

이 책은 결코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수많은 인물과 사건들, 생소한 용어들, 얽히고설킨 사회주의 운동 내에서의 복잡한 노선 등에 대한 서술은 사회주의가 얼마나 다양하고 광범위한 내용을 담고 있는지를 확인시켜 준다. 그래서 경제 사회적, 역사 문화적 맥락이나 전통 사회주의에 대한 기초지식이 없는 일반 독자들에게는 난해한 부분이 적지 않다. 그러나 사회주의에 대한 관심과 기초지식이 있는 독자들에게는 많은 혼란과 의문을 해소시켜 줄 것이다. 또한 사회주의가 다소 생소하게 느껴지는 일반 독자들에게도 경제 위기가 왜 반복되는지,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어떠한 도전을 받고 있는지, 그리고 이를 방어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지침서 역할을 한다. 저자는 자본주의를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성취이고 급진적이고 혁신적인 체제"로 보고 자본주의가 단점을 보완하고 계속 발전하도록 자극을 준 것이 사회주의라고 단정한다.

이 책이 사회주의의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자본주의가 단점을 보완하고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제공한다는 것은 하나의 아이러니다. 전공과 무관하게 현대 경제사회에서 대두되는 수많은 갈등관계의 본질이 무엇이고 그 해결 방안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를 고민하는 독자들에게 읽을 가치가 충분한 책이다.

<안두순 서울시립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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